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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Jan 23. 2024

살고 싶은 집이 있는데요

 

 

  <마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김서형 배우가 연기한 큰 며느리가 사는 저택의 이름은 카덴차, 이보영 배우가 연기한 둘째 며느리가 사는 저택의 이름은 루바토였다. 둘 다 음악 용어인데 저택의 이름으로 선택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카덴차는 악장이 끝나기 직전 즉흥적이고 기교적인 독주 부분을 의미한다. 루바토는 ‘도둑맞다’ ‘잃어버리다’란 뜻의 이탈리아어로 연주자가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템포를 바꾸는 것을 뜻한다. 쇼팽의 녹턴이나 왈츠를 들으며 밀고 당기는 묘미에 감탄하곤 하는데 그 연주기법이 루바토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저택의 이름을 떠올리며 역시 작가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갖다 붙이지 않는구나 했다. 배우들의 캐릭터와 사건의 전개가 저택의 이름과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내가 나중에 혹시나 집을 짓게 된다면, 주택에 살게 된다면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이란 그림책을 선물 받았다. 열일곱 나라의 소리도 뜻도 예쁜 말들이 가득한 그림책이었다. 가만히 읽어만 보아도 마음이 잔잔해지는 그림책 속에서 한 단어에 오래 머물렀다.

 ‘카푸네(cafune)’ 포르투갈어로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빗어내린다는 뜻이란다. 카푸네. 편안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단어다. 언젠가 내가 살게 될 주택에 이런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단독주택에서 자라서 아파트에 살고 싶었는데 아파트에 20년 넘게 사니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살고 싶어졌다. 나의 은밀한 마당이 있는 집, 마당이라기보다 중정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 있는 ㅁ자 한옥 같은 느낌의 단독주택. 

 가끔 남편이나 지인들에게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하면 다들 그냥 아파트에 살라고 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일단 추워서 안 된대고 지인들은 관리가 어렵단다. 추위는 난방을 보완하면 되고 마당은 이미 화분이 많이 있으니 싹 시멘트를 발라버리겠다 했더니 그럼 마당 있는 집이 왜 필요하냐고 한다. 

 나는 언제든 바람 냄새를 맡으며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은 거고, 땅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고 싶은 거고, 잠이 안 오는 날이면 담요를 두르고 나가 앉아 밤하늘을 보고 싶은 거고, 소복이 쌓인 눈에 제일 먼저 발자국을 내고 싶은 거다.

 

 타인의 시선과 소리로부터 자유로운 곳, 한편으로는 내가 누리고자 하는 삶이 타인에게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지만, 도시에서 그런 집 찾기가 그리 쉬울까.      

 카페로 변신한 아담한 마당이 있는 집을 보고 오면 며칠은 마음이 팔랑댄다. 뻔한 아파트 구조가 지겨워지고 마당에 대한 향수는 날마다 자라난다. 부지런하지도 못한 내가 집을 잘 돌보며 살 수 있을지 나 스스로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살아보고 싶다. 숨겨진 작은 마당 한쪽에 접이식 차양을 달고 그 아래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2인용 그네도 두고 싶다. 대나무를 지나는 바람 소리도 듣고 싶지만 마당에 심기엔 적절치 않다고 하니 그건 포기한다. 네모난 하늘이 보이고 사계절의 냄새를 바로바로 맡을 수 있는 마당,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이런 집에 카푸네란 이름을 붙이는 게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데다가 마누라가 부려먹을 것 같은 직감까지 보태져 단독주택은 결사반대하는 남편을 제쳐두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만 충만한 집인 것 같아서 말이다. 살기 좋은 집은 아니더라도 정말 살고 싶은 집이 있다고 남편을 구워삶을 장기계획을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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