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아버지의 시간 2
아버지와 글을 쓰는 저자 사이에서 늘 딜레마가 생긴다.
항상 옳은 말, 좋은 말을 해야만 하는 저자 입장이지만 늘 바르게만 살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독자에게는 좋은 말을 들려주지만 정작 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가 있다.
3년째 빠지지 않고 독서포럼에 참석하시는 건축사님이 지난달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글을 쓰는 저자라는 사람은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겠다고.
첫 번째는 본인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보니 좋더라' 하는 생각에서 좋은 글을 쓰는 거고, 두 번째는 본인이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대한 후회로 인해서 '이렇게 살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에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나 역시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그것을 많이 느낀다.
내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도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삶에 있어 내가 실행하기 어려운 것들을 나는 이렇게 못했으니 당신들은 이렇게 한 번 살아보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저자가 꼭 100% 본인의 글과 닮은 인생을 살기는 힘들다. 그런 저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리 살기 힘들거라 생각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저 내 삶과 조금은 닮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또 내가 쓴 글과 조금씩 닮아가려고 노력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 노력이 우리 아들 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매일 자아성찰을 하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아이들이 내가 한 번에 크게 변하는 걸 보기는 힘들겠지만 매일 사색하고 좋은 방향으로 바꾸며 살아가려고 조금씩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아이들이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빠 많이 늙었구나... 예전보다 성질 많이 죽었다... 많이 달라졌구나..." 하는 것을...
또한 글을 쓰는 저자는 본인을 내려놔야 한다. 백 명, 천 명이 좋다고 해도 한 명은 악플을 달며 반박하는 댓글을 달거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저자는 그런 것을 감당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글을 통해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니 그것은 당연히 저자의 몫이다. 한 편으로는 그런 것들에 대한 갈등도 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평생 글 한 편도 쓰지 못할 것 같기에 용기를 가지고 글을 쓴다.
자식을 키우면서 책으로는 배우기 힘든 살아있는 공부를 많이 한다. 이래저래 이번 주는 고난의 주간이다.
나는 군대 병과가 새 병도 아니고 헌병 출신이다.
제대하고 나서도 나와 같은 병과를 찾아보기가 참 힘들었다. 그런데, 나와 30년 가까이 차이 나는 같은 병과 후배를 제대하고 복싱 체육관에서 올해 초에 처음 만났다. 체육관에서 마주칠 때마다 경례를 주고받는 아들보다 세 살 많은 듬직한 녀석이다.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는 사랑하는 아들과 오늘 한 잔 하기로 했다.
오늘 낮에 체육관에서 마주친 사랑하는 군대 후배 건이도 같이 한 잔 할 건지 물어보니 좋다고 해서 셋이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후배 건이와 아들은 이내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고, 1차로 가자미 새꼬시와 물메기탕을 2차로 호프집에서 맥주를 한 잔 하고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요 녀석들이 조금 아쉬운 듯 보였다.
아들이랑 후배랑 둘이서 놀게 노래방을 잡아주고 나는 집으로 가려고 밖으로 나와 노래방을 알아보는 사이에 아들이 1차로 먹은 술로 인해 인사불성이 되었다.
"나 따라먹다가 죽는다. 내가 두 잔 마실 때 한잔 마셔라"
처음부터 그리 경고했건만 아들은 맛이 갔고, 후배 건이는 맛이 가려고 하는 걸 정신력으로 붙잡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내를 호출했고, 아내는 이내 차를 몰고 픽업을 나왔다.
후배 건이를 집에 태워준 뒤 우리도 집으로 돌아왔는데, 사랑하는 아들이 그때부터 변기통과 연애를 시작했다.
10분 20분... 시간이 흘러 한 시간째 변기양과 블루스를 추고 있는 아들이 걱정되어 빨리 씻고 나오라고 하니 뭐라 뭐라 주정을 한다. 술 마시고 그러면 안 되지만, 술 마셨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이해를 했다.
얼른 씻고 나오라며 샤워기에 따뜻한 물을 틀어주니 그때부터는 샤워기 양과의 블루스 타임이 시작되었다. 한참을 뜨거운 물을 맞으며 욕조에서 거의 잠들어 있길래 얼른 나오라고 하니 또 뭐라 뭐라 주정을 한다.
억지로 나오라고 나오라고 해서 겨우겨우 방에 들어가 뉘었더니 또 뭐라 뭐라 주정을 한다.
아들이라 어찌할 수도 없고 한숨을 푹 쉬고 방으로 와서 누웠다. 다음날 아침에 본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침대에 누워서 주정을 하는 아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다.
잠시 후 따님을 불러 팔베개를 해주며 옆에 뉘이고 친구 문제, 이성 문제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술 때문에 피곤한 게 아니라 술에 취한 아드님 챙기느라 힘들어 몸을 뉘었는데, 3시간쯤 지나서 생체 시계가 새벽 5시쯤 되었다고 일어나라고 해서 일어났더니 겨우 새벽 2시밖에 되지 않았다.
급 콩나물 해장국이 당기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 고민이다. 아무래도 어제 술이 조금 부족했나 보다. 술을 많이 마시면 그대로 아침까지 자는데, 술을 어중간하게 마시면 꼭 새벽에 깬다.
올 겨울에 가족여행을 떠나볼까 생각 중이라 거실에 나와 새벽 4시까지 항공권부터 숙소까지 이런저런 검색을 하고 있으니 술이 덜 깬 아드님께서 허연 얼굴로 쭈뼛쭈뼛 거리며 거실로 나온다. 내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며 나에게 한마디 건넨다.
"아빠. 미안해."
"괜찮다. 술 마시고 그러면 안 되지만 술을 마셨으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습관이 되면 안 되니 적당히 마셔라."
"네. 아빠 사랑해."
"아니. 아빠는 안사랑해."
"힝. 아빠아."
곁에 와서 꼭 끌어안으며 눕길래 나도 꼭 끌어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벽 4시에 콩나물 국을 데워서 아들은 국물만 마신 뒤 다시 들어가서 자고 나는 배가 고파 밥을 말아서 한 그릇 먹고 다시 잠들었다.
월요일. 할머니 기일이라 제사를 마친 뒤 시작된 따님과의 전쟁
화요일. 속이 상해서 선배와 술을 한 잔 하며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고
수요일. 밤 10시에 아드님은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울고 불며 전화가 와서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며 달래고
목요일. 부부동반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따님은 친구 문제로 속상하다며 울고 불며 난리고
금요일. 군대 후배 건이와 아들과 같이 술을 마신 날. 아드님의 첫 술주정을 접하고
토요일. 운동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운기조식하는 시간을 가졌고
일요일. 오전 10시경. 아드님이 식사 중 무슨 말을 하다가 한 시간 넘게 논쟁이 이어져서 아드님께서 또 펑펑 울고 나는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하!~~~ 신이시여...
이번 주가 고난의 주간인지요?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어릴 때는 이런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서야 사춘기에 접어든 것인지 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니 종종 이런 일이 생기곤 한다. 자식으로 인해 어른이 되고, 자식으로 인해 나도 철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이번 주 겪은 일들과 내가 느낀 감정을 정리해서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단 하나 바라는 것은 이렇게 부모자식 간에 논쟁이 있더라도 안 좋은 감정을 묵혀두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자식처럼 우리도 어떤 일을 계기로 평생 안 좋은 사이로 살고 싶지는 않구나.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간혹 논쟁을 하더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우리가 더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부모자식 간에 앙금은 남기지 말도록 하자.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를 원하지만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부모에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아무리 옥신각신 하는 가족이라도 가족이 곁에 있을 때와 없을 때는 마음자리가 다르다. 항상 네 곁에는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것이 아빠의 조그만 바람이다. 사랑한다."
고난의 주간이 지났으니 이번 주는 행복의 주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그리 만들어보려 한다.
요즘 들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래도 나는 자식이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