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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멜랑쥐 Nov 21. 2023

오늘만 살아보자

3일_해 질 녘

나는 해가 지고 있는 이 시간! 세상이 파래지는 이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세상이 파래 진다는 것을 나처럼 모두 느낄까??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공상을 많이 한 나는 판타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 시간이 그렇게 느껴져서 좋다.


가을과 겨울의 사이에 해가 져가는 저녁 시간

세상이 파래지고 공기는 알싸? 싸늘까지는 아니고 선선?

긴팔과 반바지를 함께 입어도 기분 좋은 지금이 좋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차분해진다.


낮에 오랜만에 반가운 단골손님도 왔고 삼삼오오 처음 보는 학생들도 sns를 보고 왔다고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도감이 잠깐의 행복을 안겨 줬다.

아슬아슬한 매일이지만 매일 우울함만 가득한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친구와 통화를 했다.


"하루가 일희 일비야"

"일비 일비는 아니네"

"그렇네"


살짝 웃음이 났다. 그래 일비 일비보다는 아니구나. 생각을 못했다. 조금 좋은 날도 있었지. 매일 끝없는 바닥만 치는 것은 아니었지. 가장 친한 30년 지기 친구와 통화를 하니 담담하고 부드럽게 대해주는 친구의 말투에서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무언가를 도와주려고 방법 제시를 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사실 장사를 안 해 본 사람의 걱정스러운 조언은 오히려 더 힘들게 한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어깨를 다독여 주고 말없이 미소가 지어주면 된다. 가엾게도 느끼지 말고 불쌍하게 여기 지도 말고 가끔 내가 먼저 전화를 걸면 그저 평상시와 같은 시시콜콜한 대화와 힘내라는 진심이 섞인 말 만으로 나는 충분히 위로를 받는다.


나는 mbti가 i다 나는 이런 걸 믿지 않는 쪽에 가까웠지만 언제부터인가 약간은 맞는 거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갑게 전화를 하지도 않고 먼저 만나자고 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 30년 지기 친구는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걱정해 주고 함께 해준다. 고맙다. 우리의 친구관계는 친구가 아니면 벌써 쫑이 났을 것이다.


"너는 정은 있는데 잔 정이 없어. 좀 무심해. 전화 좀 먼저 해 봐"


그런 내가 장사를 하다니 어쩌면 처음부터 좀 어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8년이 지나니 직업병이 무서운 것이 손님과 대화하는 것이 가끔은 즐겁다. 하지만 시간제한은 있다. 30분 이상 대화를 하는 것은 힘들다. 기를 빨리는 것처럼 힘들다. 웃고 있지만 다크서클이 무릎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그만! 그만! 저한테 궁금한 것을 그만 물어보시고 그냥 시간을 보내시면 안 될까요???'  


웃는 얼굴로 나는 생각한다. 손님들은 개인 커피숍 여주인에게 무엇이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걸까?

말을 거는 처음은 항상 똑같다.


"이 그림 사장님이 다 그리셨어요? 미술 전공하셨어요?"


그러면 나는 올게 왔구나.. 싶은 맘으로 웃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아주 전문적으로 오래 배운 적도 없다. 하지만 그림을 잘 못 그리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잘 그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리는 약간의 재주가 있다.

어릴 때 꿈이 화가이기는 했다. 취미로 생각만 한 것은 아니고 미술에 재주가 있으신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기도 하다. 몇몇 대회에 나가서 입상도 하고 상도 받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 예체능을 전공하기는 힘든 시절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머릿속에 영화 한 편이 돌아가는 것 같다. 나의 일대기 혹은 공상 판타지 여러 장르의 영화


글이 이랬다 저랬다 이 생각 저 생각 뒤죽박죽 생각이 난다.

뭐 어떤가 싶다. 내 맘이 편하도록 쓰고 읽으면 되지 뭐 싶다.

내가 편하게 쏟아낸다면 언젠가 웃고 기분 좋은 일만 가득 적어지겠지.


지금 일 글을 적으면서 가게에서 그린 여러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신랑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결혼하고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많이 도움을 주었다. 나이가 더 들어 마음이 평온해지고 지금 모든 힘든 일이 지나가고 난 뒤가 된다면 나는 화가가 되리라. 꼭 화가가 되어 내가 죽었을 때 묘비에 화가 아무개라고 적히고 싶다.


저녁 5시 9분 창밖으로 보는 세상이 파래지고 있다. 오늘은 좋은 일도 있고 기분도 한결 좋아졌다.

오늘은 퇴근하고 집에서 신랑이랑 좋은 얘기도 하고 와인 한잔 해야겠다.

굿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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