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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사님 Feb 04. 2023

마라탕 먹다 사레나 들려라

미움과 매운맛에 관한 이야기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음식이 당기는 사람들이 있다. 떡볶이나 마라탕 같은 것들 말이다. 얼얼한 매운맛을 음미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했던 것들은 잠시 이별이다. 하지만 잘 먹다 사레가 들린다면?  그때부터는 지옥 시작인 거다.


나도 경험해 봤다. 정말 괴롭더라. 급작스레 들어온 매운 음식으로 위와 식도가 놀라 추는 환장의 댄스는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고통. 그 고통을 누군가 온전히 느끼길 바란 적이 있다.


‘마라탕 먹다 사레나 들려라’하고 말이다. 그의 작은 불행을 기도했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 걸쳐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을, 그에게는 그다지 크지 않을 고통을 말이다.


옹졸한 마음에 가득 찬 미움은 그를 상상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다 다시 가장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래, 너는 거기에 있어야 해. 하고 미움을 잠재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오래 지니고 있는 건, 내게도 그리 좋지 않다.


이러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군가는 사이코 같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나, 힘없는 소시민에게는 이렇게라도 소소한 복수를 하는 것이 가장 문제없고 간단한 해결책. 하지만 이조차 불필요한 감정 소모라 느껴져 다른 방법을 택했으니 그건 바로 내버려 두기다.


그가 내게 어떤 것을 행하든 신경 쓰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 방법을 바꾼 이후 내 상상 속에서 마라탕을 들이켜는 이들은 급격히 줄었고, 미움은 흘러가는 감정이 됐다. 감정들이 그저 흘러가게 두는 것. 그로 인해 내게 온전히 집중하고 살아가는 것이 좋아졌다.


그러다 문득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미움의 대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상상 속에서 나는 마라탕이 아닌 더한 것을 먹으며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너무 심하게 미워하지 않길 바란다면 이기적인 것이겠지.


나로 인해 매운 음식이 당겼던 이들에게는 고개 숙여 사과를, 나의 상상 속에서 마라탕을 한 사발씩 들이키다 사레들리곤 했던 이들에게는 용서를.


동굴에 들어가 혼자 산다고 해도 이 굴레는 아마 끊기지 않겠지. 그래, 그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미워하고, 미움받으며 살아간다.


그래도 마음을 비우고, 내게 집중하는 시간이 해마다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뜨끈뜨끈 얼얼한 마라탕 한그릇 땡기는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봄이 오기전에 한 그릇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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