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지키는 마음의 울타리가 있나요?
어느 주말 친정에서 돌아오던 길, 나는 차에서 혼자 숨죽여 펑펑 울었다.
때론 가족과 함께하면서도 오히려 극한의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사실 외로움이란 비단 가족과 함께 있을 때만이 아니다.
"인생은 독고다이"
내 인생 첫 사회 생활에서
전국 1등 영업을 하던, 항상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 쌓여 일을 하시던 그 분이 늘 외치던 말이었다.
극한의 외로움. 나는 그게 육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의 부정적 경험과 피드백들이 갑자기 물밀듯이 스치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마도, 이제는 다 털어내라고. 더 행복해지라고 쏟아졌던 것 같다.
가족이라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더 많은 사랑을 주기도 한다.
고마운 우리 가족들. 가족에게 잘해야지...
그리고 돌아보니
내가 스스로 나를 지키는 울타리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다 퍼주고, 다 이해해 주고, 다 공감해 주면서
참는다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사실은 참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폭발해 버리는 일들이 많았다.
스스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울타리는 있어야 했는데
나의 관계성의 울타리는 넓디넓은 광활한 초원이었다.
너무나도 넓어서 풀이 무성한 목초지가 아니라 오히려 사막일지도 몰랐다.
사막에 꽃을 피우겠다고, 푸른 초원으로 만들겠다며 양을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꽤나 넓은 이해의 폭으로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왔지만
어쩌면 사실 나는 그렇게 넓은 그릇의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나를 기록하며 깨달았다.
나의 그릇의 크기는 커지지 않고 그냥 중심이 이동할 뿐이었구나라고.
그릇도 안되면서 넓은 그릇으로 포장하고 싶었는지도....
그 사실을 깨닫고 많이 울었다.
그동안의 육아와 육아로 인해 부딪혔던 여러 경험들,
오히려 남들과는 유독 다른 나의 기준점들이
우리 아이들과 내가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을 모두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당신을 지키는 마음의 울타리가 있나요?
나는 왜 이렇게 육아에 대한 다소 포용적인 넓은 기준을 갖게 되었을까.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
세상이 생각하는 기준과 규범, 그 범위를 지키지 않아서
일상에 불편함을 주었던 나의 가족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너네 집에 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라며 쫓겨가듯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저 녀석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며 혼이 난 적도 있었다.
"네가 부끄러운 일이야. 우리 아이들이 왜 남들한테 혼이 나야 해."
"oo이네 집안 서열이 보이네요."라는 한마디.
주변 분들과 가족들의 부정적 피드백이 차례로 스쳐갔다.
모두 참 가슴이 아팠던 경험이다.
이 피드백들은 지난 4년간 들어온 손에 꼽는 극히 아주 드문 피드백이었다.
잘하고 칭찬하고 멋진 일도 참 많았는데, 그런 기억들은 모두 온전히 생각이 나지도 않는다.
그때 즐겁고 행복했기 때문에 함께 행복해하며 흘러갔다. 그리고 내 안엔 가둬둔 고인 물만 남았다. 내가 오늘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기도 하다.
엄마로서 너무나 넓은 이해의 울타리를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아이들이 우리 가족이 아닌 외부 사람들을 만나면 그분들께 훈육을 듣고 혼이 나고 있었다.
가까운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는 부모가 아닌 사람들에게서 부정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그 기억들이 어쩌면 아이에게 더 큰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 아이들을 엄마인 내가 지켜주지 못했구나.
세상에 더 단단하고 건강하게 나아가도록 연습을 시켜줘야 했는데,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에게 엄마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만 했구나.
엄마가 편하자고 아이들을 편하게 키웠구나란 생각이 스쳤다.
미안했다.
"잘 잊기 위해 기록한다."
오늘부터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위함이다.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 이 부정적 피드백을 수용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피드백은 내가 수용할 때 비로소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진리는 그 정 반대도 진리다."
"피드백을 내가 수용하지 않는다면 정체성이 되지 않는다."
세상이 보는 나. 피드백으로 나의 정체성이 완성되기도 한다. 이때 나의 정체성이 되려면 중요한 부분은 나의 수용 여부다. 내가 그대로 받아들이면 나의 정체성이 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체성이 되지 않는다.
나는 부정적 피드백들을 들으면서도 그것들을 어쩌면 내 안에 가뒀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혹은 자극으로 듣고 잘 수용해서 변화해 가야지!"
라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을 그냥 가감 없이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래서 더 부정적 피드백들이 내 안에 고여있었다.
유독 육아에만 지나치게 기울어졌던 관계에 대한 기준, 가치관이긴 했지만
어쩌면 육아뿐이 아닌 다른 관계성들에게도 유독 넓은 배려의 경계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때론 그 지점들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모두 나의 진심이 지나치게 기울어져 버린 탓이었다.
사람을 혼자 너무 믿은 것.
뒤늦게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진 두 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나의 대표님은 사람은 믿지 않던 분이셨다. 돈을 믿으시던 분이다. 그래서 연봉을 높게 주셨다.
두 번째는 "모두가 왜 그렇게 까지 하세요?"라고 하는 상황에서 나만 유독 그 친구를 끝까지 믿어줬다. 그리고 뒤통수를 세게 맞았던 기억이 있다.
운이 좋게도 그동안 성장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의 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자라왔기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까지 내 삶의 관계성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CEO가 되려면 상처받을 준비를 하라. - 현승원 대표"
그동안 받지 못한 관계에 대한 상처를 가족 안에서 받고 있구나ㅎㅎㅎ 라며 피식 웃었다.
최근 빈곤 문제를 소액 대출로 해결하며 노벨 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의 책을 읽고 있다. 무함마드 유누스가 가난을 해결한 방법은 '은행, 소액 대출'이었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가난이라는 환경을 가진 그들에게 '의지'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 작은 동기와 실천을 하며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 것에 있었다.
'삶의 의지'와 '선택'
행복도, 꿈도 모두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어제 친정 엄마가 집에 오셨다. 역시나 아이들의 어리광이 늘었고 그 때문에 또 다툼이 있었다.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가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우리 집에 오셨구나라며 감사를 전했다.
나를 행복하게 할 문제의 답도 모두 내 안에 있다.
나와의 문제가 풀려야 나를 둘러싼 세상의 문제도 해결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제는 그 문제를 풀려고 집중하려고 하면 할수록 절대 풀리지 않는다.
문제는 그냥 그 순간 부러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꿈을 위해 나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되곤 한다.
문제를 둘러싼 더 큰 관점 혹은 더 작은 관점을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된다.
행복은 삶의 대한 태도다.
우리 가족의 행복을 선택하는 것도 결국 나다.
아이와의 문제에 있었던 부정적인 경험들을 기록으로 털어내고
오늘부터는 새로운 관점으로 살아가고 싶은 나의 다짐이다.
오늘부터 우리 아이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줄 것이다.
'엄마의 관점을 바꿔주는 행복 필터'라고
엄마보고 지금의 행복에 안주하지 말라고,
더 나은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오는 자극임을 알고 감사하라고.
사는 것은 비우는 것이라지만
꿈을 가지면 계속 채우려고만 한다.
현재의 행복을 누리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본질은 어쩌면 나눔이다.
본질적으로 관계, 무리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계속 나눠야 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계속 스스로를 채울 수밖에 없다.
현재의 나, 과정을 즐기는 연습.
매일 오늘의 작은 꿈을 달성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늘 이루고 싶은 나의 꿈은?
아이 하원 후, 오늘 문제를 그저 부러뜨리고 함께 더 나은 행복한 꿈으로 나아가기
잘 잊기 위해 기록한다.
나는 이제 기록한 일들은 머릿속에서 잘 비운다. 그래서 써놓는 기록.
나는 우리들의 행복한 꿈 여행 : 우행 꿈이라는 일이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 선택 습관을 바꿔 결국 가족 문화를 개선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자라온 가족의 문화가 결국 나의 가치관과 생활 습관, 언어와 말투를 만든다. 그리고 나의 선택 습관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내가 스스로 내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 내 삶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내 삶이 바뀐다. 그리고 자연스레 나를 둘러싼 가족부터 가족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다.
나는 늘 나의 친정 엄마께 감사해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이 겪은, 자신이 싫었던 부모님의 모습을 닮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며 자식들에게도 좋은 모습만 전해주며 키워주신 우리 엄마 덕분에 내가 편안히, 그리고 좀 더 유연한 마인드로 살아갈 수 있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대에서 끊어주신 부정적인 고리 덕분에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가족의 문화유산을 나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의 남편도 나의 이 마음에 공감하고 자신이 자라면서 결핍을 느꼈던 모습들을 깨닫고 스스로의 습관을 고치고 함께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서로 매일 노력하며 작은 변화를 꿈꾸며 살아간다.
올해 꿈노트 중 6번. 우리 가족은 건강한 운동 습관, 예쁜 말투, 용감하고 멋진 행동을 한다.
어쩌면 이 꿈을 이뤘다. 작년과 돌아보면 우리 가족 모두 예쁜 말투와 원하는 습관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꿈꾸는 바가 있다면 매일 작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바뀐다. 인생에 거저 되는 일은 없다.
가족 문화가 결국 나를 만든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비난과 질책이 아닌 결국 칭찬과 사랑, 긍정이 이긴다. "는 가족 문화를 물려주고 싶다.
제 성장 과정으로 그 누군가의 삶엔 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함께 행복한 꿈 꿔요! 우행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