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숙취 그리고 음식들
누군가 그랬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숙취로 인해 온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다 보니 든 생각이다. 온종일 풀리지 않는 숙취로 괴로워하며 주말을 날렸다. 이쯤 되면 술과 이별할 법도 싶은데 나는 또 숙취에 허덕이고 있다.
빈 속보다는 낫겠지하며 뭐라도 챙겨 먹으려 애썼던 적도 있다. 그래서 안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역한 걸 보니 이건 시간이 약이다. 알코올 분해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간아, 힘줘...!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니 예상대로 속이 좀 나아져 저녁에 결국 간단하게 리조또를 해 먹었다. 그래서 준비한 이번 푸드에세이는 숙취 때문에 먹어본 음식들 편이다.
뜨끈한 국물이 당기지만 묵직한 음식은 싫을 때 이보다 좋은 음식이 있을까. 얼큰한 맛은 없지만 시원함은 가히 끝판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베트남 쌀국수. 숙주나물을 듬뿍 넣으면 그 맛은 정말이지, 끝내주게 시원하다.
그래서 한 때는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무조건 쌀국수를 찾았다. 하지만 막상 나트랑까지 날아가 먹은 쌀국수의 맛은 대실망 그 자체였다. 에어컨도 없고 더운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먹어서 그랬나? 아니면 그냥 그 집이 못하는 집이었던 걸까. 그도 아니면 술을 먹고 먹은 게 아니라 그런 걸까. 아무튼, 베트남 쌀국수는 우리나라가 참 맛있게 한다. 에 XX, 포 XX. 너무 사랑합니다. 진짜로.
이건 좀 진입장벽이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베트남 쌀국수를 향신료나 고수 냄새 때문에 거북해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를 감안할 수 있다면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우육면. 뜨끈한 국물을 한 수저 뜨는 순간이 여기가 극락인가 싶어진다.
하지만 가게마다 우육면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어떤 집은 고추기름을 자기가 별첨해 먹는 집이 있고, 어떤 집은 국물이 뽀얗고, 또 어떤 집은 국물이 갈색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것은 갈색 국물. 그게 정말 ‘찐’이다. 잘하는 집에서 먹으면 정말 보약을 마시는 느낌까지 든다.
어쩌다 보니 5가지 중 3가지나 국•탕류가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샤브샤브는 정말 뺄 수가 없기 때문에 넣었다. 칼국수나 가락국수 사리를 추가하거나, 죽이나 볶음밥을 해 먹지 않아도 그 자체로도 포만감을 주는 것도 한몫했다.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숙취로 도저히 밥 한 수저도 입에 넣기 힘든 날. 그럴 때 샤브샤브는 신선한 야채와 부드러운 고기, 시원한 국물로 부대끼는 속에 부드럽게 노크할 것이다.
숙취에 절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 그렇다고 라면은 싫고 배달 음식이나 시킬까 하다 보면 오게 되는 종착지가 있다. 바로 피자다. 나도 한 때는 숙취를 달랠 때 피자를 참 많이 찾았다.
피자가 도움이 되서가 아니라 그냥 피자가 맛있고 편하고 좋아서 말이다. 그리고 여럿이서 먹을 때는 피자만 한 음식이 없기도 하고. 하지만 누군가는 느끼함으로 부대낀 속을 더 부대끼게 만든다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만 드셔보세요, 꽤 괜찮거든요.
이건 비교적 최근부터 먹기 시작하고 있는 음식인데, 바로 토마토 리조또다. 심심하게 간을 해서 먹으면 죽을 먹는 듯한 만족감을 준다. 쌀이 주재료이기 때문에 포만감도 높은 편이고. 무엇보다 토마토를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왜, 숙취 해소 음식으로 검색하면 토마토가 은근히 많이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서양에서는 숙취로 힘들 때 토마토 주스를 먹는다는 말도 있고.
이러나저러나 제일 좋은 것은 과음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숙취로 고생 중인 사람들이여,
밥은 챙겨 먹고 다닙시다. 속 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