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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May 12. 2024

무성서원 명륜당의 넓은 대청마루가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의 9개 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은 조선시대에 지방 지식인들이 건립한 사립 교육기관이다. 많을 때는 전국에 수백 개의 서원이 있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민족은 배움에 대한 열망과 욕구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지만 서원이 많아지면서 학맥과 당쟁은 물론 여러 폐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려 전국 47개소의 중요한 서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철폐되었다. 


서원은 지형과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려 지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경치는 물론 서원만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차분하게 여행하고 싶을 때, 서원을 찾으면 그에 어울리는 분위기와 느낌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정읍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무성서원(武城書院)이 있다. 


두 분 처형이 정읍에서 멀지 않은 고창에 살고 있어 정읍을 여러 번 갔지만, 무성서원이 있는 줄은 몰랐다. 얼마 전, 논산 돈암서원을 다녀오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9개 서원을 다 가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9개 서원을 메모해 놓고도 무성서원을 깜빡 잊고 있었다. 4월에 작은 처형댁에 갈 일이 생겼다. 고창을 가는 김에 어디 가볼 데가 있을까 싶어 여행 메모를 살피다가 무성서원을 발견했다. 몰랐을 때는 몰라서 그랬다고 쳐도 알고 난 이상에는 미루고 자시고 할 게 없다. 


올여름은 얼마나 더워지려고 하는지 이제 겨우 4월 하순인데 날씨는 벌써 여름을 방불케 한다. 반소매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덥고, 한낮의 햇살은 짙은 선글라스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그래도 가보지 못한 무성서원을 본다는 생각에 기분은 들떴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목적지에 왔는데, 주변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보았던 서원들은 그 고장의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져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무성서원은 평범한 시골 마을 한가운데에 있어 잘못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시골 민가 사이에 홍살문이 서 있고, 그 뒤에 무성서원이 있다. 무성서원은 민가 지역에 있는 것도 그렇지만, 건물 배치도 기존에 보았던 서원과는 같은 듯 다르게 보였다. 무성서원 역시 유생들의 유식을 위해 지은 현가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자와 누각을 좋아하다 보니까 현가루를 보는 순간, 무성서원을 처음 보았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이내 사라졌다. 현가루는 문루이다. 아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고, 위층은 사방이 탁 트인 누각으로 되어 있다. 


다른 서원에서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는 누각이 서원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건축물이다. 사방을 굽어볼 수 있는 누각은 다른 건물에 비해 규모가 컸고, 규모에 어울리는 멋스러움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서원의 누각은 여러 용도로 쓰였겠지만, 무엇보다도 여유 있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졌다. 오늘처럼 더운 날, 현가루에 올라 망중한을 즐긴다면 이보다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싶다. 


서원의 구조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제향을 올리는 제향 영역과 유생들이 공부하고 숙식하는 강학 영역 그리고 휴식과 교류를 위한 유식 영역으로 이루어진다. 유식 영역인 현가루를 지나면 강학 영역의 핵심 건물인 명륜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명륜당에서 무엇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널찍한 대청마루다. 유생들이 모여 다 같이 공부하는 공간이다 보니까 필요한 만큼 널찍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널찍한 대청마루를 보면 어린 시절의 추억 한 토막이 떠오른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 시골집은 규모가 컸다. 안채 건물은 무성서원의 명륜당만큼이나 널찍했다. 지금, 이 나이에도 명륜당의 대청마루가 넓게 보이는데, 꼬맹이였던 그때는 대청마루가 넓은 운동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려서 시골집에 가면 지금도 격의 없이 지내는 작은 고모가 장난치려고 대청마루를 닦으라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걸레를 받으면 그 넓은 마루를 언제 닦나 싶어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도 고모가 시키니까 하는 척을 하다가, 고모가 안 볼 때 잽싸게 밖으로 도망쳤다. 고모는 나의 그 모습이 웃기고 재밌었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청마루를 기느라 무릎이 아팠던 게 떠오른다. 명륜당 대청마루에서 기억 저편의 추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눈 부신 햇살이 명륜당 처마에 걸려 대청마루에는 시원한 그늘이 드리웠다. 앞뒤가 툭 터져 있는 대청마루는 시원했다. 그나저나 그때 그 시절에 대청마루에서 공부하던 유생들 모두가 열심히 공부했을까 궁금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이 열심히 공부했겠지만, 더러는 조는 유생도 있고, 옆에 있는 유생과 몰래 장난치는 유생도 있었을 거다. 그런 걸 생각하면 그때 그들과 함께 있는 듯한 상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무성서원은 지역 유림이 통일신라시대 학자이자 관료였던 고운 최치원을 기려 건립한 교육시설이다. 태산 태수로 부임해서 8년간 선정을 베푼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건립할 때는 태산 서원이었는데, 숙종이 “무성서원(武城書院)”이라는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명륜당 뒤로는 제향 공간인 태산사가 일직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당에는 최치원을 비롯해 신잠,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여행하면서 가끔 지방의 향교를 구경할 때가 있다. 향교에 가면 제향 공간인 대성전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었다. 성현을 기리는 성스러운 공간이라 닫아 놓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때론 아쉬울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문틈으로 겨우 대성전을 훔쳐보았다. 무성서원에서는 태산사가 열려 있었다. 늘 이렇게 개방하는 것인지, 마침 문화해설사가 해설하고 있어 특별히 열어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볼 수 없는 공간을 보게 되어 다행이었다. 


무성서원의 독특한 점은 자리하고 있는 위치 말고도 또 다른 하나가 있다. 서원 담장 밖에 유생들이 개인 학습을 하던 “강수재”가 있다. 다른 서원과 달리 강당과 구분한 독립 건물로 지어졌다. 무성서원은 보아왔던 서원들과 비교하면 규모가 적은 편이다. 경치 면에서도 조금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성서원만의 독특한 점이란 걸 알아야 한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이 다른 곳과는 다르게 보였다. 우리의 역사를 찾아보는 여행은 그 어떤 여행의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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