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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Jul 28. 2021

취미는 퇴사 특기는 입사

여기저기 뼈를 묻고 다니는 어느 사원증 콜렉터의 이야기

올봄, 일곱 번째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대학교 졸업을 두 달 앞두고 시작된 직장 생활은 여러 회사를 거치면서 이제 15년을 맞았고, 그간 여섯 번의 퇴직금을 받았다. 해외 생활과 수험으로 잠깐씩 비는 시간은 있었지만 10년 넘게 부지런히 고용 보험을 납입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업 급여는 단 한 차례도 받지 못했다. 처음 시작은 대기업이었다. 스펙이랄 것도 딱히 없는 자신을 간택해 준 대기업에 뼈를 묻겠다고 눈을 반짝이던 신입사원은, 그 회사를 시작으로 방송국, 박물관 등 다른 여러 곳에 추가로 뼈를 묻었다. 사람 몸에 뼈는 무려 206개나 있으니까 나는 앞으로도 꽤 여러 번 뼈를 묻겠다는 헛공약을 더 할 수 있다. 회사만큼이나 직급도 다양하게 변했다. 정규직으로 시작해서 계약직, 공무직(무기계약직)을 거쳐 다시 정규직이 되었다.

이직을 할 무렵에 가끔 사주를 보러 갔었다. 모든 일이 너무나 잘 풀리는 사람보다는 뭔가 답답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주를 보는 사람이 더 많을 거고,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주로 사주를 보러 가는 타이밍은 퇴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시점이었다. 어디를 가도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데, 내 사주에 소가 셋이라서 평생 일을 부지런히 할 것이고 심지어는 그 소가 일구는 땅이 얼어있어서 꽤나 고생스러울 거라고 했다. 내가 아직 이직에 대한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직장을 좀 여러 번 옮겨 다닐 텐데, 땅이 얼어서 그렇다는 둥 조직생활이 안 맞아서 그렇다는 둥 다양한 이유를 댔다.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어쨌든 내가 부지런히 직장을 옮겨 다니며 정년 무렵까지 일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막막함과 그래도 밥을 굶지는 않겠다는 묘한 안도를 동시에 느낀다.

내가 제일 처음 만난 경제 활동하는 어른은 아빠였고, 아빠는 아직도 현역 월급쟁이다. 당연히 어린 시절 나는 회사에 소속되어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 게 유일한 경제활동 방법인 줄 알고 자랐다. 그리고 월급날 꼭 뭔가를 사 오시던 아빠를 보면서 나는 커서 월급날 뭘 사올까를 상상했었다. 사회에 나오고 나서 여러 형태의 경제 활동 방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월급쟁이로 살고 있고, 가능하면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속담이 있는 나라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퇴사는 약간 과장을 섞어서 시대정신이라고 해도 될 만큼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미래의 퇴사자들은 앞선 퇴사자들의 이후 삶의 궤적을 짚어보며 퇴사 여부와 시기를 저울질한다. 절이 싫어진 중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나도 퇴사를 하기 전에 비슷한 케이스의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을 종종 본다. 뼛속까지 월급쟁이 성향을 타고난 나에게 창업이나 프리랜서는 아직도 먼 이야기다. 아직은 뛰어들고 싶은 마음도 감당할 용기도 없다. 나에게 퇴사는 그저 또 다른 입사를 위해 필요한 일일 뿐이다. 절이 싫어서 떠날지언정 개종을 할 마음은 없는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의 여러 단점은 월급이 주는 안정감을 아직은 넘어서지 못했다. 월요일마다 도대체 전생의 나는 무슨 대역죄를 지었길래 회사를 가야하나를 되뇌며 출근은 하지만, 그래도 그 고통보다는 매달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으로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는 자부심과 안도가 아직은 더 크다.

이번에 일곱 번째 이직을 하면서 나는 내 이력서와 자소서 폴더를 정리했다. 처음에는 회사별로 정리해뒀던 폴더는, 공기업/사기업 등 기업의 성격에 따라 합쳐졌다가, 이제는 큰 직군별로 정리하게 되었다. 그나마 형식이 대동소이한 이력서는 그렇다 쳐도 자소서는 각 기업들이 온갖 창의력을 다 발휘하는 바람에 책으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많아졌다. 문득 자소서 파일을 열었다가 왜 사람들이 자소설이라고 하는지를 새삼 깨닫고 민망해져서 닫게 된다. 자소서는 완전히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에 있는 느낌이다. 부디 내가 쓰는 자소설이 대하소설이 되기 전에 이직을 멈출 수 있으면 좋겠다.

이대로 몇 편을 더 쓰면 대문호가 될지도...

붙은 회사는 일곱 군데지만 떨어진 회사는 셀 수 없이 많다. 전형에 통과한 이력서보다는 걸러진 이력서가 더 많고, 면접도 마찬가지다. 폴더를 정리하다가 문득 '걸러졌던'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이직은 더 좋은 회사로 이동하며 점점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는 기록은 아니다. 다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에 가깝고, 그래서 이력을 들여다보면 그 무렵의 내가 뭘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목표에 맞게 커리어를 쌓았다기보다는 경력에 맞추어 스토리텔링을 하는 느낌으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봐왔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처음부터 목표가 확실해서 필요한 경력을 착착 쌓아나갈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내가 뭘 좋아하고 우선하는지를 알아가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간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이상과 확실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건 못해냈지만, 15년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회사를 옮겨다닌 결과 내가 원하는 형태에 가깝게는 살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 회사에 9시간 머물면서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적당히 바쁘게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회사 생각을 하지 않고 내 자유 시간을 좋아하는 활동에 쏟으며 살고 있다. 지금은 일과 삶의 분리와 균형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또 어떨지 모를 일이다. 누가 봐도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 번의 이직을 거쳤어도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면서 다닐 수 있는 회사를 찾는 방법은 이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다양한 경제활동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시대에 여전히 월급을 받는 회사원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을 것이다. 자신의 사업이나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자유로움이나 업무의 주체성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안정적인 소득이라는 장점이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이다. 장점에 마음이 더 기울어 회사에 소속되어 일을 하지만, 이제는 회사에서 큰 성과를 내고 함께 목표 달성을 해서 회사와 내가 함께 성장하는 그런 삶은 크게 바라지 않는다.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는 했지만 주인처럼 구는 건 원하지 않았던 회사들을 다녔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내 성향 자체가 그럴 수도 있다. 이렇게 열정도 적극성도 조금 부족해 보이는 보통 사람도 이직을 하고, 심지어는 여러 번 한다. 그러는 동안 회사에서는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적당한 보람을 느끼며 너무 과하지 않은 일을 하고, 회사 밖에서는 알차게 내 시간을 꾸려나가며 사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앞으로 하게 될 이야기들은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의 이직에 어쩌면 조금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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