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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Mar 15. 2023

은수 이야기(4)

J가 들려주는 동화

 나는 혼자 있을 때 어린이집에서 받은 활동사진 파일을 펼쳐보곤 한다.

 가장 많이 보는 새싹반 파일엔 엄마와 함께 블록을 쌓는 다섯 살의 내 모습이 있다. 아빠가 나를 업고 운동장을 달리는 사진도 있다. 즐거워 보이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들어 있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여섯 살 풀잎반 파일에는 엄마가 보낸 커다란 딸기 케이크 앞에서 생일 고깔모자를 쓰고 활짝 웃는 내가 있다. 나만 한복을 입지 않고 송편을 만드는 사진을 볼 땐 괜히 부끄럽다.

 일곱 살 열매반 사진은 속상해서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사진도 별로 없다. 운동회도 부모님 참관수업도 토요일에 있었지만 나는 가지 못했다. 엄마 아빠가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딸기밭 체험도 못 갔고, 가을 소풍은 일부러 가지 않았다. 엄마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데 또 도시락 없이 가서 선생님의 도시락을 같이 먹고 싶지 않았다.


 텔레비전 위에 걸린 돌잔치 사진은 매일 본다. 한복을 입고 있는 사진 속 엄마는 참 예쁘다. 아빠도 멋지다. 나를 안고 있는 엄마, 엄마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아빠, 통통한 얼굴로 웃고 있는 나까지 참 행복해 보인다. 내가 아주 어릴 땐 저렇게 행복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아빠랑 맨날 같이 살면 좋겠다. 엄마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집에 들어오면 항상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셋이 다 같이 밥 먹고, 다 같이 잠들고, 다 같이 일어나면 좋겠다.      


 아빠가 진짜 학예회에 왔다. 내 차례가 되어 나갔는데 아빠가 제일 뒤에 있었다. 어른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 빠는 키가 커서 나는 금방 알아보았다. 아빠가 나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에게 멋지게 보여주려고 열심히 했다. 아빠가 웃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뻤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태권도장도 가지 않고 집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다시 일하러 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는 내 겨울옷을 산 후에 감자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빠와 오랜만에 외출하는 거라 나는 너무 신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패딩과 겨울옷들을 잔뜩 사고 식당에 갔다.


 “아빠 와서 너무 좋아. 나 오늘 잘했지?”

 “응, 우리 은수가 제일 잘하더라. 멋있었어.”

 “헤헤. 엄마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도 내가 품새 하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그러게.”

 “아빠 근데 이건 왜 이름이 감자탕이야? 감자도 없는데.”

 “글쎄. 조금이긴 해도 감자가 있긴 있어.”

 “아빠, 맛있어. 아빠랑 먹으니까 더 맛있어.”

 “아빠도 은수랑 먹으니 더 맛있네.”

 “저기… 은수야, 아빠가 생각해 봤는데…. 은수는 할아버지 할머니랑 사는 게 좋을 것 같아.

  엄마 아빠가 은수랑 잘 있어 주지도 못하고 잘 챙겨 주지도 못하잖아.”

 “그럼 우리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랑 사는 거야?”

 “아니, 은수만 할아버지 할머니랑 사는 거야.”


 갑자기 기침이 나왔다. 감자를 삼키다가 목구멍에 걸린 것 같았다.

 “나만?”

 “아빠는 많이 바빠서 집에 오기도 더 힘들어지고, 엄마는 아픈 거 치료도 받아야 하고…”

 “나 그냥 우리 집에서 살면 안 돼? 엄마 아빠랑 지금처럼 지내면 되는데.”

 “계속 이렇게 지내면 우리 은수 너무 힘들 것 같아서. 할아버지께 벌써 말씀드렸어. 겨울방학 하면 할아버지

  집에 가자.”

 “싫어. 난 그냥 우리 집에서 살 거야.”

 “은수야, 아빠 말대로 하자.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나를 위한 것이라고?

 “엄마 더 많이 아프게 된 거야? 나 우리 집에 있으면 안 돼? 학교랑 태권도장은 어떡해?”

 “학교는 할아버지 집 근처로 전학 가야지. 태권도장도 아빠가 새로 알아볼게.”

 “할아버지 집 가기 싫어. 나는 우리 집이 좋아. 다른 학교 가기 싫어. 태권도장도 여기가 좋단 말이야.”


 엄마가 아프고 아빠가 바빠도 나 혼자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어른들끼리 결정해 버렸는지 화가 났다.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사는 것도, 새로운 학교에 가는 것도 걱정이다. 아빠는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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