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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치한 글'이라...

by SeonChoi

"날마다 달마다 쏟아지는 책과 논문 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지고 자기 성찰을 결여한 채 업적 쌓기에만 급급해 갈겨쓴 글들을 무수히 본다. 독자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무가치한 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글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조금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 말미에 실린 어느 작가의 목소리입니다.


저 글을 읽으며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저 글에 담긴 저자의 문제의식—‘글을 쓴다는 건 곧 누군가의 시간을 빌리는 일’이라는 말에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글을 쓴 분들은 모두가 깊이 공감한다고 믿습니다.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얼마나 귀한지요! 그들의 시간과 관심의 무게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요! 저 역시 그것을 알기에 문장 하나하나 마침표 찍을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긴장감에 휩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작가의 문제의식은 날카롭고 정당합니다.


하지만 곧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습니다.

다른 글들을 '갈겨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무가치한 글'이라고 단정하는 어조에서 어떤 오만함마저 느껴졌습니다. 물론 자신의 글은 그렇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나온 그 책의 수명이 얼마나 될까를 반문하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갈겨쓴' 글이라 폄하한 글도 누군가는 정신을 바짝 차려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글이라는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는 당신의 글은?'이라는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다른 이의 글을 향해 '무가치하다'라고 평가하는 이는 정말 성찰하며 쓰고 있는가, 독자의 시간을 아낄 만큼의 치열함과 책임감을 지니고 있는가.


글쓰기는 경쟁이 아니라 작가의 삶 자체이며, 그 삶의 고백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다른 이의 글을 가리키며 헛것이라 말할 때,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린 글을 쓰지는 않았는가를 떨리는 마음으로 되돌아봅니다. 넘쳐나는 글 속에서 어떤 글은 삶을 살고, 어떤 글은 스러지겠지요. 그 무수한 운명의 한 조각으로, 내 글도 한쪽 구석 자리에 조용히 놓아둘 뿐입니다.


또한 글쓰기는 겸손한 자기 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글 역시 언제든 비판받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무가치한 글'로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세상에는 오늘도 글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저 더 치열하게 성찰하며 내 글에 집중하는 것, 그것만이 몰려오는 무더위에 책상 앞을 지키고 앉아 있는 제가 할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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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내어 읽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저희 동네 한 커뮤니티 센터에 개설된 강좌를 훓어보니 <브런치 작가되기>라는 강좌가 있었습니다. 3달코스로 제 기준에 수강료가 제법 되었습니다. 모든 작가님들, 자부심을 갖고 우리 모두 '건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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