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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May 06. 2024

때늦은 후회

요즘은 예전에 비해 여행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어떻게 운이 좋아 다시 직장생활을 한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다른 건 속일 수 있어도 세월은 속이지 못한다고 이젠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 그리고 주말 하루는 근무해야 해서 어디로 움직이는 게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 보니까 여행 횟수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여행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쓴다. 하긴 이게 어디 나뿐이겠는가.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다들 여행을 즐긴다. 여행은 이제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서너 해 전만 해도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집에 가만히 궁둥이를 붙이고 있지 못했다. 쉬는 날만 있으면 이때다 하고 전국을 다녔다. 우리 땅이 비좁은 한반도이고 그마저도 반토막이 나 있지만, 갈 곳과 구경할 곳은 차고 넘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을 여행하다 보니까 울릉군을 뺀 전국의 군지역을 다 가보았다. 울릉도하고는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 제주도처럼 비행기를 타고 휭하니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으면 진즉에 몇 번이고 다녀왔을 것이다. 


울릉도는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의 하나 남은 잎새처럼 되었다. 가보지 못한 울릉도를 보고 나면 더는 여행의 흥미와 재미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은연중에 이 핑계 저 구실을 만들어 차일피일 미룬 게 아닌지 모르겠다. 80년대 초,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사고 싶었고 갖고 싶었던 게 자동차였다. 지금이야 집마다 자동차가 있지만. 그때만 해도 자동차는 나름 부의 상징이라 아무나 탈 수 없었다. 


그런데도 자동차를 가지고 싶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자동차만 있으면 가고 싶은 곳을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부터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역마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90년대 초, 무슨 생각과 배짱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운전 면허도 없는 상태에서 중고차를 덜컥 샀다. 그 때문에 직장 일로 바쁜 나 대신 아내가 먼저 운전 면허를 땄고, 뒤이어 운전 면허를 따고 나서부터 가족과 참 많은 곳을 여행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빠로서 두 딸에게 크게 잘해준 게 없다. 그나마 잘한 건 어려서부터 여행을 많이 데리고 다닌 것이다. 자화자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이들 성장에 나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에게는 독서와 여행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했던 여행 추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여행지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이야기했던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출가한 딸들도 그때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뿌듯해진다. 가끔 딸들과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가족 모두가 잠시 그때로 돌아가 즐겁게 웃는다. 자식과의 여행 추억은 그런 데로 많이 쌓여 있는데, 돌아가신 부모님과의 여행 추억은 초라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인제 와서 후회해 본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 아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죄송스러운 마음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한다. 


부모님과 함께했던 여행 추억을 더듬어 본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태어났기 때문에 너나 할 거 없이 어려운 시기였다. 아주 어렸을 때의 추억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부산 사는 사촌 형과 동생이 서울에 왔을 때, 온 가족이 뚝섬에서 물놀이하며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추억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때의 추억은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추억이지 나의 기억에서는 깨끗하게 지워졌다. 


그나마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하나다. 아마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벚꽃이 핀 봄날, 온 가족이 창경원에 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창경원하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원래는 창경궁이었지만, 일제가 창경궁의 격을 낮추기 위해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다. 그때는 일제가 만들어 놓은 그대로여서 다들 창경원이라고 했다. 그때 동물원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거대한 뱀을 보았는데 얼마나 무섭고 징그러웠는지 모른다. 그 충격적인 모습 때문에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뱀이라면 질색한다. 


그 뒤로 중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와 둘이 용문산에 등산 갔던 추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산에서 점심 먹으며 찍은 흑백사진이 아직 사진 보관함에 남아 있다. 군인 워커에 베레모를 쓰고 한껏 멋을 부린 앳된 모습이 너무 오래전이라 그게 나였나 싶은 생각이 든다. 사진 속의 아버지는 젊고 건강한 모습이다. 지금의 내 나이가 그때 아버지보다 훨씬 더 많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게 실감 난다. 되돌릴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잠깐만이라도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결혼하고 나서 부모님을 모시고 여주 목아박물관에 갔던 추억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부모님의 표정이 참으로 밝고 즐거우셨다. 그땐 박물관을 구경하니까 좋으신가 보다 했다. 자식을 다 키워 출가시켜 놓고 보니까, 이제야 그때 부모님 마음이 헤아려진다. 그때 부모님은 목아박물관보다 자식과 함께 여행하는 그 자체가 좋으셨을 것이다. 몇 해 전, 둘째가 결혼하고 나서 온 가족이 제주도에 갔다. 언제 가도 좋은 곳이 제주도이지만, 딸 사위와 함께 여행하는 게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정말이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 뒤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되신 어머니와 장모님을 모시고 강원도 여행을 다녀온 게 마지막이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부모님과의 여행 추억은 이게 전부다. 세월이 흘러 기억이 지워진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건 이게 전부다. 부모님이 살아내신 세월과 내가 살아온 세월의 길이를 생각하면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이 너무 적다. 왜 그랬을까? 뒤늦게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되돌 수 없는 지난 과거가 되었다. 


젊어서는 어리석게 혼자 착각하며 살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딴에는 그래도 부모한테 무심한 자식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나이를 먹어보니 이제야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고 후회스러운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부모한테는 잘한 게 없으면서도 자식하고는 자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지만 바쁘게 사는 자식들을 보면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의 내 마음이 그때 부모님 마음이었을 거다. 자식하고 어디라도 가고 싶었을 텐데 차마 내색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희망 고문 같은 바람만 가슴속에 묻고 계시다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직 부모님 계신 곳에 가보지 않아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두 손을 꼭 잡고 어디든 가고 싶다. 밀려드는 후회가 커서인지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고 눈앞이 뿌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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