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이 끝났다. 친구들에게 전학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겨울방학이 끝나고 계속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태권도장에서 사범님이 내가 다음 주부터 못 나온다고 말해버렸다. 내가 이사 가서 전학도 가야 하고 태권도장도 못 나올 거라고 말하는 사범님이 너무 미웠다. 아이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내가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다시는 이 태권도장에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방학식 다음 날 아침에 아빠가 왔다. 엄마는 웬일로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렸다. 엄마가 내 옷이며 학용품을 다 꺼냈다. 아빠는 내 물건을 파란색의 커다란 상자 두 개에 모두 넣었다. 어렸을 때 보던 그림책들과 장난감은 넣지 않았다.
“가기 싫어. 싫단 말이야. 왜 나만 가라는 거야? 여기가 우리 집인데. 엄마 아빠는 여기 있을 거잖아. 다른 애들처럼 나도 엄마 아빠랑 살 거야. 안 가!”
나는 소리치면서 울었다. 내가 얼마나 슬프고 화가 나는지 엄마 아빠는 모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집에서 사는 게 왜 나를 위한 건지 정말 모르겠다. 처음으로 거실 바닥에 앉아서 발버둥 치며 울었다.
“안 가! 안 가! 안 갈 거야!”
엄마가 울었다. 아빠가 나를 껴안고 달랬다. 눈물이 더 많이 났다. 목이 쉬도록 소리 지르며 울었다. 너무 울어서 그런지 눈이 잘 떠지지도 않고 코가 막혀서 엄마가 해준 밥도 먹지 못했다.
“은수야, 미안해. 엄마가 진짜 미안해. 그래도 은수 사랑해. 할아버지 할머니랑 잘 지내.”
엄마는 내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준 뒤에 안아주었다. 나는 자꾸 눈물이 나서 엄마한테 아무 말도 못 하고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겨울방학이 끝나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리고 학교 앞에 있는 태권도장도 다니게 되었다.
할머니는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같이 가고 태권도장 차에서 내리는 곳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열 살이나 되었는데 할머니는 나를 계속 일곱 살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집은 큰길에서 시장으로 가는 골목에 있다. 빌라 2층이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된다. 거기다가 시장이 바로 앞이라 구경할 게 많아서 정말 좋다. 그중에서도 생선가게를 구경하는 게 제일 재밌다. 할머니 친구가 하는 칼국수 집이랑 두부 가게에 들러서 인사도 한다. 나를 보면 늘 반갑게 맞아주고 가끔 간식을 주기도 한다.
할머니는 시장 보러 갈 때마다 꼭 나를 데리고 간다. 할머니 따라 시장에 처음 갔을 때 가는 곳마다 나를 소개해서 인사하느라 좀 부끄러웠다. 할머니는 나랑 다니는 게 좋은 것 같다. 내 손을 항상 잡고 다닌다. 그리고 시장에 갈 때는 꼭 물어본다.
“우리 애기 오늘은 뭐 먹고 싶어? 오늘은 뭐 해 먹을까?”
할머니는 툭하면 나를 ‘우리 애기’라고 부른다.
“나 애기 아니야 할머니. 열 살이라고요 창피하게… 은수라고 불러요.”
이제는 할머니랑 많이 친해져서 할머니한테 이렇게 말한다. 먹고 싶은 것도 뭐든지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 할머니는 내가 말하면 거의 다 만들어준다. 할머니는 못 하는 음식이 없는 것 같다. 전부 맛있기까지 하다.
할아버지 집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할머니와 시장에 갔는데 치킨 냄새가 너무 맛있게 났다.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겨우 말했다.
“할머니, 나 이거 먹고 싶어요.”
“아이구 그래? 아줌마, 닭강정 안 매운맛으로 작은 거 하나 포장해줘요. 뼈 없는 거 맞죠? 우리 애기가 먹고싶다네.”
양념치킨은 먹어봤는데 닭강정은 그때 처음 먹어봤다. 더 바삭하고 달콤한 게 양념치킨보다 훨씬 맛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안 좋아한다고 해서 나 혼자 다 먹었다. 쫄깃한 떡도 맛있었다. 그 뒤로 할머니는 내가 기분이 안 좋거나 아프면 닭강정을 사준다. 달달한 식혜랑 같이 먹으면 신기하게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