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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wer Series Jul 12. 2023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조커>

조커도 그랬을 뿐이다.

 사실 <조커>라는 영화를 편견을 가지고 보았다. 이 블로그의 소재가 되는 영화들 대부분은 지인 추천이다. 지인들이 추천해준 영화를 보면서 지인들의 취향을 알아가는 부분도 있고, 나의 시야를 넓히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은 좀 달랐다. 학기 중에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의 인생 영화이고, 지인들에게 이 영화의 감상평을 물어보면 불호가 많았다. 혹은, 영화를 보다가 그냥 껐다고 말하는 지인도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한 쪽으로 치우쳐서 본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하다. 또한 왜 불호가 많은지 궁금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직접 판단하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블로그를 읽고 지나가는 누군가의 인생영화가 <조커>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영화에 대해 느낀바를 고칠 생각은 없다.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나, 나는 이 작품의 의도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글을 쓰기 전에 일상얘기를 조금 하자면, 컴퓨터에 커피를 엎지르는 바람에 며칠동안 글을 쓰지 못하였다. 되도록이면 매일 글을 쓰자-라는 목표를 세워두었는데, 컴퓨터가 계속 블루스크린이 뜨는 바람에 요 며칠 글을 쓰는 것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조커에서 묘사한 부분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단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맞다. 두 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는 극 중 조커(=아서 플렉)의 '정신질환의 가장 나쁜 점은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한다는 것이다'라는 대사였다. 이 대사가 공감이 갔던 이유는 내가 우울증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우울증이 있지만 우울증에 대한 의학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증상은 우울증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좀 과하게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울증의 유무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하게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을 알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사람에게 전적으로 기대거나 불건강한 방식으로 우울함을 풀었었다. 물론 나의 이런 부분에 질려서 떠나간 사람들도 있지만, 그저 우울증에 걸린 친구가 피곤하고 싫다는 이유로 나를 떠나간 사람도 있었다.


 두 번째는 한 장면이었는데, 아서가 자신의 개그를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고 자신이 웃는 것(영화 설정상 아서는 자신이 웃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음)을 멈추지 못하는 영상이 머레이 쇼에 송출되는 장면이다. 머레이 쇼 진행자 머레이는 아서를 조롱하는 말을 한다. 이 작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이 아닌 신문을 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20세기가 배경일 것이다. 21세기인 지금에는 인스타 릴스나 쇼츠에 누군가를 조롱하는 영상이 뜨면 사람들이 생각 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영상 속의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쇼츠나 릴스는 몇 초면 넘어가는 영상이라 사람들은 좋아요만 누르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기억하지 못한채로 다음 영상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영상 속의 조롱당한 사람은 그 상처를 평생 떠안고 간다.



 이런 공감 포인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서의 연쇄살인행각에 딱히 공감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아서의 여러 명대사가 아서의 복수심에서 올라온 말들이지, 아서의 선한 의도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서는 애초에 옳은 행동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을 버린 웨인가(정확히는 버린게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 페니의 망상이지만)와 자신을 조롱한 머레이,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아서는 자기와 같은 소시민을 자신의 복수에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자신을 뒤쫓는 형사들을 피해 자신과 같은 광대 가면을 쓴 사람들 사이로 숨었던 장면에서 어떤 사람이 쓴 광대 가면을 뺏어서 자신이 쓰고 광대 가면을 쓴 사람끼리 싸우게 만든다. 아서가 '선'을 지향했다면 숨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숨을 일을 만들지 않았겠지만, 아마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2. 아서 어머니 페니 플렉의 망상은 페니와 토머스 웨인이 애인 관계였지만 사회적 시선 때문에 헤어졌고, 그로 인해 생긴 아이가 아서 플렉이라는 내용이다. 페니는 토머스 웨인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 도와달라는 편지를 매일 쓴다. 후에 아서는 병원 기록을 뒤져서 페니가 망상 환자라는 것을 알아내었고, 자신을 학대하면서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두 사람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는 것은 맞다. 아동 학대가 큰 죄인것도 맞다. 하지만 살인의 정당성을 갖출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생명이 중요하다라는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다. 누군가의 존재는 죄의 존재 여부를 떠나, 복수심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서의 살인들은 사회를 바꾸는데 기여를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몇몇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앞당겼을 뿐이다. 다만, 아서의 말들이 관객들에게 많은 공감을 샀던 이유는 암울한 현실을 나타내는 말들이고, 우리가 그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런들이 현실 비판을 잘하는 이유는 그들은 냉소적이고 비관론자인 경우가 많은데, 아서가 이에 해당한다. 그저 그는 비관론자여서 현실 비판에 능한 것 뿐이지, 현실을 비판했다고 해서 현실을 바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 비판을 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비관론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가선 안된다고 끝마무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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