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 출국할 때 한국에서 살 수 없어서, 한국에서 살 용기와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서 한국을 떠났다. 나를 낳고 길러준 나라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차석 졸업을 할 때는 누구보다 따뜻하게 안아주었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대입에 의문을 가지자 나를 차갑게 내쳐버린 내 나라였다. 내 조국은 여기는 정글이니까 못 버티겠으면 죽던가 나가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그곳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수긍하는 것이었다. 기존 사회를 바꾸려고 하지도 말고 불평하지도 말고 비판하지도 말 것을 요구했다. 사회가 부조리하다고 생각되어도 어쩔 수 없다, 다들 그 부조리에 맞춰 잘만 산다, 부조리한 사회에 맞춰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네 잘못이다, 라고 말했다.
한국은 사회개혁을 바라지 않는 듯 했다. 대신 사회에 반창고를 붙이고 싶어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정작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까도 내가 깐다는 심리인 걸까, 한국사회는 비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회를 뼛속부터 갈아엎어야 하는데 그 정도로 큰 변화는 바라지 않는다. 다들 이렇게 살기 너무 힘들다, 죽을 것 같다, 이야기하면서도 해결책으로 전반적인 수준의 사회개혁(예를 들어 대학평준화 정도로 완전히 사회 기반을 바꾸는 방법)을 제시하면 반대하는 이들이 더 많다. 혹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자기가 찾아낸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아나가는 방법을 고수하고 싶어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사회를 바꾸려고 해봐야 반창고를 붙이는 것 이상으로는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한국은 보완 정도로 나아질 수 없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 죽을 힘을 다해도 '평범한' 삶을 살기는 힘들다.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 살겠지, 생각하면서 그 수준의 삶을 따라잡기 위해 스트레스로 머리를 잃고 가족들을 잃고 건강을 잃는다. 생명을 잃는 사람도 많다.
나도 고민했었다. 80살이 될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뭐하러 고통으로 가득찬 길을 가야 하는 걸까. 그냥 지금 죽어도 되지 않나. 어차피 앞길에 있는 거라고는 고통과 잠재적 실패뿐인데 하루라도 일찍 죽는 게 고통을 줄이는 길 아닐까,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사는 것 같았는데 나는 그게 안 됐다. 그게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한국의 제도권 안에서 하루에 한 번 카페 갈 수 있고 자취할 수 있고 가끔 친구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고, 나를 깔보고 막 대하는 사람들을 견디며 일을 하는 게, 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게, 내가 왜 대학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수업을 듣는 게 안 됐다. 지금은 다 할 수 있는 일들 같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의미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전제는 모래바닥처럼 그 위에 내가 세우는 모든 생각과 행동들을 집어삼켜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끊임없이 타인들과 나를 비교하며 의미없고 나약해빠진 내 삶을 혐오했다. 대학 안에서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내가 기성 제도권 안에서 버티지 못하자 한국은 아무 미련없이 나를 버렸다. 노동하지 못하고 공부하지 못하는 자는 국가에 부담만 될 뿐이었다. 직장이 없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 되자 나는 순식간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도와주지 않았다. 다시 제도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도움을 제공하는 곳도 없었다. 내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딱 죽지 않을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야 했지만 나는 불태울 만한 것도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불태워봐야 비틀린 사회에서 살아남을 비틀린 방법을 찾아낼 뿐이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사회에서 나가떨어졌다. 버려진 인형처럼 방구석에 팽개쳐졌다. 그러다가 죽으려고 여행을 떠났다. 어차피 죽을 거 한국에서 죽으나 외국에서 객사하나 다를 거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재수없어 외국 무장 강도를 만나 살해당해도 죽는 건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살 용기도 능력도 없는데 외국 나가 죽지 뭐, 생각했던 게 결론적으로는 내게 한국에서 살아갈 용기와 능력을 주었지만 이 용기와 능력은 한국이 준 게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도 나는 한국을 싫어했다. 집나갔던 미운 자식이 집에 돌아가듯 나를 받아주는 곳이 이 곳뿐이라 돌아온 것이다. 한국도 나를 받아주기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를 받아주었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면서 미워한다. 나를 쳐낸 나라, 제도권에 적응하지 못하자 가차없이 버린 나라, 하지만 동시에 내 가족과 친구들을 준 나라, 좋은 사람들과 좋은 문화를 가진 나라. 성숙한 정치 문화는 없을지언정 선진 정부 서비스를 가진 곳, 영국에서 코로나 록다운을 보내며 애愛가 좀 더 깊어진 나라, 내게 한국은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