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엘 Mar 20. 2024

어쩌면 봄

거리를 나서자 신학기의 냄새가 났다. 어딘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고양이처럼,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 같이 설레는, 그런 종류의 냄새다. 그림자의 옆자리엔 약속이라도 한 듯 온화한 빛의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그립고 따뜻한 이 자리는, 언제까지라도 바라볼 수 있었다. 봄이 오는가 싶다가도 이따금 물에 젖은 겨울이 잠깐씩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3월 그리고도 말일에 가까워졌다. 집 근처 공원의 양지바른 곳엔 매화가 피어있었다.


언젠가 이 거리도 그리워질까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언젠가 이런 일들도 추억이 될까 라는 생각도 한다.


조금은 미워졌거나 나의 마음과 다르게 온도 차가 있던 사람도 이제는 아무렴 어떤가 싶다.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으면 대체로 평화롭다.


운이 좋게도 여전히 촬영을 하고 무엇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감사한 마음 뿐이다. 늘 더 잘하고 싶다.


이따금 에세이집을 내라는 소리를 듣는다. 혼잣말 같은 이런 글을 누가 읽어줄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런 말도 여러 번 듣다 보니 그래도 한 번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조금씩 하게 된다. 사람은 칭찬을 먹고 자라니까.


카나가 서울에 있다. 아마도 이 도시에서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마지막일 것이다. 그녀는 한국어를 할 수 없음에도 용감하게 잘 다닌다. 돌이켜 보면 예전의 나는 그러지 못했는데, 새삼 대단 하다고 느낀다. 때때로 어른 같고, 때때로 아이 같다.


머지않아 벚꽃이 핀다. 그립고 애틋했던 봄날이, 수많은 계절과 모든 기억이 일렁이고 발을 구른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한번 꿈을 꾼다.


거리에 나서서 손을 잡고 걷는다.


손 틈 사이에 옅은 분홍의 봄이 피어난다.

작가의 이전글 버스를 탄 결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