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접하는 문화유산들이 있다. 그 많은 문화유산 중의 하나가 신라 천 년의 고도인 경주의 문화유산들이다. 경주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불국사, 석굴암, 석가탑, 다보탑 등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학창 시절에는 그것들을 외우려고 교과서에 빨간 줄을 죽죽 그어댔다. 경주는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수학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필수 코스가 경주였다.
10월도 막바지에 접어든 날, 기상악화로 울릉도 여행이 무산되면서 꿩 대신 닭이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경주에 갔다. 부산에 사는 친구 부부와 함께 경주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가장 먼저 석굴암에 갔다. 전날 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부부와 술 한잔을 하면서 어디를 구경할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불쑥 친구 부인이 석굴암에 가자는 의견을 냈다. 솔직히 처음에는 마뜩잖았다.
이미 가봤던 곳이라 흥미가 당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일종의 여행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될 수 있으면 가보지 않은 곳을 가려고 한다. 그렇다 보니까 한번 가본 곳은 여행지를 정할 때 늘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과 여행할 때는 원만하고 즐거운 여행을 위해 누구의 의견이라도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날 가장 먼저 석굴암에 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일찍이 조식을 먹고 서둘러 석굴암으로 향했다. 석굴암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많이 찾을 게 뻔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일찍 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둘렀는데도 주차장에는 벌써 꽤 많은 차가 세워져 있었다. 날씨는 이게 바로 우리나라의 가을날이란 걸 보여주듯이 눈부시게 맑고 푸르렀다.
그런데 “토함산 석굴암”의 현판이 붙어 있는 일주문에 들어서면서부터 머릿속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석굴암은 분명 와 본 곳인데,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석굴암 가는 길이 왜 그렇게 낯설게 보이던지… ‘원래 석굴암 가는 길이 이랬나?’ 나중에는 얼마나 헷갈렸는지 ‘정말 석굴암에 와 보긴 와본 건가?’ 하는 생각이 다 들었다.
불국사나 석굴암은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고, 사진으로 많이 보아서 와 보지 않았는데도 와 본 곳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굴암 경내에 들어설 때까지 그 쓸데없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석굴암에는 서둘러 찾아온 사람들이 가을의 초입에서 들어선 경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산사의 고즈넉함을 깨뜨릴 만큼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지답게 외국인들도 꽤 보였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인 여자분들이 이제 막 어설프게 물든 단풍잎을 보면서 무척 좋아했다. 우리나라의 멋진 가을을 보여주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우쭐했다. 한편으로는 저분들이 1~2주만 뒤에 왔어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한 가을 단풍을 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 때 김대성이 창건한 사찰 암자다. 사찰 암자이다 보니까 인공석굴을 빼고는 딱히 눈길을 끌만 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다. 석굴암 마당에는 오색 연등이 가득 메우고 있어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나무들과 어우러졌다. 오색 연등은 아직 물들지 않은 가을 단풍 정취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
경내를 둘러보고 나서 석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석굴암 마당에서 보면 제법 높은 곳에 석굴을 볼 수 있는 목조 건물이 있다. 목조 건물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문으로 들어가 석굴을 본 다음에 반대편 문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사람이 많으면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했을 테지만, 일찍 찾은 덕분에 그나마 여유 있게 석굴을 볼 수 있었다.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석굴과 본존불은 우리가 자긍심을 가져도 될 만큼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이토록 멋진 문화유산이 그 오랜 세월을 오롯이 견디어 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국보로 지정된 석굴암의 석굴이 만들어진 배경은 한 번쯤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석굴사원은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굴을 파기가 쉬웠지만, 우리나라는 단단한 화강암이 많아 굴을 파는 게 쉽지 않아 돌을 쌓아 석굴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공석굴이 탄생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 시대의 불교에 대한 믿음이나 신념이 얼마나 굳고 단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석굴의 본존불은 학창 시절 책에서부터 보았기 때문에 무척 친근하고 눈에 익었다. 그래도 사진으로 볼 때와 이렇게 직접 두 눈으로 볼 때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석굴과 본존불을 보고 있으면 예술성에 대해 알고 모르고를 떠나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본존불을 보니까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들은 이야기로는 본존불 이마에 커다란 백호 보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일제가 훔쳐 갔다는 이야기였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당시 본존불 사진에는 백호 보석이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있어 사람들이 석굴암에 더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에 백호 보석은 다이아몬드였다. 이참에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본존불의 백호 보석은 수정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침 햇살이 석굴로 들어오면 백호 보석에 반사되어 석굴 내부를 환하게 비추었다고 한다. 그 광경은 상상만 해도 장관이다. 이제는 그런 장관을 볼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는 과학 기술이 발전했고, 다양한 건축자재들도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석굴암을 예전 모습으로 복원할 수는 없을까? 예전 모습대로 복원된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장관이자 자랑거리가 되지 않을까? 석굴은 본존불은 물론이고 둥근 천정에서부터 사방에 있는 사천왕과 여러 불상이 좌우대칭으로 새겨져 있어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음은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었지만, 뒤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어야 했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손에 든 핸드폰을 나도 모르게 만지작거렸다. 당연히 그냥 나왔지만, 내 손으로 석굴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 같았다. 우리 눈에도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데, 처음 보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경이롭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은근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문밖으로 나와 밝은 가을 햇살을 손으로 가리고 있으면 잠시 시간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기분이 몽롱했다. 그런데 갑자기 받은 강렬한 햇살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보아서 그런지 석굴에서 보았던 그 장관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머릿속에 깊이 새겨지는 건 물론 여운이 길게 남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이래서 올 때처럼 와본 석굴암인데도 처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 장삼을 두른 스님 한 분이 마당 한 편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곧 예불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잠시 상념에 빠지신 걸까? 스님의 뒷모습은 말없이 몸으로 무언가를 말해주는 듯했다. 석굴암을 돌아 나오는 길에는 학생부터 어른과 외국인단체까지 정말 많은 사람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