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프 대신 눈물
매주 화요일 저녁 팀 비즈니스 강의가 있는 날이다. 오늘은 강연자가 누구인지, 주제가 뭔지 모르고 참여했다. 뭐든 들어 놓고 배워 놓으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강의는 비즈니스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들, 갖춰야 할 것들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이전 강의들에서 이미 본 내용도 있었기 때문에 크게 다른 건 없었다.
다만, 강의 중, 강연자 분이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으면서 인생 그래프에 대한 내용을 들을 때는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인생 그래프라는 것이 지나온 삶에 대한 굴곡을 돌아보는 작업이기 때문에 고점도 있지만 저점도 있고 밑바닥에 있을 때 스토리를 듣는 것은 언제나 감성을 자극하니까..
강연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인생 그래프를 생각해 봤다. 고점과 저점을 찍을 수 있을까? 애매했다.
플래너를 좋아하는 내게 몇 년 전부터 사용하는 플래너에도 인생 그래프 비슷하게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하는 부분이 있다. 웃긴 건 한 번도 그 부분을 제대로 다 채우지 못했다. 흰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씨다. 딱 그런 느낌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채워야 할지 시작을 못하겠더라.
오늘도 역시나 '그래.. 저분의 그래프는 저렇구나' 하고 있는데 강의가 끝나고 Q&A 시간이 뜬금없이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프를 그려 본다는 것은 내 삶을 수치로 나타내 본다는 말이다. 언제가 좋았고 언제는 아니었고, 얼마나 좋았고 얼마나 나빴고.
살면서 아무 일이 없었던 게 아니다. 좋았던 순간도 있고,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지나 온 힘든 순간들을 잘 이겨 냈고 비 온 뒤 무지개처럼 좋았던 순간들도 많았는데.. 도무지 점을 찍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10분 간,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왜일까?
지난 1년 간, 열심히 달렸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면서 시간이 생겼고 최대한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고 싶었다. 정확히는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고 결과를 보고 싶었다.
1년 동안 열심히 했고, 보람도 있었다. 힘든 날도 있었다. 힘든 날이 더 많았나? 열심히 할수록 힘들고 지친 날이 많았다. 하루는 이렇게 하면 잘 될 거 같다가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내 인생의 저 점일까?
그래프는 시작도 못하고 눈물이 글썽, 마음이 복잡하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며 충분히 암흑기였다 생각했는데, 이 시기를 좀 더 겪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1년 동안 뭔가를 잘 못한 걸까? 목표 설정이 잘 못 된 걸까?
오만가지 생각 속에 무서웠던 건.. 이렇게 계속인 걸까? 하는 생각이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니까..
그 사이 그래프 작성이 끝나신 분들이 하나 둘 발표를 시작하셨다. 나 보다 10년, 20년 더 살아오신 인생 선배님들의 그래프는 다양했지만 굴곡이 많은 삶을 사신 분들이 많았다. 내 인생에서는 찍힐 리 없던 지점도 많았다. 그리고 그 굴곡들을 다 지나오신 후 지금은 상승 곡선으로 가고 계신다 했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터널을 지났다 싶으면 다시 터널 속을 들어온 듯한 이 기분이 언젠가는 없어질까? 아직 다가오지 않을 미래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터널 속에 갇힌 기분이 들더라도,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직전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가고 있을지라도 지금 이 시간들의 경험들이 다 성장의 밑거름이 되리라는 것이다.
경험으로 성장하는 민별, 애초에 그 경험에 핑크빛 성공의 경험만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잿빛 실패의 경험이 더 많을 것을 알았기에, 그럼에도 그 경험이 나를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기에 붙인 이름이었다. (이름 따라간다는데 그래서 기복이 많은 건 아닌 걸로!!)
오늘은 인생 그래프 대신 눈물이었다. 하지만 5년 뒤, 10년 뒤 어쩌면 그 보다 더 일찍, 조만간 슥슥 거침없이 인생 그래프를 그리고 내 삶을 애정 가득 돌아보는 시간이 온다면 오늘의 경험도 성장에 기여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