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웅진 지식하우스, 1995)
“아아, 지겨운 엄마, 영원한 악몽.”
박완서 작가의 자서전과도 같은 소설의 어느 한 절이 저 문장으로 마감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숨이 멎었다.
세상에 공표하는 선언문과도 같은 저 문장은 짧지만 단호했고, 슬프지만 처절히 솔직했다.
아아, 엄마와 딸, 그 영원한 숙제여.
세상에는 엄마와 딸의 수만큼의 이야기가 있다. 서로를 그리며 “엄마…”를 부르는 눈물의 순간도, 차라리 인연을 끊는 편이 낫다고 말하며 등을 돌리는 이도 있다. 사랑과 미움이 한 뿌리에서 자라나고, 애정과 원망이 번갈아 피었다 지는 관계. 모녀는 서로의 거울이자 그림자이며,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이다.
딱 갈라서 나이를 말하기 힘들지만, 사춘기의 자녀와 중년의 부모는 전쟁에 돌입한다. 각자 자신의 나이대에 치르게 되는 전쟁을 해 나가면서, 그 싸움의 연장으로 서로와 또 싸운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지는 전투의 시기를 통과한 뒤, 서로의 들판을 어디에선가 각자 헤집고 다니다가 노년과 더 노년의 자식과 부모로 다시 만난다.
나는 지금 노년의 문턱에 서서, 더 노년인 엄마와 시어머니를 보살펴드려야 한다. 피와 법, 두 개의 고리로 맺어진 두 인연. 버겁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내 안에는 살아온 날들의 상흔과 추억, 연민, 애증, 악몽, 꿈 등이 뒤엉켜 있다.
엄마와 딸, 사랑이자 숙명이며, 때로는 투쟁이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의 심연을 지나, 확인하게 되는 것은 닮음이다. 서로의 주름과 눈빛 속에서 나는 엄마를 보고, 엄마는 나를 본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중얼거린다.
“아아아, 엄마,
그래요, 당신 없이는 나도 없었음을.”
그림출처 : 최선혜, "엄마의 담장", 북랩, 2023, 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