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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얼티밋 Feb 15. 2022

33. 다시 한 번 리드포드


나는 사라의 고백을 듣고 얼마 안 있어 이탈리아를 떠났다. 사라와는 영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사라가 말한 헬렌 아줌마의 면은 떠날 때까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라가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아줌마는 그저 내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숨기는 듯 했다. 아마 내가 2주를 넘어 한 달 정도 지냈다면 사라에게 털어놓을 무언가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끝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2주 동안 애매하게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워커웨이를 마쳤다.


피렌체에서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면 바로 미셸과 앤드류의 집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들을 위해 내가 지내던 마시모의 와인 농장에서 로제 와인 한 병을 사가기로 했다. 사라가 엄지 척을 들어보이며 이 집 로제 와인이 끝내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시모는 끝끝내 내게 돈을 받지 않았다. 마지막 선물이니까 잘 싸서 가져가라고 웃으며 핑크빛 와인병을 건네주었다. 내가 'Papi아빠'라고 부르던 백발의 아저씨, 내게 춤을 가르쳐주겠다며 부엌에서 스텝을 보여주던 전직 댄스 강사, 매일 스쿠터를 타고 나를 데리러 와서는 끝내주는 점심을 만들어주던 이탈리안 아저씨 마시모는 아마 내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항공편으로 넘어온 런던은 눅눅했다. 급기야 소나기까지 내렸다. 어떻게 날씨가 이렇나 영국 하늘을 원망하며 덜커덩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데본행 버스에 올랐다.


몸이 녹아버릴 것처럼 피곤했다. 눈만 감으면 4시간 넘는 여정길을 무의식 상태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잠들 수는 없었다. 곧 나와 함께 리드포드의 미셸과 앤드류 집에서 워커웨이를 할 독일 친구 조안이 버스에 오를 예정이었다. 같은 집에서 한 달 동안 옆 방을 쓰며 지낼 하우스메이트인데 첫모습이 자는 모습이어서는 곤란했다. 그녀가 타면 반갑게 웃어주며 옆자리에 앉으라고 해줘야겠다, 생각하며 눈을 부릅뜨고 그녀가 미리 보내준 사진 속의 여자를 찾았다.


곧이어 다음 터미널에서 나와 같은 분홍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버스에 탔다. 계획대로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좋아, 그녀도 웃는다. 성공이야.


조안은 내 옆자리에 앉아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는 내년에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고 현재 갭이어를 보내는 중이었다.


"네가 앤드류한테 남긴 리뷰 봤어. 엄청 자세하고 괜찮더라고! 그거 때문에 앤드류네로 결정한 거나 마찬가지야."


내가 좀 길고 구질구질한 호스트 리뷰를 남기긴 했다. 쓰다보니 리뷰라기보다 앤드류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게 되어버렸지만, 누구 한 명 덕 봤다니 다행이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우리 둘 다 비행으로 몹시 지쳐있었고 버스는 앞으로 한참을 더 달릴 예정이었다. 우리는 금방 말이 없어졌고 곧 곯아떨어졌다.




내가 어렴풋이 눈을 떴을 때는 버스 창문에 데본의 언덕이 비쳐보였다. 양, 소 같은 동물들도 간혹 모여있었다. 내가 그리워했던 그 풍경이었다. 곧 미셸과 앤드류를 만날 거라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긴장돼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이 있는 근처 마을에서 앤드류와 만나기로 했다.


긴 여행 끝에 버스에서 내려서 양 다리를 탈탈 털었다. 찌뿌둥하니 몸 곳곳이 뚜둑 거렸다. 으으, 목 한 번 돌리고 다시 앞을 보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앤드류가 나타났다. 내 얼굴에 즉각 함박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바로 나를 알아보았고(아마 그 마을 통틀어서 동양인이 나 한 명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인가) 반가움의 포옹을 나누다가 갑자기 나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의 집에 오래 머물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앤드류는 가끔 기분 좋으면 나를 이렇게 안아들고는 했다. 


앤드류는 나를 내려놓고는 바로 옆에서 '이게 뭐슨 일이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조안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우리를 차가 주차된 곳으로 안내했다. 우리가 캐리어를 잡으려는 순간 그가 두 개의 캐리어 손잡이를 모두 움켜쥐고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들어올렸다. 개당 거의 20키로가 나가는 캐리어인데 끌지도 않고 들고 가는 그의 뒤를 종종 쫓아가며 나와 조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앤드류, 우리가 가지고 갈게. 괜찮아. 그리고 뭐하러 들고 가? 그냥 끌고 가면 되지!"


그는 '괜찮아'를 연발하며 차가 있는 곳까지 캐리어 두 개를 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맞다, 앤드류 이런 사람이었지. 그는 자기가 고생해서라도 다른 사람은 고생 안 시키는 사람이었다. 누구와 함께 문을 통과할 때는 꼭 자기가 문을 열었고, 인도를 걸을 때도 자기가 차도 쪽에서 걸었으며, 일행이 짐을 드는 모습은 절대 보지 못했다. 항상 앤드류가 내게 문을 열어줬기 때문에 내가 앤드류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시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번번이 그의 날쌘 속도에 지곤 했다. 나는 캐리어 두 개를 들고 걸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다시 한 번 앤드류와 미셸과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앤드류의 차가 눈에 익은 집 뒤에 멈췄다. 주차장에서 내가 머물던 방의 창문이 보였다. 깔끔한 금색 문패가 붙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국에서 딱 죽지 않을 만큼 그리워하던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 벽에 붙은 벽난로와 거실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소파, 그 앞에 커피테이블로 쓰는 나무 궤짝, 문이 있는 벽 한 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책장과 TV, 그 옆에 거실의 주인공으로 늠름하게 서있는 엑스박스까지, 앤드류네 집은 몇 달 전 내가 떠나던 때와 똑같았다.


그리워했던 풍경에 미소가 나오던 그때 커다란 무언가가 나를 덮쳤다. 넘어질 정도로 다리가 휘청였다. 일어서서 미친듯이 꼬리를 흔들고 있는 건 덩치가 나 만한 개, 마이크로프트였다. 이 애도 참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그 옆에서 점잖게 꼬리를 흔들고 있는 보더콜리 아치도 보인다. 마이크로프트와 아치의 성격은 딱 이 모습으로 정리된다.


마이크로프트는 뭐든 난리를 치며 떼를 쓰고 아치는 점잖게 부탁한다. 지금도 '빨리! 인사해줘! 인사!' 하고 있는 마이크로프트와 '안녕? 나 여기있어' 하며 꼬리를 흔드는 아치의 태도가 분명히 갈렸다. 귀여운 놈들, 하며 몸으로 마이크로프트를 밀고 들어갔다.



곧 미셸이 주방에서 걸어나왔다. 미셸과도 포옹을 나눴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운동용 레깅스와 탑을 입고 있었다. 항상 얼굴에 에너지가 가득차 있는 그녀였다. 그녀 옆으로 여덟 살, 열 살 꼬마 둘이 비죽 나와있었다. 아이들은 아직도 쭈뼛쭈뼛했다. 조금씩 내 쪽으로 걸어나와 인사하는 그 작은 얼굴들이 귀여웠다.


거실 소파에는 내가 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고양이 둘이 늘어져 있었다. 그들은 누워있지 않았다. '늘어져' 있었다. 고양이 액체설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소파 쿠션 두 개 사이에 껴서 몸을 최대한 세로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기다란 털목도리 두 개 같았다. 그 중 황갈색 털목도리에 다가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고양이 몬티였다. 몬티는 세상 만사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갓 세탁한 이불 시트 위에 올라가서 졸기를 좋아한다. 아니면 이렇게 소파 위나 누구 침대 위에서 자고 있거나. 내가 정원 의자에 누워있으면 가끔 배 위로 올라와서 가르릉 거리기도 한다. 몬티의 매력은 거부할 수가 없다. 주황색 머리부터 등 아래까지 쭈욱 쓸어주었다. 역시 미동도 없다. 그 옆에 검은 색과 흰 색이 섞인 고양이 지나는 까칠해서 만질 수 없다. 눈길을 보내도 움직이지 않는다. 역시.


곧 앤드류가 우리의 캐리어를 2층 방으로 옮겨주었다. 미셸은 우리를 끌고 주방으로 데려갔다. 아직 좀 어색한 나와 조안 사이도 깨고 안부도 나눌 겸 차를 한 잔 마셨다.




조안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밝은 성격의 19살이었다. 발랄하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렸다. 직설적이고 자기 표현이 확실했지만 동시에 어디까지 솔직해도 되는지를 명확하게 알았다. 선을 넘거나 무례한 말을 하는 경우는 없으면서도 자기 의견을 잘 피력했다. 내가 여태까지 만난 독일 사람들처럼 다 자기 표현이 확실했고 핵심과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굉장히 중시했다. 국가별 선입견은 주의해야 할 테지만 이건 개인별 특성이라고 하기에는 공통점이 너무나 명확히 보였다. 민족적 가치관과 교육에 연관이 있지 않을까 의심될 정도로 여태까지 같이 지낸 7명의 독일인 모두의 특성이었다.


동시에 내가 아주 부러워하는 특성이다. 잘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조안한테 배울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아직도 조금 어렵다. 아닌 건 아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려다가도 내 기준에서 무례할 것 같으면 바로 멈춰버린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 기준이 많이 앞인 것 같다. 조금 더 뒤로 밀어도 될 것 같은데 쉽지 않다.



나와 조안은 금방 친해졌다. 그녀가 나보다 두 살 어리기는 했지만 영어로 대화하다보니 티도 나지 않았다. 앤드류는 내 첫인상이 16살 정도였다고 하니 오히려 내가 여려보였을 것이다. 게다가 두 살은 나이 차이라고 하기도 뭐하니 말이다. 우리는 곧잘 함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타운에 나가서 가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함께 개들과 마당에서 놀았고 페인트 칠을 하고 집 안의 잡동사니들을 치웠다. 주방을 다 뒤집어서 깨끗이 청소를 하고 필요없는 가전들과 옷을 나눠서 기부처에 가져다주었다.


오래된 상자에서는 앤드류의 할아버지 사진도 나왔고 그의 소년 시절 사진과 결혼식 사진도 있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식에서도 스코틀랜드 전통 의복인 킬트를 입었다. 스코틀랜드 백파이프 연주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체크 치마에 무릎까지 오는 레깅스를 아시는가? 바로 그 옷이다. 한 가지 내가 새로 알게 된 점이라면 원래 전통적인 킬트에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것이며, 가문마다 킬트의 체크무늬가 다르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자기 가문의 킬트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전통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레깅스에 작은 단검까지 찬다. 속옷은 없지만 단검은 있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지만 물어보는 건 실례일 것 같아 물어볼 수 없었다. 지금도 궁금하다.


이 킬트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생겼으니, 바로 헛간 파티였다.

영어로는 Barn Dance라고 불렀는데, 이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앤드류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도 정확히 설명하기가 곤란한 눈치였다.


앤드류네 집 바로 옆에는 마을 회관 건물이 있었는데 이 건물은 마을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대관도 해주는 모양이었다. 오늘의 헛간 댄스는 바로 이 마을 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앤드류의 친구인 마을 아저씨의 생일파티라고 했다.


문제는 뭘 입어야 하는지였다. 생일파티라고 했는데, 뭘 입어야 하지? 그냥 청바지에 맨투맨 입고 가도 되나? 치마에 남방? 혹시 드레스 같은 걸 입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가장 똑똑해보이는smart 옷을 입어!"


앤드류의 조언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단 나는 워커웨이어로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옷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가진 옷 중 작업용 옷으로 입을 수 있는 옷들을 챙겨온 상태였다. 대부분 후줄근했고 꾸밀 수 있는 옷, 정장이나 치마, 블라우스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나 그런 옷 없어!"

"음... 그럼 미셸 옷 중에서 골라. 빌려줄게!"


앤드류는 결국 미셸의 옷장을 열어젖혔다. 작은 문제라면 미셸이 170이 넘는 다리가 아주 긴 사람이라는 정도랄까? 나는 155센치를 겨우 넘는 단신에 다리와 상체의 비율이 5대5다.


"어... 상의는 괜찮을 거야."


점점 그도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고 있음이 드러났다. 본인은 멋진 킬트를 입고 우리에게는 스마트해 보이는 옷을 입으라니 처음부터 이상했다. 결국 나는 내가 가져온 겨울 바지 중 가장 괜찮은 헤링본 패턴 일자 바지에 미셸의 남색 스팽글 상의를 입었다. 내가 봐도 조금 웃겼다. 신발도 신을 게 없었다. 여기에 러닝화를 신자니 웃겼다. 슬리퍼는 더더욱 안 될 말이었고, 남은 것이라고는 언니가 전남자친구에게 받았다가 헤어지면서 나에게 버린 꽃패턴 단화였다. 버리기는 너무 예뻐서 사이즈가 조금 컸음에도 챙겨온 단화였다. 이 단화를 신기로 했다.


진짜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라면 내게 양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양말이 왜 없냐고 물으신다면 피렌체에서 짐을 잘못 보냈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해야 한다. 나는 피렌체에서 영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한국으로 짐을 한 번 부쳤다. 롱패딩, 두꺼운 니트 등 부피만 차지하고 이제는 필요없는 겨울옷을 다 한국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내 양말까지 전부 부쳐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아마 여행자가 할 수 있는 실수 중 여권을 놓고 공항에 오는 것 다음으로 끔찍한 실수는 양말을 전부 없애버리는 일일 것이다. 짐을 부칠 당시 신고있던 양말 한 쌍을 제외하면 정말 단 하나의 여분도 없는 상태였다. 이 사실을 영국에 도착해서 알았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양말을 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한국에서 받거나 영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하는 일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이때의 나는 양말 없이 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이 사태에 더불어 꽃패턴 단화는 사이즈가 조금 컸다. 양말을 신어도 살짝 뒤꿈치가 미끄러져 나오는 크기인데 양말까지 없으면 걸을 때마다 발뒤꿈치가 인사하는 판국이었다. 그래도 슬리퍼나 러닝화를 신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맨발에 단화를 신었다. 내가 가는 생일파티의 본질이 헛간 '댄스'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혹시 짐 캐리 주연이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을 아시는가? 스크루지 나오는 그 영화 맞다. 이 영화에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사람들이 줄을 서서 파트너와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오케스트라에 맞춰서 우아하게 파트너와 눈을 맞추며 추는 그런 사교 댄스 말고, 신나는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서 사람들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면서 추는 춤이다. 중간에 파트너가 바뀌기도 하고 사람들도 춤 동작을 정확히 모른 채 그냥 신나서 추는 춤에 가깝다. 이게 내가 참석한 헛간 댄스의 본질이었다. 다들 신나서 춤 추는 거 말이다. 유튜브에 지그춤Jig라고 검색하면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앞에 파트너를 두고 추는 춤이 있는데 딱 그런 걸 췄다.


그것도 폴짝폴짝 말이다. 완전히 벗겨져 버릴 것 같은 단화를 발등에 힘을 빡 준 채 간신히 붙잡고 뛰어다녔다. 내 주변에서 추는 사람들은 키가 또 어찌나 큰지 이들 보폭을 따라가려면 신발을 날리고 그에 맞춰 발을 재빨리 날려야 할 정도였다. 내 파트너였던 앤드류가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지 내게만 템포가 두 배 정도 빠른 느낌이었다.


앞에는 학교 강당 단상처럼 생긴 무대가 있었고 무대 위에는 연주자들과 춤 시범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라고 춤을 아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들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눈빛을 열심히 시범자들에게 보냈고 그들은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여주었다. 어차피 따라 추는 사람들은 다들 초보라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도 잘 알 수 없을 터였다.


우리는 시범을 두 번 보고 줄을 일렬로 서서 준비했다. 이게 뭐라고 떨리는지, 난생 처음 지그 춤을 앞두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정확히 어떤 동작을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아주 빠르게 뛰어다니고 폴짝 뛰고 손을 잡았다가 놨다가 키가 엄청 큰 사람과 파트너가 되었다가 다시 앤드류로 파트너가 바뀌었다가 했던 것만 기억난다.


다들 동작을 틀렸다. 동네 사람들이라고 해서 잘 추지 않았다. 다들 처음 추는 눈치였고 계속 눈은 무대 위 시범 댄서들에게 머물렀다. 나도 틀리고 그들도 틀렸다. 사람들은 틀릴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앤드류는 잠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서로의 손목 안쪽을 대고 한 바퀴 빙글 돌면서 키득댔다. 거기서 반대쪽으로 한 바퀴를 돌자 생일 파티 주인공인 아저씨와 파트너가 되었다. 아저씨는 키가 190센치쯤 되어 보였다. 나는 팔을 한껏 뻗어 손목을 대며 빙글, 다시 돌았다. 우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폴짝폴짝 뛰면서 웃고, 벗겨지려는 신발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내 신발이 벗겨지고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가 한 곡이 끝났다. 이렇게 신나게 춤춘 적이 없는 것 같다. 헛간 댄스, 맘에 들었다.


앤드류가 조안과 다시 한 곡을 추러 나간 사이 나는 자리에 앉아 한 손에 와인잔을 들고 숨을 돌렸다. 그제야 눈을 돌려 이 공간을 둘러볼 수 있었다. 

 

마치 학교 강당 같은 큰 홀에 백 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한 쪽에는 뷔페가 있었다. 그 옆 테이블에는 와인이 든 잔들이 늘어서 있어서 원하는 사람이 가져다 마실 수 있게 해놓았다. 헛간 댄스라는 생일 파티 컨셉에 맞게 곳곳에 의자 대신 천을 두른 나무 궤짝이 놓여 있었다. 몇몇은 나처럼 앉아 쉬고 있었고 누구는 뷔페에서 음식을 담아 먹고 있었다. 서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루해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미국 영화에서 종종 보던 것처럼 이 그룹 저 그룹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면에서는 얇은 펌이 들어간 긴 머리를 한 호리호리한 여성분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차피 이 파티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나는 곧장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재미있는 볼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내 앞에 멈춰섰다. 


 "베이 맞아요?"


 내 이름을 알고 있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아, 저는 미셸 친구에요. 미셸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다시 와서 기뻐요. 인사할 기회를 드디어 잡았네요."


그 분과는 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게 얼마 되지 않는다. 긴장하고 있었고 횡설수설 이상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던 것 같다. 이런 식의 스몰토크는 아직 어렵다. 곧 댄스가 시작할 예정이라 그 분은 파트너 곁으로 돌아가셨지만 나는 혼자 남고서도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5개월 전 고작 2주를 있었을 뿐인데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설령 그 때 내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더라도 다섯 달이 지나면 잊어버릴 법한데 그 분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가 나를 보고 일부러 인사까지 하러 와주셨다. 잠깐 머물다 간 여행자에게 인사를 해주신 게 고마웠다.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내 얼굴은 어떻게 아셨대. 아, 동양인은 나밖에 없구나.


다행히 이 마을에는 나를 외지인이라고 타박하는 사람이 없었다. 동양인이라고 적대감을 보이는 이도 없었다. 가끔 인종차별적인 언어인지 모르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분들까지도 나를 몹시 아껴주시는 사람들이었다. 내 비자 문제를 함께 걱정해주고 어떻게든 오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마을은 올 때마다 나를 폭 안아준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영국 시골 마을이다. 여기 올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새삼 일이 이렇게 흘러간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처음 에런을 택한 것이 얼마나 잘한 선택이었던가. 에런이 날 받아준 것은 또 얼마나 큰 행운이었던가.

 



지금쯤이면 다 아시겠지만 이때는 영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코로나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옆옆나라 이탈리아는 코로나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었고 실제로 내가 이탈리아를 빠져나오고 2주쯤 뒤에 봉쇄령이 내려졌다. 이탈리아 안팎으로 이동이 불가능했다. 좀 더 시간을 끌었다면 나도 이탈리아에 갇혔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같은 시기 영국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묘사한 것처럼 백 명 넘는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춤을 췄고 음식을 나눠먹었다. 실제로 런던을 제외하면 확진자가 많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동양에서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양에서 심각한 바이러스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게 서양에서까지 심해질 일은 없으며 자기들은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들인 것마냥 안일한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일이 그렇게 커졌음에도 그들은 영국은 안전할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코로나 시기 서양에 사는 동양인들은 무차별적인 차별과 폭행을 당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있지만 코로나 관련해서 심한 말과 폭행을 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집 밖에 나갈 때는 주로 앤드류가 나와 함께 했다. 전직 군장교 백인 남성과 함께 있을 때 든든한 것은 맞았지만 그게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탈리아에서 온 동양인이었다. 어쩌면 당시 유럽에서 최악으로 여겨지는 조합이었다. 미셸과 앤드류는 내가 이탈리아에서 넘어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를 받아줬다. 코로나 검사를 요구하지도 않았다(이때는 코로나 검사라는 게 보편적이지도 않았다). 이들의 기대와 선의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내가 정말 멀쩡해야 했다. 그러나 도착한지 2주쯤 지나 내 생일날 저녁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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