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그리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춘천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소양강 처녀”다. 멜로디도 그렇지만 노랫말도 왠지 모르게 구슬프고 애틋하다. 이 노래의 상징물인 “소양강 처녀상”의 모습도 노래 분위기에 맞추었는지 한 손은 치맛자락을 잡았고, 다른 한 손은 갈대를 잡은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소양강 강가에 홀로 서 있는 소양강 처녀상은 노랫말만큼이나 애틋하고 쓸쓸하게 보인다.
그 소양강 처녀상 옆에 소양강 스카이워크가 있다. 그 덕분에 사시사철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많은 사람이 오가다 보니까 외롭게 서 있던 소양강 처녀상의 모습에서도 쓸쓸함이 조금은 덜어진 것처럼 보인다. 기억이 맞는다면 소양강 처녀상과 스카이워크가 있는 곳은 70년대엔 선착장이었다. 가까운 섬에 사는 사람들이 그곳에서 배를 타고 춘천 시내를 오갔다.
친한 친구가 가까운 섬에 살아서 자주는 아니어도 그곳에서 여러 번 배를 탄 기억이 있다. 이렇듯 춘천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도시이고, 늘 그리운 곳이다. 춘천 곳곳에는 젊은 날의 추억과 발자취가 남아 있어 남다르게 여겨진다. 그때 그 시절, 선착장에서 있었던 추억 하나가 아직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가까운 섬에 사는 친구가 하루는 선뜻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타는 배에서 일하는 형이 있는데, 그 형은 엄지손가락으로 소주병을 딴다고 했다. 워낙 밝은 성격에 재밌는 친구라 나는 물론, 그 이야기를 함께 들은 다른 친구들도 다들 허풍떤다고 믿지 않았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으니까 사실인지 아닌지 소주 내기를 하자고 해서 우르르 선착장으로 몰려갔다.
당연히 미리 소주를 준비해서 배를 탔다. 배에 타자마자 그 형이 보였는데, 키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런데 어깨는 떡하니 벌어져 마치 천하장사를 보는 듯했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두 배는 커 보였고, 특히 엄지손가락은 기형적으로 컸다. 그 형의 우람한 모습을 보고 나니까 사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손가락으로 병뚜껑을 딸 수 있을까 싶었다.
우리는 소주병을 내밀면서 병뚜껑 따는 묘기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들의 요청과 부탁을 받은 그 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무심하게 엄지손가락으로 소주병을 땄다. 엄지손가락의 끝부분을 병뚜껑 밑에 대고 그대로 밀어 올려 땄다. 마치 병따개를 가지고 따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괴력의 소유자였다.
친구의 이야기가 사실로 밝혀져 친구는 우쭐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 친구네 집에서 소주 파티를 벌였으니 누구 하나 손해보지 않은 추억이었다. 그때의 재밌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40년이 지났다. 무심히 흘러간 세월 때문에 그 추억은 두꺼운 추억의 책 속에서도 저 뒷부분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밝고 재밌던 친구는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소양강 스카이워크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진즉에 들어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걸핏하면 춘천을 드나들었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좀처럼 춘천에 가질 못했다. 젊은 날을 함께 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친구가 일찍 세상을 떠나버리니까 딱히 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춘천에 사시는 블로그 이웃분을 통해 강원도립화목원을 알게 되었고, 그곳을 가보고 싶어 모처럼 만에 춘천에 갔다. 가는 길에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소양강 스카이워크를 둘러보기로 했다.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주변 경관을 바꾸어 놓을 만큼 멋스럽고 웅장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찾은 추억의 장소여서 그런지 눈은 소양강 스카이워크를 보면서도 머릿속은 옛 추억을 끄집어내기에 바빴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꽤 오래되었고, 그만큼 세월이 흘러서인지 옛 선착장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세월의 흐름과 변화를 예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그 시절, 이곳이 이렇게 변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또 스카이워크가 생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긴 그 시절에는 스카이워크라는 말이나 실체가 없었으니 오죽할까.
이렇게 변하는 세월의 흐름이 있어 옛 추억이 더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먼저 하늘에 가 있는 친구가 지금의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아마 그 친구도 추억을 떠올리며 이곳에 남아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스멀스멀 밀려오는 추억을 잠시 뒤로 밀쳐두고 소양강 스카이워크를 걷기 위해 매표소로 갔다. 성인 입장료가 2,000원인데, 춘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그만큼의 춘천사랑상품권을 준다. 그러니까 공짜나 다름없다. 요즘 지자체 관광지마다 이렇게 운영하는 곳이 꽤 있다. 누구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아이디어다. 소양강 스카이워크가 외지인들을 불러들이고, 방문객들은 그 상품권과 함께 여행비용을 쓰게 되면 지역경제에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소양강 스카이워크는 길이가 174m로 국내에서 최고로 긴 스카이워크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강화유리로 된 투명 구간이 156m여서 스카이워크를 걷는 즐거움이 색다르고 클 수밖에 없다. 규모가 워낙 큰 데다 튼튼하게 지은 게 눈으로 다 보여 그런지 발밑으로 흘러가는 소양강을 보아도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스릴보다는 발밑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는 그 자체가 신기하고 재밌었다.
스카이워크 끝 쪽에는 널찍한 원형광장이 있고, 옆으로는 날개처럼 뻗어나간 전망대가 있다. 원형광장 앞쪽에는 수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모습의 물고기 조각상이 있다. “쏘가리 상”이라고 불리는 그 조각상은 소리 없이 흘러가는 드넓은 소양강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방점을 찍은 것 같은 눈요깃거리이다.
깨끗한 물에서 사는 쏘가리는 예나 지금이나 귀한 어종이다. 요즘은 태반이 중국산이라고 하는데, 70년대는 춘천에서 쏘가리가 많이 잡혔다. 쏘가리 매운탕은 민물고기 매운탕 중에서도 최고로 친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부실한 코를 가졌는데도, 예나 지금이나 민물고기의 흙냄새 하나는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 때문에 민물고기 매운탕은 지금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는 주머니 사정이 시원찮아서 자주 먹지 못했을 뿐, 쏘가리 매운탕만큼은 정말 좋아했다. 쏘가리는 맑은 물에서 서식해 그런지 매운탕을 끓여도 흙냄새가 나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날, 친구들과 어울려 얼큰한 쏘가리 매운탕에 소주를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을 만큼 맛있었다. 쏘가리 조각상이 잠시 밀쳐두었던 추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소양강 스카이워크에서는 흘러가는 세월에 치여 사는 동안, 잠시 잊고 지냈던 추억을 오랜만에 끄집어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시원한 바람이 있어 정말 좋았다. 올해는 얼마나 더워지려고 하는지 이제 겨우 5월 중순인데 날씨는 벌써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
무더운 더위도 소양강 스카이워크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흐르는 듯 아니 흐르는 듯 흘러가는 소양강을 타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온몸에 달라붙은 더위를 한 방에 날려버렸다. 스카이워크 난간에 두 팔을 걸치고 그 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흘러가는 소양강을 바라보았다. 요즘은 불 멍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멍들이 있다. 강 멍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강 멍이다.
소양강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은 더위는 물론 머릿속에 가득했던 잡생각까지도 깨끗하게 날려버렸다. 에어컨 바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원한 강바람에 소중한 추억까지 날아가 버릴까 싶어 추억의 옷자락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세월은 강물처럼 쉼 없이 흐르고, 흘러가는 세월만큼 세상은 변한다. 언제 다시 소양강 스카이워크에 서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다시 그때가 오면 어떤 추억들이 떠오를까? 분명한 건 오늘도 추억이 되어 다시 떠오를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