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 고추모 300개를 심고 그늘에 앉았습니다. 땡볕 속 챙 넓은 모자 하나에 의지해 고추를 심고 나니 땀이 주르륵 떨어집니다. “엄청 힘든데 참 좋다.” 유하 엄마의 말에 “노는 거지 뭐~”라며 유하 아빠가 맞장구를 칩니다. ‘노는 게 일이고 일하는 게 노는 것, 농사는 쉼’이라는 철학을 현실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 중인 유하네입니다. 밭을 가득 채우니 유하네에게는 쉼이 따라왔습니다. 정원에서 맞는 쉼입니다. 도시에서 했던 노동과는 완전히 다른 노동입니다. 곡괭이로 땅을 파헤치고 레이크로 땅을 긁고 호미로 구멍을 만들어 식물을 심는 육체노동에 몸은 뻐근하지만 힘들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리고 완성해가는 놀이입니다. 호미질에 맞춰 울어주는 뻐꾸기며,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까지 있으니 더 신이 납니다. 신이 나서 하는 노동입니다.
얼마 전 5일 내내 로컬푸드매장에서 일하고 주말이면 마을에 들어와 농사를 짓는 어떤 언니에게 “너무 힘들겠어요”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언니는 “나는 농사가 쉬는 거야. 이거 없으면 일주일을 버틸 힘이 없어”라며 웃습니다. “언니도 우리처럼 놀고 있군요.” 맞장구에 한바탕 웃음꽃이 핍니다.
살아갈 힘과 용기를 만드는 농사 몇 주 전부터 토요일이 되면 마을이 들썩입니다. 20여 명이 모여 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 회사에서 정년퇴직한 할머니, 사업을 하다 개인파산을 한 아저씨, 농사를 짓고 싶지만 땅이 없다는 할아버지 등 각자 사연을 가진 분들이 우리 마을에 모였습니다. 농사가, 땅을 만지고 땀을 흘리는 노동이 사람을 더 건강하고 힘차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멋진 선배 농부들이 협업농장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농업’을 한다고 합니다. 원주지역 8개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계획해 농림부 공모사업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신체적 장애가 있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한 도시민들이 새소리 가득한 우리 영산마을로 들어와 함께 농사를 짓기로 한 것입니다. 농사가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다시 주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 갑니다. 유하 아빠는 농사 담당 교육간사로 함께 합니다.
협업농장을 시작하는 행사를 한 날, 600평 정도 되는 땅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방치돼 있던 밭을 선배 농부들이 잡목을 정리하고 길을 냈습니다. “옥수수 모종은 밑동을 잡고 빼시고요. 이랑에 두 뼘 간격으로 구멍을 내고 심으시면 됩니다.” 유하 아빠가 사람들 사이에 서서 옥수수 모종 심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처음 하는 호미질이 어색하지만 다들 열심입니다. 한 평 텃밭을 하겠다는 분들도 나섭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맷돌호박에, 땅콩도 심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건강 돌봄 프로그램도 진행합니다. 원주에서 활동하는 플로리스트들이 꽃길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일하며 노는 아이들
학교에서 돌아온 유하가 “엄마, 30분만 만화 보고 나와서 일해도 돼요?”하고 묻습니다. 30분 만화를 보고 나온 유하가 집 앞 풀을 뽑습니다. 집 앞 망초대가 어느새 유하 무릎 높이만큼 컸습니다. 유하가 강아지 똥을 모아 밭에 뿌리고는 달려옵니다. 장갑을 끼고 망초대를 뽑습니다. “씨가 맺히기 전에 뽑아야 해”라는 엄마의 채근에 있는 힘껏 망초대를 뽑아 한곳에 모읍니다. “쏙쏙 뽑히네”라며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뽑습니다. 옆에 있던 세하도 힘을 보탭니다. 어느새 풀 무더기가 생깁니다. “여기 벌레 있다. 잡아서 닭 갖다줘야지”라며 종이컵에 벌레도 모읍니다. 으악! 소리를 지르다가 우히히~ 웃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밥값을 해야 한다는 유하네의 규칙에 따라 유하는 오늘도 마당으로 밭으로 뛰어다닙니다.
물론 유하 입이 삐죽삐죽 나오는 날도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나면 유하 엄마와 아빠는 폭풍칭찬을 해줍니다. “유하가 풀을 뽑으니 우리 집 마당이 엄청 예뻐졌어”하면 유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제 놀아도 되죠?”합니다. 뛰어가는 유하 뒤통수에 대고 “일하는 게 노는 거고 노는 게 일하는 거라니까!” 유하 아빠가 웃으며 소리를 지릅니다. 유하 아빠의 좋은 말을 이해하려면 유하가 조금 더 커야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