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해지는 액셀러레이터 경쟁, 실리콘밸리도 예외는 아니다
오는 수요일과 목요일, 양 일간 실리콘밸리 대표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의 2024년 여름 배치 (S24) 데모데이가 열립니다. 이번 배치 또한 지난번과 규모가 비슷한 약 250개 기업이 7월부터 3개월간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는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하는 데모데이를 통해 대부분의 참여 기업들이 '데모데이 라운드'로 불리는 시드 펀딩에 본격 돌입할 예정입니다.
와이콤비네이터에 대한 위기설, 하향 평준화 설 등 매 배치마다 반복되는 레토릭이 있지만 그럼에도 독보적인 브랜드를 가진 와이콤비네이터의 명성은 여전한 모습입니다. 아직 데모데이를 시작하기도 전이지만 월드웨어 (World Ware), 테세우스 (Theseus), 다이오드 컴퓨터 (Diode Computers) 등 다수의 기업이 벤처캐피탈들을 줄 세우며 몰려드는 텀싯을 고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프로그램 진행이 한창이던 지난 8월 7일 와이콤비네이터는 새로운 공지사항을 하나 발표합니다. 바로 프로그램 사상 처음으로 가을 배치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와이콤비네이터는 2005년 출범 이후 20년간 1년에 2회, 여름 배치와 겨울 배치 형태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와이콤비네이터의 수장 개리 탠은 가을뿐 아니라 봄 배치 프로그램의 가능성도 언급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사실상 프로그램이 연간 2회에서 분기마다 진행되는 상시 프로그램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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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가을 배치는 지난 8월 27일까지 지원서를 접수했으며, 여름 배치의 데모데이가 끝난 직후인 바로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일정입니다. 현재 합격 팀들에게 이메일 공지가 속속 전달되고 있습니다.
우선 개리 탠은 프로그램 빈도를 높이는 가장 큰 이유를 배치 당 참여 기업 수를 분산시켜 프로그램의 몰입도를 높이는 전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와이콤비네이터는 풀타임으로 참여하는 그룹 파트너가 14명, 그리고 데모데이 자문에만 집중하는 파트타임 파트너가 4명 정도로 이뤄져 있습니다. 매 배치마다 250개 내외의 기업이 참여하니 파트너 당 담당 기업이 16 - 20곳으로 여전히 적지 않은 수준입니다.
와이콤비네이터가 내세우는 또 다른 이유는 '접근성'입니다. 전통적으로 와이콤비네이터의 데모데이는 겨울 배치가 끝나는 4월 초, 그리고 여름 배치가 끝나는 9월 말에 진행되는데 이는 벤처 투자가 가장 활발한 시즌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연중 시점을 가리지 않고 탄생합니다. 창업의 사이클에서 보면 와이콤비네이터의 스케줄은 '펀딩'과 '투자자'에 맞춰져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와이콤비네이터 파트너들은 이번 결정으로 인해 더 이상 창업자들이 프로그램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분기 배치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창업자는 언제든 지금 와이콤비네이터 지원에 대한 판단이 서면 한 두달 내에 지원서를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창업자들이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지원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접근성을 높인다는 표현에는 현재 와이콤비네이터가 직면한 고민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인즉슨, 최근 들어 될성부른 스타트업들이 더 이상 와이콤비네이터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액셀러레이터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불과 2 - 3년 사이 세콰이어캐피탈, 안데르센호로위츠, NfX 등 유명 벤처캐피탈들이 액셀러레이터를 직접 론칭하며 와이콤비네이터에 맞불을 놓은 상황입니다. 또한 AI에 특화된 액셀러레이터인 AI Grant는 프로그램 시작 3년 만에 퍼플렉시티, 커서 등 AI 유니콘들을 배출하며 주목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상위 1% 스타트업에게 와이콤비네이터는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죠.
세콰이어캐피탈이 운영하는 아크(Arc) 프로그램은 우선 투자 금액이 와이콤비네이터보다 많습니다. 게다가 융단폭격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다양한 클라우드 및 소프트웨어 크레딧까지 제공하며 초기 기업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세콰이어라는 네임 밸류와 더불어 투자 규모와 각종 혜택, 게다가 10곳 내외의 소수로 운영되는 배치 규모를 고려하면 프로그램의 이점은 분명합니다.
와이콤비네이터가 가을 배치 프로그램을 알리며 참여 스타트업이 받게 될 각종 소프트웨어 크레딧을 함께 발표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게다가 와이콤비네이터는 작년부터 AI 분야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막상 해당 스타트업들에게는 프로그램의 매력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상황입니다.
와이콤비네이터의 최근 결정은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가 직면한 치열한 경쟁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때문에 변화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배치 규모를 줄이는 대신 빈도를 높여 프로그램의 집중도를 높이기로 한 것이죠. 흥미롭게도 AI 열풍이 와이콤비네이터가 20년 동안 유지해온 시스템을 변경할 만큼 초기 스타트업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액셀러레이터가 스타트업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참여 여부가 스타트업의 성공과 반드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와이콤비네이터를 거치지 않고 유니콘 기업이 된 사례가 프로그램 출신 성공 사례보다 수십 배는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이 다양화되고 기업당 투자 금액도 증가하는 반면, 초기 단계의 시드 및 프리시드 펀드레이징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유명 액셀러레이터 졸업과 같은 성과 없이는 투자자들에게 경쟁력을 어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매주 수많은 AI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현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단순히 '팀'이나 '제품'만으로 회사를 평가하여 투자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투자 검토 과정에서도 유명 액셀러레이터 참가 여부와 그에 따른 다양한 부대 효과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추세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직행하려는 창업자라면 보다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게는 뛰어난 제품을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그 제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와이콤비네이터와 같은 최상위 액셀러레이터가 제공하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수백, 수천 명의 청중과 한 번에 연결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 액셀러레이터의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된 지금, 이러한 상황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전략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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