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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리밍 Nov 17. 2024

내면의 상처를 돌아보다.

가족, 관계 그리고 엄마인 나의 성장 이야기.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낼뿐이다. - 김진영, 아침 피아노 중에서. 출처 : 마케터의 밑줄, 김상민" 


 오늘 아침 아이들은 거실의 둘만의 아지트, 오리 텐트에서 꽁냥꽁냥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누나는 혼자 있고 싶다며 동생을 텐트 밖으로 밀어버렸고 둘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다툼이 격해져 말리러 간 사이 둘이 감정이 격해져 치고받고 싸우고 난리가 났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동생을 뒤로 격리시키고 진정이 되지 않는 첫째를 데리고 방으로 갔다.


문제는 우는 누나 목소리를 들으며 누나가 진정되길 기다리는 둘째였다.

혼자는 무서웠는지 따라 들어왔다. 동생은 내내 함께하며 "동생 싫어! 동생 싫어!"라는 울음 섞인 화의 감정을 오롯이 들으며 엄마와 누나 옆에 있어야 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막둥이를 작은 방으로 좋아하는 유튜브를 틀어주며 보내고, 첫째와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가 되지 않았다. 첫째의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 때문에 안아주려는 엄마를 발로 차고 때리고 자신의 감정을 풀었다. 사실 이런 일은 둘째가 태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종종 있었다. 이 일로 우리 가족은 둘째가 생긴 후부터 1년간 가족 상담을 다녔다. 그리고 점점 좋아졌다. 상담이 계기가 된 것은 맞지만 매월 1~2회 정도 상담을 위해 왕복 2시간가량 차로 이동하며 가족에 대해 서로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문제일 줄 알았던 아이의 표현과 행동의 문제는 사실 부부의 문제였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인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은 아이가 커서, 그리고 엄마아빠가 첫째의 마음을 더 많이 알아주어서 공격적인 행동은 없이 속상함의 감정표현만 있는 빈도가 줄었던 일이었다.


  오늘 우는 아이에게서 살면서 사람에게는 생전 처음 받아보는 분노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한두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첫째 육아로 너무나 힘들어하며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속상함과 억울함에 남편을 노려보던 나의 눈이었다. '왜 내 마음을 몰라줘? 왜 그렇게 말해?'라고 속상함을 토로했던 그때였다.

 그리고 어릴 적 나의 상처 또 한 가지. 그 장면들이 스르륵 스쳤다. 그리고 가슴이 무너졌다.


 내가 이 아이에게 이렇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구나. 동생이 생긴 후 엄마에게 이런 배신감과 분노감. 억울함이 있었던 거구 나를 느끼며 많이 미안했다. 그 마음을 지금껏 알아주지 못하고 이해해주지 못함이 미안했다. 이런 마음을 진작에 토로해 줬으면 좋았을 걸...

 어른도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은데, 아이는 오죽했을까. 엄마는 엄마니까 좋은데 한편으로는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많았을 아이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


 동생이 생긴 후부터 첫째의 울음이 너무 크게 게다가 폭력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울음소리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아이가 억울함에 크게 울어버리면 공감의 마음을 닫아 버리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돌아보니 나를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제였다. 나를 지키려는 방어 기제들이 오히려 아이를 더 마음의 방에 가두어버렸던 것 같다. 진작에 공감해 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동생이 생겨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oo이가 많이 이해하고 배려하고 했던 마음을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많이 속상했지?라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생겼다. 진작에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공감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게다가 어른인 나도 그렇다. 우리는 현상과 상황, 외부 환경, 눈에 보이는 것들은 이성적으로 잘 판단해 말하고 표현할 수 있지만 자신 안의 내면인 감정과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어릴 때부터 잘 배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특히 가족, 친한 지인들 간의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오해와 배려가 쌓이면서 때론 강한 긍정의 만족감을 주기도 또는 분노의 감정을 만들기도 한다. 특히 평생을 함께하는 인간 관계인 가족에서 더 그렇다. 때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이유가 가족인 이유다.

 

 남편도 나도 부부가 되자 마자부터 서로 가치관과 생활 방식이 달라서 피 터지게 싸웠다. 정말 이혼을 해야 하나?라고 싶을 정도로 다툰 후에야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서로 다른 가족의 문화가 맞춰졌다. 그리고 첫째가 생겼다. 새로운 가족이 들어온 변화는 또 다른 분쟁으로 이어졌다. '엄마', '가족'에 대한 기준과 가치관 삶의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남편은 내게 자신이 자라온 환경, 시어머니와 같은 희생을 원했고 반면 '여자'도 남자와 같이 평등해야 한다는 환경에서 자란 딸인 나는 그게 싫었다. 남편과 나 우리 둘 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부모였지만 부모가 되기 위해 미리 준비했어야 할 희생과 배려의 마음은 배우지 못했다.


 나의 엄마는 4남매 중 첫째다. 동생들의 온갖 뒷바라지를 다 하는 첫째였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 서러움이 많으셨다. 그럼에도 늘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엄마였다. 가슴속에는 차별에 대한 억울함과 아쉬움, 부모님께 받고 싶은 사랑을 늘 가지고 계신 듯하다. 그래서 둘째고 딸인 나를 아들처럼 많은 기회를 주려고 애쓰며 키우셨다고 한다. 자신이 차별받은 딸의 서러움을 내게는 주고 싶지 않으셨던 우리 엄마의 노력을 내가 오롯이 받은 것이다. 그래서 늘 감사하다.


 어제 오랜만에 외할아버지 댁에 다녀왔다. 90세가 넘은 우리 할아버지는 아직도 돋보기를 끼지 않고 책을 보실 정도로 정정하다. 내가 생각하는 내 삶의 롤모델인 '100세 철학자 김형석'교수님이 바로 우리 할아버지였던 듯하다. 아직도 손으로 고장 난 물건을 고치며 새 생명을 주는 일에 깊은 희열과 통쾌함을 느끼신다고. 그 일이 가장 재밌다고 말씀하시며 웃으시는 할아버지가 너무 멋있었다.


 할아버지의 건강 비결은 '좋아하는 일'이었다. 내면에서 진정으로 통쾌하게 행복한 일. 생계를 이끄는 생산적인 일임에도 즐길 수 있는 일이 삶을 더 나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할아버지께 일제 식민지에서 독립된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창 유튜브로 역사 공부에 한창인 초1 딸에게 90세 할아버지는 좋은 역사 선생님이다. 중3 시절 광복이 된 후, 담임선생님께서 교실에 걸려있던 일제 천왕의 사진을 떼어 발로 밟고 부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참 감사했던 건, 어쩌면 굉장히 트라우마적 기억으로 남았을 그때의 기억들을 힘들어하시기는커녕, 모두 건강하게 이야기해 주셨다는 점에서 사실 더 놀라웠다. 이래서 할아버지가 건강하시구나라고.


 전쟁의 피난의 경험, 식민지 지배의 경험들. 어쩌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책에서 본 것처럼 살면서 겪어보지 못할 극한의 경험들이다. 하지만 그런 극한의 경험들을 겪고도 트라우마로 힘들어하시는 게 아니라 일상을 잘 건강하게 살아내실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멋지고 대단했다. 돌아보니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어른들은 모두 극한의 경험들을 스스로 극복한 분들이었다. 함께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오셨다 생각한다.


 내면의 트라우마적 기억을 해결하는 열쇠는 비슷한 경험을 겪은 내적으로 마음이 맞는 이들과의 진정한 내면 소통이다. 내면과 꿈을 쓰며 진정한 소통을 이어가는 내면 꿈 쓰기 모임, 우행 꿈을 운영해 오며 내린 결론이다.

 

 이제야 엄마로서 늘 가장 어려워했던 '육아'의 진정한 어려움을 세상 밖에 꺼내게 되었다.

 내 안의 어려움을 내 안에만 가둬두면 계속 고인다. 그 상처는 자주 빠지는 구멍이 되어 내가 만나는 모든 일들을 그 구멍으로만 보게 된다. 인지 편향(경험에 의한 비논리적 추론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에 빠지게 되는 이유다.

 그동안 나의 고통과 어려움을 가족 수준, 가까운 지인 내에서 이야기하며 풀어 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그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가족 같이 동생이 생겨 어려움을 겪고 그것 극복해 누군가가 있다면 같이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

 

 그동안 나는 '아이가 엄마를 때렸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부로 그 언어와 문장을 바꿔보려 한다.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라고 정정한다.

 그렇다고 엄마인 나에게 스스로 죄책감을 휘감을 생각은 없다. 이제야 온전히 아이를 마주하고 서로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공감하겠단 의미다.

 오늘의 기록이 우리 가족을 더 편안하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행복해지는 비결은, 내 안의 문제, 우리의 문제를 세상 밖으로 꺼내어 객관화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서 보기 위한 도구로 글쓰기와 기록이 정말 효과적이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 안에 갇힐 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해진다.


 "당신이 힘겹거나 지쳤을 때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은 그것을 감추고 비밀로 하는 것이다. 당신의 감정에 저항하지 않고 솔직해지면 그 감정에 덜 짓눌리게 된다. - 누구와 함께 일할 것인가, 벤자민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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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의 문제가 풀리면 나를 둘러싼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한다. - 우행 꿈"


 서로 다른 가족의 문화를 이해하며 '나'자신의 가치관부터 꿈꾸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내면 꿈 쓰기 모임 '우행 꿈'을 운영하고 있어요.


 "나를 행복하게 할 꿈은 모두 내 안에 있어요."

 "나를 행복하게 할 답도 모두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꿈꾸는 방향으로 더 행복하게 만드는 열쇠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온전히 마주하고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과거와 현재의 삶의 고정관념을 준 경험을 미래에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기록에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과 꿈을 쓰며 진정한 내면 소통과 함께 일상의 편안한 행복을 마주하셨으면 합니다.


 우리 함께 행복한 꿈 꿔요! 우행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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