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엘 Nov 17. 2023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교복을 입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고3의 가을 무렵이었다. 당시의 나는 미래의 일이나 입시 같은 건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왠지 이 얼마 남지 않은 고교생활을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은 민준과 같았다.




그는 손재주가 유난히 좋은 친구였다. 학급에서 하나둘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은 항상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더 특별하게 만들어 내고 그려낼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보통 키에 크고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항상 어딘가 엉뚱한 면이 있어서 학교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런 친구였다. 관심사가 비슷했던 덕에 나는 그와 가까워졌고, 고교 시절과 20대 초반 무렵까지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 어울리며 보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가장 처음 사진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도 그가 잠시 빌려주었던 50만 화소의 디지털카메라 덕분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카메라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만듦새도 조악했고, 셔터 외에는 어떤 기능도 없던 물건이었다.




우리는 무대에 서기로 했다. 학기가 끝날 무렵 학교에는 작은 축제가 있었고, 의기투합하여 거기서 함께 노래하자고 결정했다. 놀랍게도 대충 참가 신청과 곡 결정만 해두고 연습은 별로 하지도 않았다. 평소에 노래방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고, 익숙한 곡을 골랐기 때문에 걱정 같은 건 없었다. 정말 단순히 스스로를 위한 기억에 남을 만한 무언가가 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무대는 나쁘지 않았다. 강당에 가득 찬 학생들의 환호에 짧은 순간 스스로가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의 고교 시절 마지막 무대가 막을 내렸다. 여담이지만 돌아가는 길에 어느 여자아이가 다가와서는 오늘 노래 너무 잘 들었다며 인사를 건네주었는데, 처음 겪는 일이라(이후에도 겪은 적 없는) 당시엔 무어라 대답할지도 몰라서 도망치듯 고맙다는 말만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사랑스럽고 귀여운 순간이었다.




2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는 여러 현실적 이유로 거의 연락을 하지 못한 채 지냈다. 그러다 2~3년 전 갑작스레 연락이 왔고, 성형수술을 하게 될 거라 퇴원하는 날 자기를 집까지 태워 줄 수 있겠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워낙 상황이 우스웠던 터라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제법 외진 곳에 혼자 살고 있었다. 단층으로 된 오래된 주택이었고, 마당에는 아우디의 TT와 미니, 붉은색 바이크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어쩌다 이런 곳까지 흘러와서 살게 되었는지 같은 건 딱히 물어보지 않았다.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십수 년 만에 만난 친구가 그냥 반가운 마음뿐이었다. 여전히 엉뚱한 면이 있었고, 여전히 유서를 써둔 채 지내고 있었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종종 유서를 써왔다. 내용도 대체로 엉뚱해서 나의 물건 무엇무엇을 누구누구에게 나누어줄 것이다. 같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날도 혹시라도 수술 중에 죽게 되면 무엇무엇을 어찌어찌 할 것이라는 유서를 준비해 둔 상태였고, 집에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젠 필요 없다며 내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 통에 던져 넣어 버렸다. 그러고는 다음 유서에는 네가 집까지 태워줘서 고마우니 나의 차를 너에게 주겠노라고 써두겠다고 했다. 아무튼 엉뚱한 구석이 많은 것이다.




이후에 그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간혹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어느 날은 20대 초반 무렵의 내 사진을 갑자기 전부 보내줬다. 워낙 흑역사 같아서 어디다 내놓을 수도 없는 그런 사진들뿐이었는데, 그럼에도 이 긴 시간 잘 보관해 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민준은 나의 친동생과도 취미가 겹쳐서 오히려 그쪽과 더 이따금 연락하며 지냈는데 작년 초 무렵 동생에게 최근 민준과 연락을 한 적이 있냐는 메신저가 왔다. 특별히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었다고 전했는데, 연락이 전혀 닿지 않는다고 이상하다고 했다. 항상 엉뚱한 구석이 있어서 뭔가 또 꾸미고 있겠지 싶어 며칠 뒤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긴 신호에도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있었지만 그대로 얼마간 시간이 흘러 현실로 돌아와 지내던 무렵 며칠 전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찾았다며 메신저 캡처 화면을 보내왔다. 2022.6.16 자살로 발견되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난하고 건강하지 못한 집안 환경 때문에 줄곧 불행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밖으로 표출하지 못했고, 손끝으로 만들어 내는 것들에서 위안으로 삼으며 지내왔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조금도 이해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 스스로 세상을 떠나겠다는 그 결심과 두려움과 슬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민준의 죽음은 나에게 많은 말을 건네왔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이젠 부디 평안했으면 한다. 그리고 만약 천국 같은 곳이 있다면, 생전에 그토록 타고 싶어 하던 포르쉐를 옵션 가득 채워서 정신 나간 놈처럼 달리고 있으면 좋겠다. 안녕, 오래된 친구 준상아.

작가의 이전글 겨울의 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