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술을 아예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위장을 약하게 타고나서 몸이 술에 견디질 못한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내가 아플걸 알아서 자제력을 획득했다.
나의 남편은 알코올중독자이고 소주를 매일 마신다.
당연히 평소의 컨디션은 산 송장 급이지만 특별한 지병은 아직 없다.
'똥 싸면 다 나아.'
라는 무지몽매한 생각으로 그는 자신감 있게 살아간다.
술 병도 똥 싸면 낫고, 장염도 똥 싸면 낫고
열감기도 똥으로 디톡스를 하면 낫는다나
참 편해서 좋겠다.
저렇게 단순하고 아무 생각이 없이 편히 살아서
여태 그 많은 소주를 몸에 주입했어도 큰 문제없이 살아 있는 건가.
그저 달콤하기만 한 20대 청춘이 몇이나 될까
그 괴로움과 외로움 달래는 데에 술과 담배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던 걸까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작한 행위들이 중독이 되어 자신을 잠식해 버리는 게
무섭지 않을까
홀 몸이라면, 그래
홀 몸이라면 골방에 소주 한 박스가 언박싱되어 굴려 다녀도
그러다 끝내 숨을 거두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데, 그것도 아직 어린 아기가 있는데
그 아이와 추억을 쌓지 못할 정도로
아이와의 추억보다 오늘 먹을 술이 더 중요할 정도로
삶이 재 편성 되었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도 결국 타인인데, 타인의 인생을 재단하고 싶진 않지만
내 아이의 아빠이니 좀 해야겠다.
아이가 공원 산책을 나가면 유독 넋이 나가 쳐다보는 광경이 있다.
아빠와 아들이 서로 공을 주고받는 광경
말도 못 하는 아이가 그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아기는 용기 내서 그들 사이에 끼어본다.
친절한 아저씨들은 가끔 내 아이와도 공차기를 해 주신다.
'아가. 미안하지만 너의 아빠는 어제 먹은 술과 오늘 먹을 술로 인하여
술에 취해 방구석에 누워 계신다. 그래서 너와 공원을 한 발짝도 걷지 못한대.
술을 계속 먹으니까 다리에 통풍도 심해져서 걷기가 힘들대.
그런데 술 약속은 참 열심히 나가. 아가. 엄마가 너에게 미안하다.'
"집 앞이 바로 공원인데, 애랑 산책 한번 나가자. 아니면 차로 10분 거리라도."
"나 피곤해. 다리 아파. 어차피 지금 그 나이엔 기억도 못해. 기억 안 날건데 잘해주면 뭐 해."
아이의 아빠는 술을 택했고
나는 대화의 단절을 택했다.
더 이상 대화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 됐다.
내가 낳은 내 자식이니까 내가 하면 되지.
까짓 거 뭐 나 혼자 키운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 다 해주자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사줄 거 다 사주고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다 내가 하지 뭐
아비로서 아기를 기쁘게 하는 일 보다
술 마시는 걸 택한 남자를 내가 억지로 끌고 나간 들 무엇이 행복하겠어.
그냥 내가 다 하자. 다 하자.
그러다 보니 나도 몸과 마음에 한계가 오게 되고
끝내 절망에 항복하던 그날
남편은 그제야 '미안해. 이제 나도 할게.'라는 말을 던졌는데
하하 그 말을 듣는데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고 그러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회사 일이 아니다.
업무 분장을 하는 것은 좋지만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일은 분장이 안 된다.
미안하지만 아기들은 단순하지 않아서
돈, 장소, 시간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키우는 거거든.
다른 사람이 아닌 부모의 사랑 말이야.
만병똥치설을 주장하기 전에
아이를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만병끊치설'로 바꾸는 건 어때.
나쁜 마음, 이기적인 마음 좀 끊어 내고
술 담배 좀 줄이고, 끊으면 더 좋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