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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현 Jul 22. 2021

[플리1]한여름, 태양빛에 반짝반짝빛나던 바다가 그리워

f(x) - Goodbye Summer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필모어 스트리트(Fillmore street).

밑바닥까지 닥닥 긁어 퍼올린 우물같던 내 마음을 넘치도록 채워준(Fill more) 그 곳에 지금도 선명하게 그려지는 내 집이 있었다. 

언덕따라 굽이굽이 길이 끝날 때까지 걸으면 집에서 30분만에 바닷가에 도착하던 필모어 스트리트.

언덕 꼭대기에 서면 사늘한 바람이 살랑살랑 얼굴을 식혀주고, 언덕에 가려졌던 시야가 뻥 뚫려 가슴이 시릴 정도로 시원해지던 곳.


아기자기한 집들이 언덕을 따라 모여있었다. 길가에는 이름난 브랜드들의 스토어가 주욱 즐비했고, 중간중간 로컬 맛집들이 있어 쇼핑하며 먹으며 한가로이 오후 시간을 보내는 발걸음.

"여기라면.. 정착해서 앞으로의 내 인생을 살 수 있어" 수줍게 열었던 마음이 넘쳐흘러

필모어스트리트 플레이리스트를 꺼내본다. 








5시, 퇴근 후 어깨에 메는순간 전혀 에어같지 않은 맥북에어를 짊어지고 걷는다.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서 필모어스트리트까지 50분.

차이나타운을 지나, 재팬타운을 지나 굽이굽이 언덕을 오르내리며 걷다보면 건조한 햇살에도 이마에 땀이 송글 맺힌다. 

로컬이라고 칭하기엔 아직 이방인에 가까웠던 그 때, 

외로움, 고독, 막막함이라는 습한 감정이 샌프란시스코의 안개처럼 스멀스멀 차올라 마음을 채우기 시작하면

어느새 채도높은 쨍쨍한 햇빛과 물방울 하나 느껴지지 않는 건조하고 사늘한 바람이 살랑살랑 그 습기를 말려준다. 


이마에 살짝 맺힌 땀방울을 건조시켜주던 그 햇살과 바람은 f(x)의 <Goodbye Summer>를 닮았다. 

언덕을 굽이굽이 오르내리던 스물다섯의 나는 이 노래를 자주 들었다. 

내게는 없던 학창시절의 풋풋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이 노래가 왜 그렇게 좋았을까?

기타소리로 시작하는 첫부분도, 아련하고 담담하게 그 때를 추억하는 듯한 멜로디와 목소리, 설레는 하이틴 로맨스가 한 편 써지는 가사. 

현실의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갈망, 막막하고 두려운 내 미래를 다 잊을 수 있게 해주는 환상을 이 노래를 들으며 꿈꿨다.  





일년내내 가을날씨같은 샌프란시스코는 계절이 의미없다. 물론 여름과 겨울은 온도 차이가 조금 나긴 하지만 한국처럼 모두가 땀을 줄줄 흘리며 벗어제꼈다가 일제히 롱패딩 속으로 들어가는 정도는 아니다. 

건조하니까 햇빛 아래선 땀이 송골송골하고 그늘에선 서늘하다. 나시에 쪼리신은 사람과 패딩에 어그신은 사람이 함께 돌아다니는 곳이다. 

미국 내에서도 백인 비율이 매우 낮은 축에 속하고, 미국 사람들도 그 동네는 참 특이하지라고 말할 정도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말그대로 멜팅팟같은 곳이다. 근처에 실리콘 밸리와 스탠포드대학과 UC버클리 등 명문대가 있으며 조금만 더 가면 LA에 도착할 수 있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이 작은 도시에서 자신의 가치관대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네가 샌프란시스코다. 




도시 중심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상징, 하트가 매 시즌별로 옷을 갈아입는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처음 도착한 그 때도 여름이었다. 

강렬하고 극적인 한국의 여름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샌프란시스코의 여름에 나는 금새 매료되었다. 

한 톤 필터를 제거한듯한 강한 채도와 전혀 끈적거리지 않는 바삭바삭하면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예고없이 사악 깔리는 안개와 우산은 도무지 소용이 없는 부슬부슬 안개비.


주말 아침이면 아파트 마당에 펼쳐지는 파머스 마켓에서 과일과 채소를 한 봉지를 사서 씻고 손질해 냉장고에 넣고, 고구마를 사서 맛탕을 요리하거나 나갈 채비를 한다. Sweet Maple이라는 우리 룸메이트들의 핫플레이스에 가서 브런치를 먹으며 주말의 시작을 만끽한다. 

필모어스트리트에는 항상 세련되고 힙한 사람들이 넘친다. 그만큼 1-2시간은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들도 곳곳에 숨어있다. 유기농 요거트 아이스크림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며 주욱 늘어서있는 힙한 샵들을 들락거리며 구경하고, 카페에서 수다를 떤다. 

때로는 혼자 주말을 즐기기 위해 나와서 필모어스트리트를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힙한 코스메틱 브랜드의 샵들을 둘러보면서. 


언덕을 올라가다 어느 순간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다. 

그 곳에 서면, 발 밑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경사가 높은 언덕에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서 탁 트인 풍경을 힘껏 들이마신다. 

걷다걷다 더이상 걸을 수 없는 길의 끝에서 시작되는 바다를 한참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바다까지 다시 걷는다. 

발걸음의 끝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바다는 햇빛에 잘게 부서지며 빛난다. 

반짝반짝 습기머금은 바람에 찰랑이는 바다가 마음에 철썩철썩 와 부딪힌다. 

귓가엔 보드랍고 건조한 수건같은 노래가 반복된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다. 

반짝반짝 햇살에 부서지던 바다처럼 나도 아주 반짝반짝 예쁘게 빛났었구나.

나는 모르던 그 때도 아주 싱그럽고 예뻤구나.

그리고 그 귓가에 들리던 노래 가사처럼 나도 아주 빛나고 소중한 첫사랑이었다.






**Goodbye Summer에 영화<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의 영상을 씌운 버전

첫사랑 기억조작하는 노래라는 별명답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가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름날 청량한 10대들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이 노래와 딱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0u0zP8gbwgQ






**엠버 솔로앨범 버전: 에릭남&엠버 <I just wanna> 

(100% 영어가사, 듀엣으로 진행되는데 작곡을 한 엠버가 가사도 써서인지 조금 더 가사에 원하는 이미지가 잘 구현이 된 것 같다. 부드러운 엠버와 에릭남의 목소리 케미도 참 좋다. 

다만 이 영상은 LA에서 음악방송에 출연한 버전이라 관객들의 함성소리가 있는데, 노래하는 둘의 분위기도 자유롭고 샌프란시스코와 거리는 조금 있지만 미국에서 다닌 공연들 생각도 나서 첨부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mV0UcDA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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