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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Dec 19. 2022

만약 6학년인 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딸에게 내 어린 시절 일기장을 보여준 뒤

|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딸이 나온다길래 |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되어버렸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딸이 나온다는 소개에 이끌려 <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을 집어 들 때만 해도 몰랐다. 독후활동을 위해 케케묵은 내 일기장을 꺼내게 될 줄은. 그리고 30년 전 일기를 읽는 것에 이런 예상치 못한 효과가 있는 줄은.


 <우리들의 짭조름한 여름날>은 유쾌한 청소년 소설이다. 오래간만에 아이와 나 둘 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독후활동으로 연결해보고 싶었다. 어떤 활동이 좋을지 고민하다 주인공이 엄마의 학창 시절 일기장을 발견하는 페이지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래, 일기장. 초등학교 시절에 쓴 내 일기장을 보여주자.


 아이가 내 일기를 보고 '아, 우리 엄마는 이렇게나 열심히 공부를 했구나. 나도 엄마를 본받아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나도 몇십 년 만에 꺼내는 일기장이라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40대가 30년에 쓴 전 일기를 읽어봄으로써 아이가 인간의 생애주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길 바랐다. 그러니까 '네가 언제까지나 13살일 줄 아니? 일기장 속의 어린이가 어느새 이 나이가 된 거 봐봐. 그러니까 미래를 위해 공부하렴!' 하는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다.


| 어린 시절의 내 일기장을 보니 |

 자주 꺼내지 않는 물건은 깊숙이 보관해도 좋다는 정리 수칙에 따라, 나의 예전 일기장들은 낑낑거리며 손을 뻗어야만 꺼낼 수 있는 공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지간히 큰 마음을 먹지 않는 다음에야 꺼낼 일이 없는 박스였지만 나는 아이와의 독후활동을 위해 그 큰 마음을 먹기에 이르렀다. 


 그 시절엔 매일 일기 쓰기가 숙제였는지 일기장이 제법 많았다. 그림일기를 쓰던 저학년 시절을 빼면 한 학년마다 열 권쯤 되는 일기장들. 어머, 내가 생각보다 꽤 성실한 모범생이었나? 잠시 설레어하며 일기장을 펼쳤다. 그런데 웬걸. 뭐 그리 하기 싫은 것이 많은지, 일기장엔 온통 '공부하기 싫다', '숙제하기 싫다', '가족 외식이 싫다', '중학교 가기 싫다' 등등 '싫다' 천국이었다. 심지어 '일기 쓰기 싫다'까지. 적어도 아이가 내 일기를 읽고 자신과 비교하며 주눅 들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아이는 웃긴 만화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표정으로 내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엄마는 왜 이렇게 눈치가 없었어? 선생님이 검사하는 일기장에다가 대놓고 공부하기 싫다고 쓰면 어떡해? 어이구... 쯧쯧..."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와 공유하는 노션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아이의 기록을 도와줄 몇 가지 질문을 적어두었다. 


| 만약 6학년인 엄마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말해줄 수 있다면.. |

 공부하기 싫다는 말로 일기장에 도배를 하던 초6이 자라서 공부 예찬론자인 40대가 되었다. 아이가 이걸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하며 적은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일기장에 나오는 6학년의 모습에서 지금 엄마의 모습을 찾을 수 있나요? 있다면 어떤 점을 찾을 수 있나요? 없다면 어떻게 달라진 것 같나요?

2) 만약 6학년인 엄마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30년 뒤에 너는 ***하게 살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 ****하는 게 좋겠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줄 것 같나요?

3) 그렇다면, 30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와서 "30년 뒤에 너는 ***하게 살게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 ****하는 게 좋겠어"라고 말한다면 어떤 말을 할 것 같나요?


 선생님이 검사하는 일기장에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썼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눈치가 없었던 게 아니냐던 딸은, 엄마와 공유하는 노션 페이지에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는 모범 답안을 써두었다. 그저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썼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번 기회에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며 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둘 중 어느 쪽이든 크게 개의치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내가 초6일 때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를 봤기 때문이다. 


 다시 박스에 넣어두려고 했던 일기장은 책장 한편에 꽂아두었다.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꺼내서 읽을 요량이었다. 어린 시절에 쓴 일기를 통해 아이를 보는 내 시선이 너그러워질 줄은 몰랐다. 우리의 첫 번째 독후활동을 통해 아이 공부에 대한 조급증이 누그러지다니,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이게 며칠이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 너그러운 상태를 즐기기로 했다. 그다음 독후활동을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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