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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매기 Aug 14. 2024

우리 유치원 안보내면 이상한 엄마예요

인기 있는 사립유치원 중간입소를 위해 상담을 갔던 날 내가 들었던 말이다. 유치원에 다닐 나이에 갑작스러운 이사로 인해서 입소시기를 놓치고 반년이 넘는 기간을 딸과 단둘이 여행을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놀이터에서 다른 엄마들을 마주칠 때마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어디 유치원 다녀요?'라는 질문에 딱히 구구절절 모두 설명하기 힘들어서 일부러 만남을 피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마주치는 동네 엄마들과 친해질 기회도 딱히 친해질 이유도 없었다.


다른 엄마들과 어울리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면 엄마 자신은 참 편하다. 문제는 자녀가 어울릴만한 동네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딸은 놀이터에서 만나는 언니 오빠들을 졸졸 쫓아다니면서 잘 어울려 놀았다.


우리 딸과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은 엄마들이 주변에 항상 진을 치고 있어서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아직 아가 티를 못 벗은 초등학1, 2학년 언니 오빠들이 귀엽다며 우리 딸 주변을 떠나질 않았다. 나는 그런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늘 먼저 인사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하지만 매번 그런 아이들만 기대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치원을 대체할만한 기관이 절실했다. 그렇게 우리 딸은 유치원 대신 매일 체육관에 다니면서 언니 오빠들과 함께 운동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갔다.


문제는 엄마인 나였다. 아이가 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비슷한 시간대에 다양한 픽업차량을 기다리는 엄마들을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마주치게 되었다. 먼저 말 붙일 주변머리는 없고, 안면몰수하고 모조리 쌩까자니 인성에 문제 있는 사람 같고 어찌할 바를 몰라 어정쩡한 상태로 지나치길 반복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안녕하세요.'라고 가볍게 인사하고 지나가면 될 것을

'내가 인사했는데 쌩까면 어쩌지?'

'모르는데 왜 친한 척하냐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쉽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매일 비슷한 고민들이 쌓여가고 불편한 마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발적 외톨이로 생활하면서 너무 홀가분한 기분이었는데 더 이상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아...! 그래 나는 이제 혼자가 될 수 없구나.'


엄마인 나는 이제 아이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혼자서 편지낼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결국 나는 대세를 따르기로 했다. 놀이터를 장악하고 있는 엄마들이 찬양하는 그 유치원에 우리 아이를 보내기로 말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전화 상담을 요청했다. 금세 원장님께 연락이 왔고, 아주 운 좋게 최근에 한 명이 이사를 가게 돼서 자리가 딱 하나 있다는 희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입학 확정은 어려우니 직접 원으로 상담을 와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왠지 면접을 보러 가는 기분으로 아이의 손을 잡고 약속시간에 맞추어 유치원을 방문했다. 원장님은 어떻게 알고 오게 되었는지 원에 아는 엄마는 있는지와 같은 정보를 가장 먼저 궁금해하셨다. 나는 솔직하게 그런 정보를 주고받을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이곳이 핫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역시나 원장님은 원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셨다. 기분이 한컷 좋아지신 원장님은 본격적으로 현재 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셨다. 원어민 영어교사는 물론이거니와 미술, 체육, 피아노, 발레, 요리, 수학, 한글, 한자 등 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다양했다.


원비도 매우 적당하고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나는 아이를 이곳에 안 보낼 이유가 없었다. 설명을 다 들은 후 입학이 가능한지부터 재차 확인했고, 다행히 그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


기분이 업되신 듯한 원장님은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는 무조건 이곳으로 아이를 보낸다며 아주 잘 선택했다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셨다. 오히려 입학시기에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탈락되는 확률이 은데 운이 참 좋았다는 말도 함께 말이다.


나는 이제 매일 '아이와 어디를 가야 좋을까? 어떤 걸 해야 유익할까?' 와 같은 고민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 가장 기뻤다. 단 하나!


"그 동네에서 여기로 안보내면 이상한 엄마예요~!"라는 원장님의 말씀이 마치 체기가 있는 듯 명치에 박혀서 꾸역꾸역 밑으로 내려갈 생각을 안 한다.


'아니... 이런 꾸진 동네에서도 이런다고?' 나는 어느 부자동네에서나 들을법한 저 말이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내가 단지 내 놀이터에서 느꼈던 다른 엄마들의 이상한 눈빛들이 그저 오해만은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과연 내가 앞으로 이 모든 걸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싶은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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