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달 살기라는 걸 해 봤다. 강원도 평창이 최애 장소 중 하나이나, 2월은 평창에 있기에 추운 날씨다. 그래서 큰맘 먹지 않으면 갈 수 없고, 한 번도 가 본 적 없고, 따뜻할 것 같은 남해로 한 달 살기 장소를 정했다.
남해는 Slow City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한적한 도시여서 어디를 가도 사람 많지 않게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크지 않은 도시라 가장 먼 곳이 차로 40분, 대부분 장소는 20-30분 내에 도착이 가능하다.
한 달을 되짚어보면, 첫 번째 주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동안의 생활에서 동떨어져 나만 나왔기에 세상의 소음이 갑자기 차단된 느낌이었고 일의 집중도가 확 올라갔다. 커피 한잔 들고 앞바다를 보며 밖에 나와 책을 읽으며 더없이 행복했고, 밀린 일들을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반나절은 남해 구경, 남은 반나절은 일을 하며 한 주를 보내고 나니, 일을 하려 남해까지 온 건 아니지 싶었다.
둘째 주에는 남해바래길을 걷기 시작했다. 총 본선 16개, 지선 4개의 총 20개 코스를 다 걸으면 240km이다. 매일 한 개 코스씩 걷기로 마음먹고 지선 코스 중 하나인 '다초바래길'을 시작으로 바래길을 종종 걸었다. 그리고 막내동생네 식구가 놀러 와 같이 놀러 다녔다.
셋째 주에는 셋째 동생네가 놀러 왔고, 셋째 주가 끝나갈 무렵에는 둘째 동생이 놀러 왔다. 마지막 주에는 막내 동생네가 다시 놀러 왔다.
동생네가 왔을 때마다 장관인 보리암 일출을 보러 갔다. 한 달 사이 세 번이나 봤지만 지금도 다시 싶은 보리암 일출이다.
한 달 살기를 끝내고 집으로 차를 몰고 오며, '한 달 살기로 난 뭐를 얻었을까?'와 '제대로 한 달 살기를 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무계획과 마음 가는 대로 했던 한 달 살기 후 남은 게 무엇일까?
그 답은 한 달 살기를 마친 2주째 접어든 지금까지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한 달의 멈춤' 후 주변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내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고, 그동안 하던 일의 방식이 달리, 주변 사람들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눈으로 내 주변이 보인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둘째 지금은 체력이 아주 좋다. 한 달을 잠도 원하는 만큼 자고, 쉬고 싶으며 쉬었더니 몸 상태가 아주 좋다.
한 달 살기를 하기로 결심했던 이유는 동료 코치 때문이었다. 여름마다 두 달 휴가를 내고, 그 시간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자연을 즐기던 그 코치의 인생이 꽤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당연하게 여겼고 어떻게든 이겨나가려 노력했던 그 일상을 그 코치는 바꿔 버렸다. 처음 두 달 휴가 후 직장에서 역할을 바꿨고, 두 번째 두 달 휴가 후 직장을 나와 프리랜서가 됐다. 전에 얼마나 힘들어했고, 변화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는지 봐 왔던 내가 결정의 종류와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속도는 꽤 인상적이었다.
돌아보면 그 코치에게 두 달 휴가 후 어땠냐고 물으면 'Fantastic'이라고 대답했고, 진정한 변화는 그 후 몇 개월 동안 진행됐다.
따라서 나의 한 달 살기의 효과는 이제부터 나타나겠구나 싶다.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니게 되는 그 경험과 새로운 눈으로 내 인생을 바라보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내가 기대된다.
다음 한 달 살기는 어디로 갈까? '산티아고 순례길'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다. 아무래도 거기를 먼저 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