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조찬강연을 하고 왔다. 아침부터 공부하려는 사람이 있어 나처럼 아침부터 일하는 사람도 있는 법. 수강자는 대부분 CEO들이었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여행에 CEO들이 제법 오는 편이다. 그래서 그들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중장년층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강의 주제로 삼은 것은 '대확행 세대의 여행'이었다. MZ세대를 표현하는 말 중에 '소확행'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르는 말이다. 내가 조어한 '대확행'은 이에 반하는 말로 '크고 확실한 행복'을 일컫는다. MZ세대의 부모세대라 할 수 있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표현하는 말이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 자신이다'라고 단언한 셰프가 있지만 먹는 음식 가지고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 단편적인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이 하는 여행이 당신 여행이다'라는 말은 성립한다고 본다. 여행은 숙박/식사/취향이 모두 반영된 종합적인 행위니까. 당신의 여행은 당신을 보여준다. 특히 당신 자신을 위해 했던 노력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대확행 세대는 대확행 여행을 하려고 한다. 왜? 여행은 그들이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대한 보상과 포상이니까. 이들은 '오늘만 날이다'는 생각으로 회식과 워크숍을 하며 열심히 일했던 세대다. 해외여행은 그들 인생은 트로피고 트로피는 화려할수록 빛난다. 비즈니스 좌석을 타고 가는 여행이, 5성급 숙소를 이용하는 여행이 먹히는 이유다.
그들에게 대확행 여행의 실패 사례를 몇 가지 얘기해 주었다. 성공한 미국 이민자인 의사가 인당 8천만 원짜리 크루즈 여행을 하고 다시는 이런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엄청난 성공을 이룬 부부 사업가가 부띠끄 스타일의 프라이빗 투어를 갔다가 소외감을 느낀 이유, 성공한 자영업자가 고급 크루즈를 갔다가 역시 다시는 이런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에 대해서.
흔히 여행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가'도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여행 친구로 좋을까?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기를 성취한 사람들이 두루 오는 여행이 좋은 여행일까? 그런 사람들과 여행에서 친해진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볼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여행에 오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빈틈'에 주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 수도 있다.
대확행 세대는 한국사회의 격동기를 거친 세대다. 대략 1차 베이비붐 세대(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와 2차 베이비붐 세대(1970년대 초중반) 사이의 세대에 속하는 세대로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들을 통해 이뤄졌다. 한국사회의 중추를 담당한 세대인 셈이다.
하지만 이 세대는 자기 자신의 취향을 발전시킬 기회가 없었다. 조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서, 내 집 마련을 위해서, 자녀들의 교육과 노후를 준비하며 모든 것을 소진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뒤늦게 취향의 세계에 들어오면 대체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하게 된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을 가게 된다. 나는 어떤 여행자인지, 어떤 여행지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 없이.
대확행 세대의 특징은 취미가 계속 바뀐다는 점이다. 갑자기 돈과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여가의 세계에 들어서면 본격적을 '남들이 좋다는 것'을 하게 된다. 골프나 와인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좋다는 와인, 비싸다는 와인을 두루 마셔본 사람이 다시 소주에 귀의하는 모습을 왕왕 본다. 왜? 음주에 대한 리터러시를 소주로 익혔으니까.
'남들이 좋다는 것'을 해보고 나서는 이들은 '남들이 못해본 것'을 해보려고 한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캄차카 오지 여행 때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오면 저녁마다 게거품을 무는 어르신 팀을 본 적이 있다. 캄차카에 왜 오셨냐고 물으니 답이 심플했다. "남들이 안 가본 곳을 가보고 싶어서"라고. 은퇴 후 밑도 끝도 없이 남아메리카 종주 여행을 하고 와서 여행에 질려버린 사람이 많다. 왜? 여행은 그들에게 인생의 보상이고 포상이니까.
한국인의 여행 '툴모그래피'를 그려보면 대체로 젊어서는 휴가도 짧고 휴식도 필요해서 동남아 휴양지에 간다. 그러다 4050 시기에는 '유럽 몇 개국' 가는 유럽 컴필리에이션 패키지를 간다. 그리고 말년에 남들 안 가본 곳 가본다고 오지여행에 덤빈다. 미국/유럽인은 그 반대다. 동남아 휴양지는 말년에 간다. 4050 시기에는 '유럽 몇 개국'이 아니라 한 곳에 몇 주씩 있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오지는 젊어서 배낭여행으로 간다.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듯 형편이 달라지면 여행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프랑스 사람들은 휴가를 한 달이나 간다'라는 얘기를 별나라 사람 이야기처럼 했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한달살이'가 일반화되었다. 제주도에는 흔하고 해외에서 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 대확행 세대도 지금 선 자리에 맞는 여행 로드맵이 필요하다.
대확행 세대보다 조금 윗세대인 황혼세대로 가면 여행지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보통 좋은 여행을 하고 나면 '여기 또 오고 싶다'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황혼세대는 이를 다르게 표현하다. '여기 너무 좋다. 조금만 더 머물고 싶다'라고 말한다. 무의식 중에 '내가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멈춤이 있는 여행을 고민 중이다.
여행감독인 나는 대확행 세대와 소확행 세대의 중간 세대인 'X세대' 출신이다. IMF 외환위기 때 외신이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라고 비난했는데, 일찍 터뜨린 샴페인을 마셨던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다.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어학연수와 배낭여행ㅇ르 두루 다녀온 세대다. 자유여행이 익숙한 세대다. 중간 세대의 입장에서 은퇴 세대를 위해 패키지여행과 자유여행의 장점을 결합한 여행클럽의 수제 패키지여행을 만다는 것이 내 역할이다.
대확행 세대를 위한 수제 패키지여행을 기획할 때 주안점을 주는 것은 세 가지다. 하나는 그들에게 실패할 염려 없는 ’소확행 여행법‘을 알려드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이 아닌 여행의 시간‘을 어떻게 덜어낼까 하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좋게 행동하는 구조‘를 어떻게 짜느냐 하는 것이다(이 부분은 이야기가 길어지니 나중에 따로~)
그분들에게 나를 설명할 때 '여행계의 폭탄주 이모'라고 소개한다. 폭탄주 이모가 쓰는 재료가 다를까? 폭탄주 이모는 그냥 맥주 말고 수제맥주 쓸까? 그냥 소주 아니라 안동소주 쓸까? 아니다. 똑같은 것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그 맛이 그렇게 다를까?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 포항 가면 폭탄주 이모가 말아주는 폭탄주 한 잔 마시겠는가? 안 마시겠는가? 마시려고 한다. 왜? 폭탄주 이모니까. 마찬가지다. 왜? 여행감독이니까.
주) 고재열 여행감독과 트래블러스랩 여행 관련 설명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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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재열 여행감독의 여행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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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8가지 여행 기획 방식 - https://poisontongue.tistory.com/m/2306
4> 2024 하반기와 2025 상반기 여행 일정을 볼 수 있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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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트래블러스랩 기획 여행을 확인할 수 있는 네이버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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