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09.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 중 1순위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가는 것이었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영국 서머싯 주 필턴 지역에서 1970년 이후 매년 6월에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이다. 연인원 20만 명이 허허벌판에 세워진 십 수 개의 공연 무대 주변으로 텐트를 치고 4박 5일 동안 축제를 즐긴다. 원경에서 부감으로 찍은 영상을 보면 아주 짧은 시간에 도시 하나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대단한 광경이라서 경이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음악에 관심을 기울여 듣기 시작했던 십 대 시절 이후 글래스톤베리 공연 영상을 보며 언젠가 꼭 가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했다. 야구를 좋아해서 월드시리즈를 직관하는 게 꿈인 후배가 그곳에 가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냐고 묻길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를 1차전에서 7차전까지 모두 가장 좋은 자리에서 직관하는 것에 견주었더니 그렇게 엄청난 의미냐고 놀랐다. 그렇다. 나에겐 큰 의미를 지닌 버킷리스트였다.
영국 브리스톨에 사는 친구는 매년 그곳의 사이트 하나에 빌리지를 세워 활동하는 퍼마컬쳐(Permaculture) 커뮤니티에 속해있어서 매년 그곳에 스태프로 가서 일도 하고 축제도 즐긴다. 그 친구에게 글래스톤베리에서 만나자는 거짓말 같은 약속을 주문처럼 하곤 했다. 그런데 마침 회사에서 4년마다 2주씩 주는 안식휴가를 2019년에 쓸 수 있게 되어 이번에야말로 꿈을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2018년 10월에 티켓팅부터 시작했다. 13만 장 정도를 판매하는데 전 세계에서 동시 100만 명이 접속한다. 친구의 도움으로 총 6대의 기기를 동원했는데도 불구하고 티켓팅에 실패했다. 카페에 보면 성공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던데 어째서 나에겐 허락되지 않는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다. 이번엔 아니구나, 풀 죽어 있는데 친구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 우선 비행기표를 끊으라고 했다. 안되면 영국 여행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휴가를 내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결론적으로, 친구의 도움을 받아 퍼마컬쳐 커뮤니티를 통해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드디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갈 수 있게 된 거다. 진흙 뻘밭에 뒹굴기 위해. 발광하는 피라미드 앞에서 뛰기 위해. 개인사(史)적으로 역사적인 과업을 마침내 달성하기 위해. 쿨한 척할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9년 6월, 런던으로 향했다. 글래스톤베리로 떠나기 전 며칠은 런던 여행을 하며 그곳에 사는 또 다른 친구와 만났다. 미술관에도 가고 뮤지컬도 봤다. 런던은 새로우면서도 낯설지 않았다. 하이드파크를 산책하며 휴가를 만끽했다. 런던은 훌륭한 애피타이저였다. 체력을 아끼면서 천천히 걸었고 마음에 여유가 있어 사진을 많이 찍었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은 와이파이 환경에서 클라우드로 자동 업로드되도록 설정해 두었다. 숙소에 돌아오면 그날 찍은 사진은 자동 업로드되었다.
글래스톤베리로 가는 버스에서 밖을 내다보는데 푸르게 펼쳐진 평원에 거대한 돌들이 규칙적으로 솟아 있었다. 그게 그 유명한 스톤헨지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분명 굉장한 무언가 인 것 같았다.
얼마간을 더 달리고 버스가 멈췄다. 버스에서 내려 게이트를 통과하고 친구가 텐트 자리를 잡아 놓은 사이트로 가는 길만 20분이 걸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알록달록 텐트와 깃발들. 사방으로 보이는 작고 큰 무대와 장식들. 주변으로 펼쳐진 구릉과 초원들. 그리고 사람들. 이 광경 역시 굉장한 무언가 임에는 틀림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뜨겁게 해후했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한복판에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음악 공연 중심이긴 하지만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거대한 축제다. 그동안 영상이나 영화에서 봤던 건 무대 공연이 대부분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어떤 밴드의 공연을 볼 것인가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무대 간 거리가 너무 멀어서 라인업에 따라 무대를 이동하면서 공연을 보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하긴 그 많은 사람이 모이는 축제인데 어찌 공연만 보고 듣겠는가. 서커스, 토론, 미술, 전시 등 많은 분야를 아우르는, 말 그대로 초대형 축제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널브러져서 논다. 여기저기를 그냥 다녔다. 아무 데나 주저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밴드의 공연을 보며 충만했고, 이름도 모르는 밴드가 연주하는 끝내주는 음악에 맞춰 춤췄다. 시간이 흐르면서 얼떨떨하고 흥분되었던 마음은 차차 제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가시지 않는 감동이 계속해서 가슴을 찡하고 울렸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못 한 게 아니었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못 한 거였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흘렀다. 여름이 되면 우후죽순 쏟아지는 국내 록 페스티벌 중 한두 개를 골라 꾸준히 다니면서 나름 만족했다. 일주일을 위해 휴가를 맞춰 내고 그 먼 영국까지 가서 공연만 보고 다시 돌아와서 회사에 복귀할 일을 생각하면 아득했다. 그래서 그냥 언젠가, 언젠가, 하고 있었다. 티켓팅도 알아보지 않았다. 여름이 되면 올라오는 그해의 공연 영상을 봐도 그러려니 했다. 심장이 전처럼 뛰지 않았다.
그러니 엄청나게 간절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버킷리스트는 의외로 간절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내게 그건, 했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 정도로 온화하고 얌전한 꿈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안 하면 그만, 이라는 식으로 소홀하게 대하기엔 또 꽤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한 인간이 죽으면 거기서 세계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나는 죽기 전에 무언갈 했든 하지 않았든 죽음과 함께 모든 의미도 사라진다고 본다. 한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는 그렇다는 거다. 그러나 죽음은 내적으로 한 세계의 종결이라는 의미를 지니므로,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에는 매우 중요하다. 완벽하진 못할지라도 완전하게 종결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언젠가 죽을 걸 알면서도 이렇게 열심히 시간을 채우면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그러니 버킷리스트라는 건 엄청나게 무겁지도,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로 가볍지도 않았던 거다.
그중에 한 개를 했다. 약 20년 이상을 품고 있던 거다. 아마 너무 깊숙이 박혀 있던 거라 꺼낼 때 찡하고 가슴을 울렸던 게 아니었나 싶다.
관광객처럼 사진만 찍어댄 건 아니지만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은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나름 열심히 담았다. 여기 왔다는 걸 기억하려고 셀카도 찍었다.
삼일째 오후에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밥을 먹을 때 옆에 두었던 것을 잊고 일어났다. 찾을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있던 일행 한 명도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보관소에 돌아와 있었다. 내 것만 마지막 날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5일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언젠가 돌이켜보면 꿈같은 5일로 기억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퍼마컬쳐 크루로 일했던 친구가 그곳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을 기다리며 페스티벌이 끝난 글래스톤베리에 하루를 더 머물렀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쓰레기와 오물이 잔뜩 남았다.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남긴 쓰레기의 종류와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갈매기들이 날아와서 버려진 텐트에 들어가 쓰레기를 쪼았다. 무대는 순식간에 해체되어 사라졌고 잔디가 있던 자리에 흙먼지가 날렸다.
그렇게 씁쓸한 마지막 모습까지 보고 친구와 함께 브리스톨로 갔다. 휴대폰을 잃어버려 한국으로 돌아갈 일이 막막해진 나를 위해 친구가 오래전에 썼던 휴대폰과 유심칩을 주었다. 친구의 집에서 며칠 머무르며 브리스톨을 구경했다. 뱅크시가 남긴 그래피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친구와 함께 런던으로 가서 이틀을 여행했다. 글래스톤베리로 가기 전 만났던 친구도 불러내 셋이 밥을 먹고 사진을 찍었다.
런던을 떠나는 날 새벽. 깊게 자지 못해 멍한 상태로 역으로 갔다. 비행기 탈 사람 사정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듯 출발하지 않는 히드로 공항 행 기차에 앉아서 마음 졸이고 있는데 갑자기 기차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방송이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다른 역으로 이동하라는 거였다. 사람들이 뛰는 방향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빌어먹을 놈들. 무책임하고 불친절한 영국놈들. 그 순간에는 영국 전체가 증오스러웠다. 지하철에 타긴 탔지만 내려야 할 역 이름을 까먹어서 헤매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자기가 내리는 곳에서 내리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 사람의 도움으로 어느 역인가에서 내려 또다시 미친 듯이 뛰어서 거기 서 있는 기차에 탈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 표를 본 수속 직원이 말했다. You'd better run. 또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검색대에서 잡더니 샤워용품을 다시 싸라고 했다. 빌어먹을 영국놈들. 그리고 또다시 뛰었다. 미친 듯이 달린 끝에 아직 닫히지 않은 탑승구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갈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2주간 쌓인 먼지를 닦고 샤워를 하다가 엄청난 피로가 몰려와 쓰러져 죽을뻔한 걸 간신히 수건걸이를 잡고 버텼다. 그렇게 뻗어서 다음날 출근하지 못했다. 회사 동료들은 휴가를 떠난 사람이 복귀할 날인데 출근도 하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으니 영국에서 무슨 일을 당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고 다음날 얘기했다.
피로와 시차를 모두 극복하고 얼떨떨함도 서서히 가라앉을 즈음 여행을 정리하면서 클라우드를 열어보았다. 클라우드에는 글래스톤베리로 떠나기 전날 밤까지 런던에서 찍은 사진과 글래스톤베리를 떠나 브리스톨에 도착한 날부터 찍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글래스톤베리에서 찍은 사진만은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와이파이 환경에서만 자동 업로드되도록 설정해 놓았으니 글래스톤베리에서 찍은 사진은 업로드되지 않은 거였다. 정말 단 한 장의 사진도 없었다. 믿을 수 없었다. 얼빠진다는 말을 체감했다. 매년 글래스톤베리에 스태프로 가는 내 히피 친구는 사진 따위 찍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이지, 내가 거기에 갔다 왔다는 증거는 이 글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