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7일의 일기에는 치자꽃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친정엄마는 꽃나무를 좋아하시는데, 예전부터 종종 작은 꽃나무를 사 오셔서는 제법 큰 나무로 키우시곤 했다. 마른 잎을 보면 ‘얼마나 목이 말랐니’하시며 정성을 들이시니, 나무들도 잘 안 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키우기 쉽다는 다육이조차 단명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식물이 목이 마를 것이라는 생각은 아예 해본 적이 없었고, 전자파 차단 같은 기능에 중점을 두고 식물을 키워보려고도 해 보았으나 잘 되지 않았다. 바다보다는 산을 좋아하고, 나무가 많은 학교와 공원을 사랑하고, 꽃꽂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집에 있는 식물에는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아주 드물게 꽃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너무 오래전 일이지만 치자꽃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던 그날의 기억이 희미하게 있다. 그래서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일기를 읽자 가슴이 막 뛰었다. 나도 좋아하는 꽃이 있다!
*‘작가신청은 언제쯤 하게 될까’라는 이전 글에서 썼던 바와 같이, 나는 워낙에 매사 호불호가 없고 감정기복도 없는 타입이라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순간을 ‘자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기쁘게 만드는 것(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을 계속 찾는 중이다.
치자는 꽃나무다. 6~7월에 하얀색의 꽃이 피면 강렬한 꽃 향기가 나는데, 향기가 어떠했는지 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온 방안이 꽃 향기로 가득해서 내내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치자꽃 향기는 워낙 유명해서 치자나무의 영어이름인 Gardenia를 딴 향수가 꽤 있는데, 샤넬의 ‘가드니아’,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로사 가데니아’가 대표적이다.
갑자기 치자꽃 향기가 그리워져 향수를 사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내가 치자꽃 향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향의 강렬함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향을 대표적인 플로럴 계열의 짙고 달콤한 향이라고도 하고, 새벽 공기 냄새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향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향을 가리지 않는다. 향을 가릴 만큼 민감하고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그 작은 꽃 한두 송이가 그렇게 강렬한 향기를 내뿜는다는 것이 놀랍고, 방에 있는 내내 그 향기가 가시지 않아 마치 그 공간을 선물 받은 듯한 기쁨을 느낀 사실이 좋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치자꽃은 줄기가 굵어 꽃다발로 만들기에 적절하지 않다. 결국 치자꽃 향기를 오래 맡기 위해서는 꽃나무를 키울 수밖에 없겠다.
여름이 되면 베란다 문을 열고 지내게 될 테니, 치자나무를 들여야겠다. 꽃송이 몇 개가 열려 우리 집을 채워주면 기특해하며 물을 줘야지. 향기를 선물 받았으니 물이라도 주며 보답을 해보아야지. 꽃이 지고 겨우내 초록 잎사귀로 지내더라도 없어도 내년에 선물 받을 향기를 생각하면서 물을 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