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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한 뿌리라는 천국의 열쇠

by SeonChoi

골목길. 지금은 ‘힙한 감성 골목’이라며 특정 장소가 소개될 정도로 희귀한 공간이 되었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흔하디 흔한 풍경이었다. 옹기종기 비슷비슷한 집들이 이어져 있었고, 그 골목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우리 집 대문이 보이는 골목으로 접어들면,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꼬리를 흔들며 반겨줄 강아지, 먹을거리를 챙겨 두신 할머니, 심심할 틈을 주지 않던 오빠, 그리고 대자로 뻗어 쉴 수 있는 내 방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골목에서 자주 마주치던 사람들이 있었다. 밥을 구하러 다니던 이들(거지)이었다. 다친 팔을 보이며 ‘상이군인’이라던 사람도 있었고, 일을 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노인도 있었다. 할머니는 골목길을 기웃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마당으로 불러들이셨다. 그리곤 앞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밥상을 차려 주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 기억에 우리 집에는 우리 식구만 산 적이 없었다. 늘 '객식구'가 북적였다. 성씨가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것 같은 먼 친척부터, 외삼촌, 작은 아버지, 사촌 언니와 오빠들 등이 짧게는 며칠부터 길게는 몇 년을 함께 살았다.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었다. 앞 뒤로 작은 마당이 있고 본채와 세를 줄 아래채가 달린 그저그런 서울의 양옥집이었다. 27살 벽두에 남편을 잃고 청상과부가 된 엄마가 혼자 버는 집이었는데, 퍼주기 좋아하는 할머니가 그 월급을 어떻게 쪼개 식비를 감당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골목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담벼락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골목 공동체를 향한 관심은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라는 이름으로 치환되었고, 할머니가 돗자리를 펼쳐놓던 자리에는 ‘외부인 출입금지’ 팻말이 서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는 잘 알려진 ‘양파 한 뿌리’의 이야기가 나온다. 생전에 단 한 번, 구걸하는 이에게 양파 한 뿌리를 던져 준 한 노파가 죽어서 그 양파 덕에 지옥으로부터 구원 받을 기회를 얻지만, 결국 놓쳐 버리고 만다는 이야기다.


그 대목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 할머니는 분명 양파 한 뿌리 이상의,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받으셨을 거라고. 그 식구들의 가장 역할을 묵묵히 감당한, 이제 구순이 넘은 내 엄마도 이미 티켓이 발부되어 있을 거라고.


얼마 전, 글을 읽다가 조선시대 한 선비가 숨을 거두기 직전, 두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를 보았다.

“너희들이 글을 읽고 열심히 선행을 행하기를 바랄 뿐이다.”

관심을 갖고 찾아보니 '선행을 베풀라'는 유언을 남긴 어버이들이 제법 있었다.


난? 난 어떤가? 도스토예프스키가 굵직한 목소리로 묻는 것 같다.

"너는 양파 한 뿌리라도 누구에게 준 일 있느냐?"


<양파 한 뿌리>

작은 양파 하나가
누군가의 허기를 달래고


돗자리에 내려앉은 햇살이
마음을 감싸 주었다.


살아간다는 건

작은 한 뿌리,
따뜻한 한 그릇을 내어놓는 일.


오늘 나는 묻는다,
그 한 뿌리를
누구에게라도 건네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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