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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ug 21. 2024

가장 완성도 높은 도시, 스톡홀름

자본주의의 구김살이 안 보인다


뭐랄까, 비버리힐스로만 구성된 LA? 빈민가와 마약중독자 없는 샌프란시스코? 인구를 1/10로 줄인 뉴욕? 스톡홀름은 현대 도시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도시의 미학'이 있다면 스톡홀름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도시 중 하나일 것이다.


흔히 세계 3대 미항으로 나폴리 시드니 리우데자네이루를 꼽는데, 여행감독이 꼽은 가장 아름다운 항구도시는 스톡홀름 샌프란시스코 케이프타운이다. 행복의 기운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도시들이다. 스톡홀름이 특히 그렇다.


미국이나 서유럽 도시와 비교할 때 스톡홀름의 가장 큰 매력은 빈부의 격차가 적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슬럼가도 안 보이고, 구걸하는 사람은 없고, 빈병 줍는 사람은 간혹 보인다. 스톡홀름이라고 빈부의 격차가 없을 리 없고 슬럼가가 없을 리 없겠지만, 대체로 평온해 보인다.



스톡홀름의 중심가는 감라스탄과 외데르말름이지만 쇠데르말름 특히 소포 지역의 밤은 정말 매력적이다. 화려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우아하다. 석양 보고 난 후 들렀다가 너무 좋아서 다음날 낮시간도 쇠데르말름에서 허비했다. 세컨드핸즈 숍들도 두루 들러보고.


스톡홀름은 일상이 매력적인 도시다. 발트에서 유작정 한 달 살아보기에 이어 북유럽에서 유작정 한 달 살아보기도 빨리 구성해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이 누려야 할 것들이 두루 갖춰진 곳이다.



여름, 백야의 북유럽은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스톡홀름의 여름 날씨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호랑이 바람피는 날’. 선글라스와 우산이 동시에 필요하다. 이곳의 일기예보는 맞지도 틀리지도 않는다.


선글라스와 우산을 동시에 들고 다니고 선크림과 핫팩을 둘 다 구비해야 한다. 일교차는 없는데 ‘분교차’가 있는 곳이다. 구름이 해를 가리면, 바람이 한 번 들이치면 기온이 확 내려간다.


해와 비와 바람이 번갈아가며 나를 건든다. 그러면 참아내거나, 막아내거나. 맑은 하늘에 장대비가 내린다. 하늘은 맑은데, 뻔뻔하게도 비가 내린다. 우산을 펴는 동안 비가 그치고, 우산을 접어 넣는 동안 다시 비가 온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스톡홀름 쇼핑가는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장악했다. 여기서 기능 없는 디자인은 앙꼬 없는 찐빵. 사치를 부리지 않고 실질을 추구하는 것은 이 정신 사나운 날씨가 빚어낸 성품이 아닌지.


아무튼 이 변화무쌍한 날씨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흐린 날에 기가 막힌 맑음이 있고, 맑은 날에 위협적인 비바람이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라 우려되지만, 또한 변덕스러워서 기대가 된다.



스톡홀름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spirits museum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와인에 미친 영향을 아나스타시아 레오노바의 before and after 사진으로 표현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잘 나가는 와인바의 수석 소믈리에였을 때의 사진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전사가 된 후의 사진으로.



짧은 여름엔 낮이 길지만 대체로 스톡홀름은 겨울이 길고 밤이 길다. 그래서 긴 겨울과 긴 밤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인테리어와 조명이 발달해 있다. 스웨덴 왕가에 잡화를 납품하던 스벤스크트텐은 그런 인테리어 노하우가 집약된 곳이다.


북유럽 감성의 완성자라는 요제프 프랑크가 창립한 인테리어 숍인 스벤스크트텐은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지만 격을 유지한다. 인테리어에 관심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운 곳. 스톡홀름 오시면 여기 딸린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시길.


스톡홀름을 추천하고 싶은 시람은, 인테리어 공사를 앞둔 사람이다. 스벤스크트텐이나 세칸드핸즈 숍에서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 소품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간접조명 관련해서는 스톡홀름이 정말 갑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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