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내가 만약 전술을 대위법만큼 잘 알고 있었다면 한 번 혼을 내줬을 텐데 말이야"
베토벤이 작곡한 5개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그의 9개의 교향곡들과 더불어 매우 혁신적입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가 확립한 피아노 협주곡 양식을 이어받아 발전시켰고 그가 완성한 양식은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제1번과 제2번 협주곡은 독특한 시도들이 있지만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이는 아직 자신만의 어법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교향곡과 더불어 피아노 협주곡도 3번이라는 번호에 이르러 베토벤의 “변화와 혁신”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제3번 협주곡의 형식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지만 관현악의 교향악적 구성은 그동안 단순한 반주에 그쳤던 오케스트라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피아노 협주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제4번 협주곡에서는 다시 모차르트 형식으로 회귀하는 듯 보이지만 독주 피아노의 솔로가 서주를 맡고 있으며 이 형식은 훗날 슈만, 리스트, 차이코프스키, 그리그 등의 피아노 협주곡에서도 나타납니다. 마지막 협주곡인 제5번도 솔로 피아노의 카덴자(즉흥연주)로 시작되는 1악장과 천상의 선율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2악장, 그리고 2악장과 3악장을 쉬지 않고 연주하게 하는 시도 등 혁신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는 베토벤이 38세 되던 해인 1809년에 작곡되었습니다. 이 무렵 그는 두 번의 걸친 나폴레옹의 전쟁을 경험하였고 혁명가라 여겼던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프랑스군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어느 날 길에서 프랑스 장교와 스쳐 지나갈 때 "내가 만약 전술을 대위법만큼 잘 알고 있었다면 한 번 혼을 내줬을 텐데 말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베토벤은 시대상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습니다. 음악적으로 교향곡 5번과 6번을 작곡한 다음 해에 쓰인 만큼 베토벤의 창작력이 가장 왕성했을 시기에 작곡되었습니다. ‘황제’라는 명칭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며 곡의 장대한 스케일과 당당함에 출판업자가 붙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의 가장 큰 특징은 긍정적이고 밝은 명쾌함에 있습니다. 우리는 베토벤에 대해 ‘영웅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삶에 비추어 본다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베토벤도 온화함과 부드러움 때로는 연약했던 인간이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는 인간 베토벤의 긍정적 내면이 가장 외향적으로 표현된 작품일 것입니다.
이 작품은 5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유일하게 베토벤 자신이 독주자로 초연하지 못한 작품인데 이유는 그의 청각장애 때문입니다. 베토벤을 다룬 영화 ‘불멸의 연인’(1994)에서는 베토벤이 ‘황제’ 협주곡을 초연하면서 그의 청각장애가 세상에 드러나는 연출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실제 초연은 1811년 11월 28일 라이프치히에서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슈나이더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원코리아 오케스트라 / 지휘 정명훈
피아노 조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