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짐작하는 젊은 시절 아빠의 마음
태어나서 제일 처음 읽은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책은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들에게 물려받은 디즈니 명작 시리즈 중 한 권이었던 "추위를 싫어한 펭귄"이다. 3살 때 처음 읽은 후로 그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요즘도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는 로알드 달을 꼽으면서도 좋아하는 이야기로는 여전히 "추위를 싫어한 펭귄"이라고 답할 정도로 변함없이 좋아한다.
이미 고모네 사 남매가 돌려가며 읽은 책이었기 때문에 내가 물려받은 시점에도 썩 깨끗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그 책을 글자 그대로 정말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때문에 전집 중에서도 그 책만은 손때가 묻은 정도가 아니라 엄마가 테이프 수선을 수십 번 해야 할 정도였다. 열 평 남짓 반지하 방에서 갓 태어난 동생까지 네 식구가 생활하던 때라 새 책을 못 사주는 아빠는 그것만으로도 속이 잔뜩 상했을 텐데, 설상가상 그 책은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기 전에 나온 버전이었다. 방법을 찾던 아빠는 돈 대신 시간과 품을 들이기로 결심했다.
밤늦게 퇴근한 아빠가 상을 펴 들고 전집에 있는 '읍니다'의 이응을 색깔 펜으로 하나하나 시옷으로 바꾸는 동안 아빠 다리를 베고 나는 조잘조잘 떠들거나 다른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내가 뭘 했는지는 후에 엄마에게 들었을 뿐이고 기억이 정확하게 나는 건 아니지만, 아빠가 밤늦게 밥상을 꺼내 들고 오던 장면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다. 나한테는 아빠의 사랑과 헌신으로 기억되는 그 장면이 아빠한테는 그저 속상함으로 남아있는지, 아빠는 아직도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미취학 아동 시절 내내 끼고 살던 책과는 입학을 앞둔 어느 날 작별했다. 내가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꼭 아파트로 이사 가겠다는 결심을 젊은 부모님은 지켜냈고, 학교 입학을 몇 달 앞두고 우리 가족은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나에게는 보물이었지만 아빠에게는 가난의 상징처럼 느껴졌을 디즈니 명작 시리즈는 그때 버려졌다. 새 걸로 사주겠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으나, 그 후로 다른 전집을 종종 사주긴 했지만 그 시리즈를 다시 얻지는 못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제는 그냥 좋은 추억 정도로 느껴지지 않을까 해서 이야기를 꺼내보아도 아빠에게서는 비슷한 반응이 돌아온다. 여전히 그 시절을 떠올리면 미안함과 속상함이 먼저 튀어나오는 아빠를 보면서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도 그런 심정일 수가 있는지 늘 의아했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건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부터다.
여명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사는 곳은 겨우 여섯 평이될까 말까 한 원룸이었다. 갑작스럽게 이직을 하게 되면서 서울 한복판으로 이사를 하느라 우선은 작지만 깔끔한 곳에서 살다가 조금 넓은 곳으로 옮기려는 계획이었는데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과 그보다는 한참 완만하게 오르는 내 수입으로 인해 여의치 않았다. 500g이 될까 말까 하던 한 줌 고양이랑 같이 살기에는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여명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 입양 보낼 계획을 야무지게 세웠었다. 결국 여명이가 5kg이 되도록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여명이가 작을 때는 괜찮았지만, 점점 몸집이 커지면서 나는 손바닥만 한 내 방이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마른행주를 쥐어짜 낸 느낌으로 만들어준 수직 공간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여명이는 아무런 불만이 없어 보였지만, 내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밖에 사는 것보다 분명히 장점이 더 많을 텐데도 넓은 공간에서 못 뛰어논다는 그 단점 하나가 끝내 마음에 걸려서 미안하고 속이 상했다. 나는 마냥 즐겁게 기억하고 있는 반지하 단칸방을 떠올리는 아빠 마음이 이런 걸까, 그때 처음 느꼈다. 물론 어린 내가 어디서든 즐거웠던 것처럼 여명이도 사냥놀이를 할 때면 그 좁은 집에서도 숨을 몰아쉴 정도로 잘 뛰어놀았다.
이건 여명이만의 특징이라기보다 고양이라면 응당 그럴 것 같기는 한데, 여명이는 장난감을 사주면 알맹이보다 포장재에 관심이 많다. 그걸 담아 온 종이가방이라든지, 박스라든지. 장난감도 잘 가지고 놀면서 그것도 좋아하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문제는 항상 장난감 자체보다 포장재를 더 좋아하는 데서 온다.
몇 달 전 새로 산 장난감을 종이가방에 담아 온 적이 있는데, 장난감은 한 달 정도 가지고 놀더니 살짝 시들해졌다. 문제는 종이가방이었다. 이미 한쪽이 다 터지고 얼마나 몸을 문질렀는지 반들반들해질 지경인 종이가방을 여명이는 여전히 좋아한다. 이제는 정말 버려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버리려고 집어 들면 난리가 난다. 새 종이가방을 줘도 소용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새 전집을 사줬는데도 그놈의 너덜너덜한 펭귄책만 들고 돌아다니더라'며 한탄하던 아빠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아빠 딸이라서 그런지 요즘 조금 넓어진 우리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신나게 노는 여명이를 보면 가끔 그 좁은 집에서 정말 즐거웠을까 생각하다가 살짝 미안해진다. 그러다가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좁은 집을 즐거운 기억으로 남겼듯 여명이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혼자 마음을 정리한다. 거실 미관을 해치는 주범이라서 늘 버리고 싶은 너덜너덜한 종이가방도, 여명이에게는 내 펭귄책이나 다름없을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못 버리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게 두고 싶은 마음과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늘 부딪치는 중이다. 그렇지만 이사하면서 내가 애지중지하던 펭귄책을 버린 아빠의 단호함을 이제는 조금 닮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종이가방은 이제 정말 보내줄 때가 지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