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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맘유하맘 Dec 05. 2020

농부들이 만들어낸 기적, 열매

[유하네 농담農談]9.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맺는다는 대추나무

“엄마! 대추가 먹고 싶어요.” 대추밭을 지나던 세하가 말합니다. 시골 생활 3년째, 대추밭을 만난 지도 3년째. 세하는 이제 알려주지 않아도 언제쯤 대추를 먹을 수 있는지 아는 것 같습니다. 유하네는 500그루가 넘는 대추나무를 기르고 있습니다. 귀농하면 대추를 키우겠다 마음먹은 적 없지만 이사를 와보니 집 앞 땅에 대추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 대추나무를 받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유하네가 이사 오기 몇 년 전에 마을 어르신들이 빈 땅에 대추나무를 함께 심으셨다고 합니다. 대추가 열리면 마을에 있는 농사법인에서 수매를 해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4년 즈음 키운 대추나무를 유하네가 받았습니다.

대추는 다산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척박한 땅에 심어도 주렁주렁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맺고, 꽃이 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며 결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전통적으로 선물하는 과일입니다. 유하네도 대추나무를 받으며 주렁주렁 열릴 대추를 상상했습니다. 대추가 열리면 대추차에, 요즘 유행하는 대추칩을 만들고, 생대추를 잘라 넣은 나박김치도 만들고, 유하네가 직접 만든 막걸리 식초에 담가 대추 식초도 만들고, 빨갛게 잘 말려 말린 대추도 만들어 팔아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모두 유하네가 만드는 꾸러미에 담길 것들입니다.

열매를 기다리는 시간

대추나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대추나무는 5년 이상 자라야 본격적으로 열매가 달리기 때문에 이 시간 동안 대추나무의 수형을 생각하고 매년 가지를 정리해주며 키웁니다. 싹이 올라오기 전, 겨울이 끝날 무렵부터 대추나무 가지들을 정리해주고 대추나무마다 퇴비를 줍니다. 봄날의 반짝반짝 연두색 대추나무잎이 나오면 가지가 될 부분을 손으로 모두 잘라줍니다. 뜨거운 여름날 작은 대추꽃이 피어나면 부지런한 꿀벌들이 웅웅하고 날며 수정을 해줍니다. 이즈음이면 대추밭 가득 자란 풀을 베어 눕힙니다. 올해도 유하 아빠가 무거운 예초기를 들고 매일 대추밭을 오갔습니다.

열매가 달리기 시작할 즈음 각종 나방, 나비들이 대추 속에 알을 낳기 때문에 벌레들이 싫어하는 목초액 등을 물에 섞어 나무에 뿌려줍니다. 대추가 달아 벌레들이 특히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트랙터에 모터가 달린 큰 분무기로 뿌리지만 트랙터도 없고 모터 달린 비싼 분무기도 없는 유하네는 어깨에 짊어지는 20리터짜리 농사용 분무기를 사용합니다. 수십 번, 수백 번을 왔다 갔다 하며 벌레를 쫓습니다. 올해는 진짜 잘해보자는 결심으로 대추밭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작물들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먹고 자란다고 하죠.

대추는 열리지 않았다

근데 두 달간의 장마와 따라온 태풍은 유하네에게 대추열매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벌이 날아 대추꽃을 수정해줘야 열매가 맺히는데 기나긴 장마는 벌들이 날 수 없게 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굶어 죽은 벌들이 많다고 하지요. 마을에서 벌꿀을 채취하는 양봉장에는 드럼통 가득 설탕물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어느 마을 분의 친척이 벌꿀을 사 갔다는 소식에 마을 어르신은 “그거 완전 설탕물이야”하시더라고요. 벌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에 유하네는 걱정거리가 늘었습니다.

그나마 열린 대추들은 두 번의 태풍이 모두 가져가 버렸습니다. 열매가 바람에 모두 떨어져 버린 겁니다. 그래서 올해는 유하네 대추를 먹기 힘들어졌습니다.

“올해도 대추가 열리지 않으면 저 대추나무들 몽땅 뽑아버릴 테야”하셨던 마을 선배 농부님은 올해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실 모양입니다. 유하 아빠도 한쪽 대추나무를 뽑고 새로운 나무를 심어볼 계획을 만들어 봅니다. 힘들게 가꿔왔던 대추나무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는 호두나무, 밤나무, 체리나무, 오디나무를 심어보자.” 새로운 열매를 맺기 위해 유하네는 지치지 않고 다시 계획을 세웁니다.

때가 되면 모두 열매를 맺는다

모든 식물들은 때에 맞춰 열매를 맺습니다. 초봄에 심은 감자는 하지를 지나며 열매를 맺고, 늦봄 하얗게 피어난 딸기꽃은 6월이 되면 열매가 됩니다. 딸기꽃이 필 즈음 작은 종처럼 생긴 꽃을 피우는 블루베리도 7월이면 보랏빛 열매를 맺습니다. 노란색 작은 토마토꽃도 한여름 주먹만 한 열매를 맺고, 5월 초에 심은 고추나무들은 여름 내내 파란색 열매를 맺어 빨갛게 익혀갑니다. 6월 초에 심은 고구마순도 잎을 가득 달고 땅속 열매를 익혀가고 있습니다. 못났든 작든 열매를 맺습니다. 심지어 내가 심은 작물보다 잘 자라는 풀들도 이맘때 즈음 열매를 맺습니다. 밭 한가득 피어있는 바랭이 씨앗들을 보시며 “풀씨 떨어진다”하시며 앞집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시기도 합니다.

마을 성당을 방문한 누군가가 “농부는 매일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봄에 씨앗 한 알 심어 수천, 수만 개의 열매를 만들어내니 농부는 매일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 거죠”하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졌습니다. 한국 전체 인구의 5%도 안 되는 농부들이 전 국민의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틀린 말이 아닙니다. 마트에 쌓여있는 열매 하나하나는 농부가 만들어낸 기적입니다.

단단하게 커가는 유하·세하라는 열매

유하네의 최고의 열매는 유하·세하입니다. 유하엄마와 아빠는 ‘온 세상에 평화와 자유’를 이라는 이름을 붙인 열매를 더욱 알차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시골로 왔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선생님이 보내주신 학습 꾸러미를 하던 유하가 “엄마는 우리 동네 하면 뭐가 생각나?”하고 묻습니다. 우리 동네라는 주제의 학습지에는 빵집, 마트, 미용실, 경찰서, 식당 등이 그려져 있고 동네에 있는 것을 골라보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없는 것들입니다. “유하는 뭐가 생각나는데?”하고 묻자 유하는 “벌레가 생각나. 방아깨비랑 메뚜기, 엄마가 싫어하는 진드기 같은 거 말이야. 우리 동네에는 벌레가 많잖아. 근데 여기에 벌레라고 쓰면 이상할까?”합니다. 유하 엄마는 “벌레가 살아야 사람도 사는 거지”하고 웃습니다.

얼마 전 놀러 왔다 간 유하의 이종사촌 동생 로희는 유하언니가 맨손으로 방아깨비를 잡아 준 것이 신기한지 밤마다 전화를 걸어 “유하언니가 방아깨비랑 개구리를 이렇게 이렇게 잡아줬어요”합니다. “다음에 오면 또 잡아줄게. 또 놀러 와”하고 유하가 답합니다. 무서운 태풍이 또 한 차례 지나간 원주 작은 마을에서 단단한 열매들이 잘 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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