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에 기르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한쪽 눈을 도려낸 주인공은 얼마 후 그 고양이를 나무에 매달아 죽여 버린다.
이 일이 마음에 걸린 주인공은 또 다른 검은 고양이를 키우게 되는데 목에 있는 흰 반점이 교수대를 떠올리게
해서 새로 들인 고양이마저 도끼로 찍어 죽여 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이를 말리려던 젊은 아내를 실수로 죽여 버리게 된다. 아내의 시체를 지하실 한쪽 벽에 넣고 시멘트로 감쪽같이 덮어 버리지만 경찰이 집안에서 끝내 아내의 시체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지하실 벽에서 끔찍한 고양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경찰이 그 벽을 파 해치자 죽은 아내의 머리 위에 검은 고양이 플루토가 앉아 있다.
이 소설에서 고양이는 물론 아무 잘못이 없다. 잔인하고 비열한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벽 속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라던가, 시체의 머리 위에 앉아 주인공을 노려보는 검은 고양이의 이미지는 그대로 내 안에 박혀 버렸다.
어린 날 이 책을 읽다가 벽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장면부터 덜덜 떨었다. 벽속에서 부인의 시체 위에 앉아 노려보는 고양이는 삽화가 없었는데도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라서 심지어 오랫동안 악몽을 꾸기도 했다. 분명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 저를 죽이려던 인간을 파멸시키는 존재, 고양이는 해코지를 당하면 반드시 복수를 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새겨져 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즐겨 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전설의 고향'에서도 종종 고양이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임신 중 고양이 고기를 먹었더니 눈이 쪽 찢어지고 입이 빨간 고양이 아기가 태어나 자라서 사람에게 해코지를 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럼 그렇지. 역시 고양이는 불길하고 무서운 존재라고 마음먹머 버렸다. 그 후로 오랫동안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고양이는 싫었다.
고양이보단 개가 좋았다.
내가 어릴 때 아빠가 '스캉'이라고 이름 붙인 갈색 개를 키웠다. 이마 한가운데 흰 마름모꼴 모양이 있던 개였다. 지금 생각하면 스피츠 종에 가까왔던 잡종이었다. 어떻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충직하고 영리하던 개였다. 가족 모두가 아꼈다. 스캉과 찍은 사진도 있다. 우리를 좋아하던 그 얼굴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스캉은 어느 날 집을 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가 며칠을 문을 열어 놓고 기다렸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서 쥐약이라도 먹은 모양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기르던 개를 잃는 일은 고약했다. 스캉의 최후는 어땠을까 짐작해보면 어느 것이나 끔찍하고 또 마음 아픈 상상뿐이었다. 우리보다 엄마가 오래 마음을 앓았다.
대개가 단독주택에서 살던 어린 시절, 친구네 집에 가면 종종 개가 있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잡종개들이었다. 갈색이나 검은색, 혹은 흰색이던가 검정에 흰색이 섞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가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며 방방 뛰었다. 같이 놀고 싶어서 겅중거렸다. 모두가
순하고 착한 개들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도 개가 나왔다. 순이와 철수 옆에서 같이 달리는 개가 바둑이였다.
바둑이, 바둑이... 순이와 기영이, 철수랑 늘 같이 놀던 바둑이. 내가 처음으로 인쇄된 글로 강아지 이름을
만났던 바둑이. 하양 털에 검정 반점이 있었던 바둑이 그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저녁이면 밥 먹으라고 아이들 이름을 불러대는 골목길에는 '매리야, 백구야, 진돌아...' 나가 노는 개들을 불러대는 소리들도 같이 울려 퍼지곤 했다. 개들은 아이들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확실히 고양이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 고양이란 쌀가게에서 쥐를 쫒느라 키우는 동물이었다. 쌀 사러 가면 쌀독 위에서 새초롬한 표정으로 우릴 노려보곤 했다. 자주 봐도 곁을 주는 법이 없었다.
개는 매일 봐도, 아침에 보고 점심때 봐도 볼 때마다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 반기는 그 한결같은 마음은 언제나 그대로 다 보였다. 고양이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속을 알 수 없었다. 늘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난 역시 개가 좋구나.
다 자라도록 그런 마음이었다.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다거나, 고양이를 집안에서 키우게 되는 일 따윈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뭐든 너무 단언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내 옆에서 가르릉 거리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보면 말이다.
언제부터 내 인생에 고양이들이 스며들기 시작했을까. 밀물 들어오듯 어느새 이렇게 가까이 왔나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고양이들은 내 앞에 와 있었다. 개를 키우고 싶어 아파트를 떠나 단독 주택을 얻었더니 어느 날 흰 고양이 한 마리가 홀연히 나타났다. 눈이 하늘색이었다. 그런 눈을 가진 흰 고양이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흰 고양이는 짝이 있었다. 갈색 눈이었다. 이어서 다른 길고양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곧 두 마리에서 세 마리가 되고, 네 마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