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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Oct 21. 2024

부모님의 영혼이 쉬고 있는 곳.
용화사


집안의 선산은 김해시 장유동에 있다. 선산에는 아버지 대와 우리까지 들어갈 수 있는 가족 납골당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작은아버지들과 상의해서 만든 가족 납골당이다. 현재 가족 납골당에는 부모님이 모셔져 있고,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 두 분이 잠들어 계신다. 이렇게 가족 납골당이 있어 좋기는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아직 살아계시는 두 분의 작은아버지와 사촌들은 다들 부산에 살고 있어 가족 납골당을 찾기가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나와 형제들이 가족 납골당에 가려면 벼르고 별러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 이 나이가 되었어도 살다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할 때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부모님이 계신 가족 납골당이 가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했다.


꽤 오래전, 부산에 사시는 막내 삼촌집에서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때 막내 삼촌은 부모님이 그리울 때면 가족 납골당 위에 모셔져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가서 한바탕 실컷 운다고 하셨다. 그러고 나면 조금은 그리움이 풀리고 막혀있던 속도 시원해진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래도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라 그 이야기가 딱히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까 삼촌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젠 나도 그때와 달리 삶의 무게가 무거워졌다.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도 더러 있었다. 때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마음의 아픔과 답답함도 있었다. 그럴 땐, 막내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부모님 계신 곳에 가서 한바탕 넋두리와 함께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럴 때, 부모님이 계시는 가족 납골당이 너무 멀리 있어 안타까웠다. 



그럴 때는 부모님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인천 용화사를 찾았다. 언젠가 내 자식들이 이런 안타까움을 겪지 않을까 싶어 어머니가 생전에 미리 해놓으셨다. 아버지는 새로운 한 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을 불과 며칠 앞두고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2년이 지났을 즈음,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오랜만에 강화 보문사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적적하셔서 그런가보다 싶어 어머니를 모시고 보문사에 갔다. 


보문사를 나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는 느닷없이 인천에 있는 용화사를 가자고 하셨다. 불교를 믿으셨던 어머니는 시간이 될 때마다 전국의 여러 사찰을 다니셨다. 다녀오시면 어디 절에 갔다 왔다고 말씀하시니까 자주 가시는 곳은 대부분 알고 있었는데, 용화사는 그때 처음 들었다. 처음 들은 건 그렇다 쳐도 방금 보문사를 다녀왔는데 왜 또 용화사를 가시자고 하는지 궁금했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헛헛한 마음을 달래드리려고 나온 길이기에 이유를 묻지 않고 용화사로 차를 몰았다. 용화사는 도심 외곽에 있는 사찰이었다.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은 지은 지가 오래되지 않은 새 건물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선 대웅전은 그동안 사찰을 다니면서 보았던 여느 대웅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대웅전의 규모가 그동안 보았던 사찰들의 대웅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컸다. 더 놀라운 건 대웅전 법당 좌·우측 벽면은 돌아가신 분들의 위패를 모실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 만큼 어머니가 이곳에 왜 오자고 했는지 더욱더 궁금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곳에다 아버지 위패를 모셔 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 위패에는 살아계시는 어머니의 존함까지 함께 넣어 두셨다. 그리고 아주 어려서 한 두어 번 뵌 적이 있는 이모의 위패도 모셔놓았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으니까 그렇다 쳐도, 당신의 이름까지 미리 위패에 적어 놓은 걸 보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위패를 보는 순간, 언짢은 마음이 들었다. 건강하게 살아계시는 데 뭐 하려고 미리 위패를 준비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연세 드신 분들이 미리 수의를 마련해 놓으면 오래 사신다는 말이 떠올랐고, 편안해하면서 쓸쓸하게 보이는 어머니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함이 쓰여 있는 작은 위패를 보면서 참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도 7년이 지났다. 어머니가 미리 준비해 놓은 당신의 위패가 이제는 위패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위패라고 해봐야 자그마한 이름표이지만, 그것을 볼 때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고, 부모님을 만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또 부모님과 함께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따스해진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부모님 생각이 날 때면 혼자서 때론 아내와 함께 용화사를 찾았다. 살아오면서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을 때, 이곳에 와서 부모님께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이젠 명절이 돼도 예전처럼 형제들이 모이지 못한다. 형제들 모두가 일가를 이루면서 사위와 며느리가 있다 보니까 몇 해 전부터 가족끼리 명절을 보내기로 했다. 명절 제사는 큰형이 지내지만, 상주인 형이 병원에 입원 중이라 이번 추석 제사는 지낼 형편이 되지 못했다. 


추석 다음 날, 부모님을 뵙고자 용화사에 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용화사를 다녀온 지가 제법 오래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용화사는 전에 보지 못한 건물이 들어섰고, 사찰 안에 있는 조경수들은 이제는 제대로 자리를 잡아 사찰의 운치와 멋을 보태고 있었다.



때가 때여서인지 용화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수를 준비해서 가족 단위로 찾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용화사를 여러 번 왔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다들 명절을 맞아 부모님을 기리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위패가 모셔진 법당에도 사람들이 많았지만, 워낙 크고 넓어서 크게 복잡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위패가 모셔진 곳으로 갔다. 부모님의 위패는 9단 12행에 있다. 워낙 많은 위패가 모셔져 있어 하나의 독립공간으로 이루어진 단을 먼저 찾은 다음에 그 단에서 위에서부터 아래도 내려오면서 행 번호를 찾아야 한다. 이렇다 보니까 법당 안에는 위패 위치를 찾는 컴퓨터까지 마련되어 있다.

 

부모님 위패가 모셔진 곳에서 마음을 다해 큰절을 올렸다. 부모님 위패가 모셔진 단에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은 위패가 모셔져 있다. 나의 큰절은 마음으로는 부모님에게로 향하고, 외형적으로는 그곳에 모셔진 위패의 모든 영가에 올리는 절이 되었다. 아무렴 어떤가? 이것도 인연인데 명절을 맞아 모든 영가에 절을 올리는 것도 나쁠 건 없다. 


큰절을 올리고 나서 언제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그곳에서 두 분이 잘 계셨는지 안부부터 여쭈었다. 하늘에서 나와 형제들이 사는 모습을 잘 보고 계시는지도 여쭈어보았다. 세상에 태어난 지 이제 500일이 된 당신의 증손자도 보고 계신 지 궁금했다. 그렇게 하나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돌아가셨어도 부모는 부모일 수밖에 없고, 자식은 영원히 자식이다. 눈을 감고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은 부모님께 기대고 바라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나와 형제들은 물론 손자, 증손자들이 다들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고 도와달라고 당부드렸다. 살아계실 때 뭐 하나 제대로 해드리지도 못해놓고, 저 높은 곳에서 편히 쉬시지도 못하게 부탁드리고 또 매달렸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보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채워진다. 


위패라고 해봐야 가로세로 몇 Cm 되지 않는 작은 것이다. 언젠가 나도 위패에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내 자식들도 지금의 나처럼 위패를 보면서 마음의 평온과 위로를 받지 않을까 싶다. 그걸 생각하면 어머니가 해놓으신 것처럼 아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부모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놓고 싶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긴 이야기를 끝내고 대웅전을 나왔다. 


날씨는 여전히 푹푹 쪘다. 추석인데도 날씨는 한여름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지만, 그래도 마음은 평온하고 발걸음은 가볍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용화선원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날씨는 한여름에 갇혀 있지만, 하늘만큼은 영락없는 가을하늘이다. 하얀 구름이 펼쳐진 높고 푸른 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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