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새벽에 일을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시간에 맞춰 항상 저녁상을 차린다. 별로 말이 없는 할아버지도 저녁밥과 함께 술을 마시는 날은 좀 달라진다.
“은수야, 학교는 재미있냐? 선생님은 좋아?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할아버지 할머니랑 살아서 좋아, 안 좋아?”
“할머니 음식 참 잘하지?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어.”
“은수야, 엄마 아빠 안 보고 싶어?”
“은수는 커서 뭐 될 거야?”
할아버지는 나한테 궁금한 게 많은 것 같다. 나는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하다가 대답을 아예 못 할 때도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어떤 날은 아빠가 불쌍하다며 걱정을 막 하다가 어떤 날은 아빠 욕을 막 한다. 할아버지는 아빠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나는 분명히 좋아하는 것 같다. 나한테는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화난 목소리로 말한 적이 없다. 집에 오면 항상 나부터 찾는다. 그리고 새벽에 일하러 가기 전에 꼭 내 방에 와서 내 얼굴을 만져보고 나가는 걸 나는 안다.
아빠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를 보러 온다. 할아버지 집에 오고 나서 아빠 얼굴을 본 건 네 번뿐이다. 가끔 전화가 오면 아빠가 하는 말은 똑같다.
“할머니가 잘해주시니? 은수가 할아버지 할머니랑 있으니까 아빠가 걱정이 하나도 안되네.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들어.”
엄마는 설날에 전화 온 거 말고는 전화도 안 하고 나를 보러 오지도 않는다. 내가 없으니까 너무 편한가 보다. 내가 보고 싶지도 않은가 보다. 내가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나도,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어서 괜찮다.
오늘은 현장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다. 할머니가 김밥 싸다가 늦게 깨워서 나는 아침도 조금 먹고 학교에 뛰어갔다. 저번 체험학습 때는 편의점에서 김밥이랑 초코우유를 사 갔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김밥을 싸줘서 진짜 좋다. 친구들과 점심 먹을 때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식물심기 체험도 하고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실컷 뛰어놀고 나니 배가 너무 고팠다.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꺼냈다. 그런데 할머니가 도시락을 세 개나 넣어놓았다. 왜 세 개일까 생각하며 열어보았다. 첫 번째 통엔 김밥, 두 번째 통엔 유부초밥, 세 번째 통엔 오렌지와 참외가 꽃처럼 예쁘게 들어 있었다. 짝꿍 하솜이는 문어 모양 소시지랑 팬더 모양 주먹밥에 곰돌이 쿠키까지 든 도시락이었지만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할머니 도시락이 최고다. 고기가 콕콕 씹히는 유부초밥도 맛있고 어묵이 많이 들어간 김밥도 너무 맛있다. 할머니가 먹기 좋게 잘라준 오렌지와 참외도 달콤했다. 체험학습을 마치고 친구들이 놀자고 하는데도 바로 집에 갔다.
“할머니, 나 왔어요.”
“아이고 우리 애기 왔어. 오늘 재밌었어?”
“할머니 이거 할머니 선물이에요. 오늘 내가 심은 건데 이름이 무슨 야자랬는데 공기를 좋아지게 한대요.
할머니, 오늘 김밥이랑 유부초밥 진짜 진짜 맛있었어요. 할머니가 해준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어요. 오렌지랑 참외도 맛있었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참외는 몇 개 남겼어요.”
“맛있게 먹었다니 할머니가 너무 기분이 좋네.”
“사실은 엄마가 아파서 도시락을 맨날 못 가져갔거든요. 도시락 감사합니다.”
“그랬어? 우리 애기 그동안 속상했겠네.”
“할머니… 사랑해요.”
“아이고 내 새끼. 할머니도 우리 은수 사랑해.”
쑥스러웠지만 할머니를 꼭 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도 나를 꼭 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했
다. 할머니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할머니가 참 좋다. 할머니가 엄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