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 모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H Feb 09. 2022

이방인과 페스트

카뮈의 시선

위대한 예술가란 무엇인가?
위대한 예술가는 한 번의 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복잡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자다. 그 세상 속에서 여러 가능성을 상상하여 한 번, 두 번, 아니 계속해서 우리 앞에 현실을 던져놓는 자들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삶의 신비를 깨닫게 해 주려는 자들이다. 그들이 만드는 예술은 허구이지만 동시에 진실이고 가끔은 진실보다 더욱 진실된 허구다. 바로 카뮈가, 위대한 예술가이다.

페스트의 서문에서 카뮈는 다니엘 디포의 문장을 언급한다.
"한 가지의 감옥살이를 다른 한 가지의 감옥살이에 빗대어 대신 표현해보는 것은, 어느 것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에 빗대어 표현해 본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합당한 일이다"

카뮈는 예술의 존재 이유디포의 문장을 통해 선언한 셈이다.

카뮈는 20만 인구의 오랑시를 등장시키고 페스트라는 무언가를 던져놓는다. 연대기로 이루어진 소설 구조 속에서 그는 페스트로 인해 점점 변해가는 오랑시와 그 안에서 신음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을 자세히 탐구한다. 이 인간상들은 상상 속의 오랑시에서는 물론 2022년 바로 지금까지 항상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우리는 싸우거나 굴복하고 또 회피한다. 그들의, 아니 우리의 모습을 먼 타국에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한 누군가의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 얼마나 대단한지.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글 첫 부분의 디포의 문장처럼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한다. 좋은 텍스트는 텍스트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텍스트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페스트는 죽음이다. 죽음은 필연적이다. 인간은 모두 죽지만 이 사실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이데거의 말마따나 인간은 이 세상으로 내던져진 존재이며 인간의 탄생 그 근원에는 부조리가 자리 잡고 있다. 누가 원해서 이 세상에 나왔겠는가?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그들이 얘기하는 인간의 원죄가 이와 비슷한 맥락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 모든 것들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언제까지? 예술이 그들 앞으로 죽음을 던져줄 때까지.
카뮈는 나에게 죽음을 던져주었다. 길고 자세한 카뮈의 오랑시에 대한 묘사는 결국 죽음 앞에 선 인간에 대한 것이다. 불가항력적이고 부조리하며 근원적인 죽음. 이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라는 먼지 쌓인 질문. 예술가는 답을 제시해주는 부류가 아니다. 그들은 차분하게 세상을 응시할 뿐이다. 카뮈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여러 인간상을 제시해주었지만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방인이 등장한다. 이방인 뫼르소는 삶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다. 그는 사람이라면 무릇 ~이렇게 해야 해 와 같은 규범들을 몰랐고 그로 인해 타인에게 불편함을 초래했다. 그는 삶의 조각들 어디에서도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고 때문에 타인의 삶 또한 존중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듣고 그가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이유이고 단지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살인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소설을 통틀어 가장 삶에 욕망을 느끼고 살아있음에 희열을 느꼈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선고된 후의 감옥에서였다.

랑시의 시민들은 페스트가 오고 나서야 각자의 방법으로 죽음에 맞섰고 뫼르소는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페스트와 이방인이 겹쳐지는 부분이며 카뮈는 죽음이 있어야 삶이 있다는 사실, 완벽한 삶은 죽음으로써 완성된다는 진리를 외쳤다

죽음이 없는 영원한 삶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의미 없어진다.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는 삶에서 인간이 하는 모든 몸짓은 무용으로 돌아간다. 탄생이 의미 있는 이유는 소멸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의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이유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카뮈는 세계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뫼르소를 통해 알리려 했고 다시 뫼르소를 통해 그 부조리를 극복하려 했다.

다시 한번, 위대한 예술가란 무엇인가?
위대한 예술가는 흘러가는 현재를 안타까워하고 우리에게 삶의 신비에 대해 알려주려는 이들이다. 그들은 세계를 응시하고 세계를 창조하며  세계를 묘사하는 이들이다. 죽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뛰어넘는 이들이다. 그들이 묘사한 세계가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현실보다 더욱 현실 같은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