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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 Aug 09. 2021

톰과 제리

톰을 응원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고양이를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매일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열렬하게 빠져 있던 고양이가 있었다. 미국에서 제작한 만화 영화 ‘톰과 제리’의 주인공 ‘톰’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이다.. 아아.. 톰...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고양이 톰..

70년대 태어난 나는 주말 아침마다 방영해주던 ‘초원의 집’을 비롯해서 ‘6백만 불의 사나이’라던가 ‘소머즈’, ‘원더우먼’, ‘헐크’ 같은 오리지널 미국 드라마를 보며 자란 세대다. 그러나 이 모든 기라성 같은 미드를 제치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프로그램은 단연코 미국 만화 영화 ‘톰과 제리’였다.


덩치 큰 고양이 한 마리와 고양이 손바닥에 올라갈 만큼 작은 생쥐 한 마리가 주인공인 이 만화영화는 대사도 없이 음악과 장면만으로 배꼽을 쥐게 할 만큼 재미있었다. 에피소드들은 대개 비슷하다. 톰은 제리를 잡으러 쫒아다니고 제리는 요리조리 도망 다니며 머리를 쓴다. 이 게임에서 승자는 대개 제리다. 톰보다 영리하기 때문이다. 톰은 제리를 잡기 위해 온갖 수를 써 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제리는 톰이 만들어 놓은 어설픈 함정 따윈 쏙쏙 빠져나가며 오히려 그것들을 이용해 기가 막히게 톰을 골탕 먹인다.  톰은 제리가 밟으라고 놓아둔 압정에 제 발을 찔려서 펄펄 뛰다가 가시가 가득 돋친 선인장에 엉덩방아를 찧고는 비명을 지르며 하늘 높이 솟구친다. 제리가 사는 집 앞에 치즈를 올려놓은 쥐덫을 놓아두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 앞에서 기다리지만 이미 제리는 다른 문으로 빠져나와 톰의 꼬리를 그 덫 위에 올려놓고 톰 앞에 나타나 치즈만 살짝 가져가며 약을 올리고는 결국 톰의 꼬리가 덫에 걸리게 한다.  어쩌다 제리가 톰의 손아귀에 잡힐 때에도 제리에겐 다 계획이 있다. 눈물을 뚝뚝 떨구며 뷸쌍한 표정으로 톰을 바라보기만 하면 톰은 바로 마음이 약해져서 같이 훌쩍이며 제리를 놓아주고 아파하는 제리의 이마에 수건을 올려주는가 하면 맛난 수프를 끓여 떠 먹여 준다. 만약에 제리가 숨이 넘어간 것처럼 작별을 고하며 쓰러지는 연기라도 하면 톰은 그야말로 어쩔 줄 모르며 제리를 살리려고 온갖 방법을 써가며 울고 불고 후회를 한다. 물론 제리는 한쪽 눈을 뜨고 이 모든 상황을 즐겨가며 킥킥거린다. 이러니 이길 수가 있나.

  

지금은 성년이 다 되어가는 큰 아이가 어렸을 때 명절마다 강릉 시가를 오가려면 지루한 시간을 채워줄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어릴 때 즐겨 보던 ‘톰과 제리’ 비디오 CD를 구해서 틀어 주곤 했다. 아들은 금방 빠져 들었다. 같은 에피소드를 몇 번이나 보면서 웃고 또 웃었다. 어른이 된 내가 다시 봐도 정말 잘 만든 만화 영화였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어릴 땐 제리가 톰을 멋지게 골탕 먹일 때마다 통쾌한 마음이었는데, 늘 제리와 한 마음이었는데 어른인 나는 어느새 톰을 응원하고 있었다.

번번이 당하면서도 한 번도 멋들어지게 성공하지 못하는 톰, 늘 넘어지고, 이마를 찧고, 날카로운 것에 찔리고, 뜨거운 물에 털이 홀딱 벗겨지거나, 야구공에 맞은 이빨이 유리처럼 와장창 깨져버리기도 하는 톰의 고통과 불행에 더 이상 웃음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제리의 영악한 잔인함이 맘에 걸리기 시작했다. 영리하고, 계산이 빠르고, 재빠른 데다 연기력도 뛰어난 이 어린 악당은 매번 톰을 쩔쩔매게 한다. 톰이 제 꾀에 빠져 실패할 때마다 배를 잡고 웃는다. 얄미운 녀석 같으니라고..


어린아이들은 작고 약하다. 어른들은 크고 힘이 세다. 두려운 존재다. 톰과 제리를 보고 있으면 제리는 어린 나 같고 톰은 다 큰 어른 같았다. 그래서 작고 어린 제리가 크고 힘센 톰을 물리치고 골탕 먹이는 것이 좋았다. 신났다. 어린아이면서 금화로 가득 찬 가방이 있고 말도 번쩍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장사인 말괄량이 삐삐를 보면서 느끼던 기분과 같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보니 톰도 제리도 그냥 아이다. 단지 톰이 덩치가 더 크고 조금 더 아둔할 뿐. 매일 재미나게 놀고 싶어 온갖 궁리를  하고, 늘 맛있는 음식을 꿈꾸고, 멋지게 한 탕 하고 싶어 몸이 달아오르는 개구쟁이, 톰은 그저 덩치 큰 아이다. 몸집이 크다고 강한 것도 아니고, 힘이 더 세다고 매번 이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지독하게 당하고서도 또 다음 작전을 짜는 톰, 그렇게 실패하면서도 이번에 성공하면 얼마나 짜릿할까 상상하며 혼자 키득거리는 톰, 실패한 기억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보다  다시 성공할 것 같은 느낌에 용기백배 해져서 벌떡 일어나는 톰을 보고 있으면 왜 이 나이에 톰을 응원하게 되는지 알 것 같다. 영리하고, 재빠르고, 날쌔게 톰을 골탕 먹이는 제리보다 당하고 실패하면서도 또다시 해 보는 톰이 좀 더 나와 가깝기 때문이다.

더 많이 가진 것 같은 존재의 빈 곳이 보이기 시작할 때, 겉으로 보이는 게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이기는 것보다 또다시 해 볼 수 있는 마음이이야말로 진짜 멋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톰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매일을 새날처럼, 매 순간을 처음처럼 설레고 긴장되고 흥미진진해하는 톰이 부럽다. 대단하다. 멋지다. 나도 톰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톰이 톰답게 살아가기 위해 제리 역시 꼭 있어야 하는 존재다. 매일을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이자 에너지,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이 세상은 끝이다. 어제와 비슷하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작전을 세우고, 사건을 일으키며 절대 지루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는 둘을 보고 있으면 사는 일이 이랬으면 좋겠구나 끄덕이게 된다. 그럼에도 제리처럼 영악하지도, 똑똑하지도, 계산이 빠르지 못한 나 자신을 잘 안다. 그래서 톰이 좋고 톰을 더 응원하고 싶다. 매일 실패하더라도 매일 다시 성공을 궁리하며 오늘 하루 신나게 살아가는 이 덩치 크고 순진한 친구가 너무나 좋다.


어쩌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아기 고양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분명 그곳엔 개구쟁이 고양이 톰이 눈빛을 빛내며 웃고 있을 것이다.

톰과 제리에 열광하던 어린아이는 어느새 흰머리가 희끗희끗 돋기 시작한 중년이 되었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제리의 뒤를 열심히 쫓고 있을 톰을 생각하다 보면 왠지 다시 힘이 불끈 나는 기분이 든다.

어제 열광하던 장난감을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열렬하게 달려들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난을 치고 있는 내 곁의 새끼 고양이 역시 새삼 애틋해진다.


아아아... 다시 '톰과 제리'를 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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