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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매기 Aug 05. 2024

최악의 수학여행 vs 눈물의 운동회

누구나 학창 시절 잊지 못할 추억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소풍, 수학여행, 운동회 같은 행사가 빠질 수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를 더 처량하게 만드는 단골 소재로 등장하듯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평생 동안 각인될 만큼 중요한 날이다. 엄마 아빠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던 날도 바로 그때였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게 아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힘들다는 변명으로 일 년에 300일을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했더라도 나머지 중요한 날 만큼은 무조건 자녀를 위해 멋진 추억으로 채워 준다면 훗날 당신은 좋은 부모로 기억될 것이다.

 


'매기야 학교 가자!' 집 밖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의 부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 갔나 봐' 친구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아차! 오늘은 수학여행 가는 날인데 늦잠을 자고 말았다. 이러다가 못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학교는 우리 집에서 단 10분 거리. 빨리 준비하고 뛰어가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챙기기 시작한다. 원래 계획은 아침에 예쁜 도시락도 만들고, 머리도 단정하게 정리하고, 그나마 괜찮은 옷으로 골라 입으려고 했는데 완전 다 망쳐버렸다. 세수도 못하고 밥이랑 반찬을 급하게 도시락에 담고는 그냥 냅다 학교까지 뛴다. 덩달아 지각인 동생들이 걱정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으니 빨리 학교에 가라고 일러주고는 그냥 내 갈길을 간다.


학교까지 뛰어가는 내내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린다. 숨이 차서 그런 건지 선생님한테 혼날까 봐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학교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이미 전교생들이 운동장에 모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 씨! 나 말고 지각한 사람 아무도 없나?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진짜 도망가고 싶다. 쪽팔려 죽겠다.'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동안 괜히 왔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세수도 못한 꾀죄죄하고 허름한 옷차림으로 전교생의 눈초리를 받은 나는 수학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이미 최악의 날을 맞이했다.


그때 그 시절 학교 선생들은 참 고약하고 못된 인간들이 많았다. 이미 충분히 창피스러운 나를 또다시 언급하며 망신을 주기 시작한다. '원래 9시에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한 명이 지각하는 바람에 늦어졌다. 앞으로 시간 약속을 잘 지키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버스에 타기 전까지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 시간 이후 수학여행이 어땠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날 창피하고, 수치스럽고, 망신스러웠던 그 장면만을 기억할 뿐이다. 내 나이 15살 때 일이다.



나는 이제 어설픔을 벗어난 조금은 야무진 고등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생들은 한창 엄마가 그리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엄마 없이 생활하는 게 익숙해졌지만, 엄마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빠는 멀리 일을 하러 다니시느라 집에 잘 오지 못했다. 집을 비울 때마다 아빠는 절대로 엄마랑 연락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엄마가 집을 나간 뒤로도 계속 연락하고 지냈다. 엄마가 멀쩡히 살아 계시는데 어찌 천륜이 그렇게 쉽게 끊기겠는가. 엄마를 향한 자식의 마음이 그렇다.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그냥 무조건 필요한 그런 존재다.


우리가 가끔씩 따로 엄마를 만난다는 사실을 아빠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우리들이 안쓰러운 마음에 그냥 모른 척하셨다. 어쨌든 엄마는 몇 달에 한 번씩 쉬는 날이나 우리 생일 같은 때 외식도 시켜주고, 옷도 사주면서 평소에 못해주던 엄마노릇을 하려고 노력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남동생이 학교에서 운동회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엄마는 직접 동생을 챙겨주고 싶다며 나섰다.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엄마가 없어도 누나가 도시락 싸서 갈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이다. 하지만 동생은 누나보다는 엄마와 함께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엄마에게 이번에는 꼭 약속 지켜야 한다며 몇 번이고 당부를 한 뒤에 학교에 갔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아무도 없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저녁이 돼서야 집에 돌아온 동생들에게 오늘 운동회는 어땠느냐고 물었다. 막내는 원망도 서운함도 표현할 줄 모르는 그냥 어린애였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오지 않았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랬다.


운동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때 엄마는 학교에 갔지만, 운동장에 들어가서 다른 엄마들 틈에 섞여 자기 자식을 향해 응원하는 당연한 일 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간 본인을 알아보는 동네 사람들을 만날까 봐 순전히 자기 체면을 차리느라 동생을 외면하고 학교밖을 서성일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되고 아이들이 전부 엄마 아빠를 찾아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을 때 동생은 엄마를 부르며 사방을 찾아 헤맸다. 결국 외톨이가 된 동생은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결국 주변에 다른 엄마들이 안쓰러운 마음에 동생을 달래주며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그렇게 엉망으로 운동회를 마치고 학교를 나오는 동생을 뒤쫓아가다 아무도 없는 곳에 다다르고 나서야 엄마는 동생을 불렀다. 내가 엄마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건 절대 바뀌지 않는 이미 굳어져 버린 그런 이기적인 행동 때문이다. 엄마는 세월이 지나 환갑이 넘은 지금도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그날 동생의 추억을 망쳐버린 엄마에게 화가 나있다. 어차피 모든 건 지나버렸고, 되돌릴 수 없지만 아직도 화가 난다. 내가 엄마 대신 운동회에 갔어야 했는데... 내가 가게 내버려 두지... 차라리 그냥 우리끼리 잘살게 내버려 두지... 그날 운동장을 헤매며 울고 있을 어린 동생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돈다. 마치 내가 당한 것처럼 가슴이 미어진다. 그때 그 눈물의 운동회는 아직도 우리 삼 남매의 가슴에 절대 잊히지 않을 아픔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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