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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Feb 22. 2024

버스를 탄 결핍

버스를 탈 때면 사람들은 내 옆자리를 피해서 앉았다. 옆에 앉았다가도 다른 자리가 생길 때면 금세 자리를 옮기곤 했다.


이런 현상에 눈치를 채게 된 이후부터 줄곧 버스를 탈 때면 누군가가 내 옆자리에 앉는지 앉지 않는지 내내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이런 반복되는 피해의식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는 현상은 점점 더 스스로를 어둡고 외로운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오늘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다른 자리가 생기자 옮겨 앉았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의기소침한 소년의 모습이 해일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혹시나 내릴 차례가 되어서 내린 건 아닌지 확인까지 하고 말았다. 10년도 지난 일들인데 여전히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예전의 나는 자신이 없었다. 유난할 정도로 소극적이었고, 발 끝을 보는 시간이 길었다. 일 년 내내 말 한 마디 안 나누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주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초콜릿과 편지를 받았을 때는 누군가 장난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너무나 미안하지만 어떠한 답도 감사의 인사도 전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나에게 생기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작업하는 사진은 얼핏 보면 예뻐 보일 수 있지만 많은 부분 먼 곳을 향해있다. 한걸음 뒤에 떨어져서 바라보는, 언젠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동경 어린 시선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결핍이었고, 말할 수 없는 수줍음과 제대로 전하지 못한 사랑 같은 것이었다.


사실 자세히 보면 지금의 내 사진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같은 사람이 작업한 건가 싶을 정도로 다른 톤앤매너의 사진들도 많다. 대부분의 사진작가는 비슷한 결의 작업을 이어온다. 내가 다른 이유는 사진을 바라봐 주는 사람들을 통해 스스로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말을 걸어주고, 칭찬해 주는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자신도 혼란스러울 정도로 이건 전에 어떻게 했더라? 싶을 때도 있다.


결국 사진을 하는 건 사랑받기 위함이었다. 내 옆에 앉아 주기를, 당신의 발걸음이 나를 향하기를, 그 자리에 있어 주기를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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