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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Dec 25. 2022

이렇게 해두면 한 번이라도 더 볼까 봐

세계지도

| 너 좋으라고 공부하라는 말에 생략된 부분은 |

 '너 좋으라고 공부하는 거지, 나 좋으라고 하는 거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이 말 앞에 생략된 부분이 좀 있긴 했다. 이를테면 '네가 지금 실력을 쌓아둬야 나이 들어서도 내게 손 벌리는 일이 없을 텐데, 그건 내게도 좋은 일이지만 굳이 그걸 강조해서 말하진 않을게'가 생략되었다고나 할까. 


 내 노후의 가장 큰 변수는 아이다. 아이가 적절한 시기에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만 나의 노후는 빈곤을 가까스로 면할 수 있다. 풍족한 노후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저냥 먹고사는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이다. 하지만 지금 내 처지엔 그 수준을 이루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아이는 공부를 해야 한다. '너 좋으라고 공부하는 거야'라고 말은 하지만 나의 노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당연히 내 노후 계획에 아이에게 받는 용돈 같은 건 없다. 나 역시 아이에게 손을 벌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이의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 상한선을 마련해두지 않고 아이를 지원해주다가는 나의 노후를 나 혼자 힘으로 책임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공부만 하면 적절한 시기에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나? 그리고 공부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아이라면 어떻게 하나.


| 불안해서 한 일 치고는 꽤나 안전해 보이는 책 읽기 |

 남들도 다 가니까, 혹은 학원이라도 가야 공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학원 등록을 해줄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는 마음이 많이 흔들린다. 영어와 수학은 기본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에 자꾸 귀가 쏠린다. '놀더라도 학원에 가서 놀아라'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는데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나도 아이에게 똑같은 말을 하게 될까 봐 두려워졌다.


 어떤 종류의 일을 하든, 스스로 선택한 일을 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를 수 있는 선택의 범위가 너무 좁아질까 봐 걱정이 된다. 공부에 열의가 없는 아이를 학원에 등록시켜봤자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나의 불안을 해소하고 싶어 진다. 불안감이 심하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될 수도 있기에 일단 불안해서 한 일 치고는 꽤나 안전해 보이는 책 읽기를 했다. 그리고 아이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세계지도까지 펴놓고서.


| 세계지도와 친해져 보자 |

 <Extra Credit>은 미국 학생과 아프가니스탄 학생의 펜팔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아이는 이 책을 읽고 자기도 해외 펜팔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마약을 하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해외 펜팔을 하고 싶다는데 그 정도는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나는 어떻게든 펜팔 친구를 구해주기 위해 애를 썼다. 나의 펜팔 친구를 통해 아이의 펜팔을 구해주는 방법을 썼기 때문에 아이가 펜팔 친구를 갖게 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는 지금 네덜란드, 트리니다드 토바고, 멕시코 친구와 펜팔을 하고 있다. <Extra Credit>에서 봤던 것처럼 서정적이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 좋겠지만, 아이 말로 미루어보아 '나는 BTS의 지민이 좋아. 너는 어떤 멤버를 좋아하니?' 수준의 대화가 전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 밖의 친구와 교류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경험인가. 네덜란드 친구와 펜팔을 한다고 해서 지도에서 네덜란드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놀라움을 안겨주긴 했지만 말이다.


 세계지도에서 우리나라를 보면 정말 작은 나라라는 사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나라이기도하지만 요즘 보이는 인구 감소세와 평균 실종 현상을 생각하면 아이의 미래는 더욱더 걱정스럽다. 교과목으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언어로서 영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경 쓴 이유다. 혹시라도 우리나라에서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하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하니까.


 넓은 지구촌이 눈에 익을 수 있도록 지도를 붙여두고 싶었다. 그냥 붙여놓으면 보지 않을 것 같아 대륙별로 몇몇 나라를 정해서 아이의 사진을 붙였다. 두루마리 휴지로 얼굴을 말고 있는 미라 흉내 사진은 이집트에 붙이고, 아마존에 살고 있다는 핑크 돌고래를 닮은 인형을 들고 찍은 사진은 브라질에 붙였다. 자기 사진이 붙어있는 지도라면 한 번이라도 눈길이 더 가지 않을까 하는 꿍꿍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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