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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양 Mar 12. 2021

체중의 의미

내가 감당하고 조절할 무게

유년기 시절에는 먹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아 했었다. 그래서 저체중에 속했다. 그러다가 집안 형편이 안 좋아지면서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삼 남매가 경쟁을 했다. 초등학교를 힘겹게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살이 급격히 쪘다.


살이 찌면 안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제일은 '나를 향하는 관심과 말들'이다. 나는 변화하지 않았는데 오직 나의 체중을 문제 삼는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에 나는 상처 받았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다. 그 사람들 때문에 내 모습을 바꾸지 않을 거라고. 다이어트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돈을 벌고자 했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은 것 같아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추가했다. 여름에는 한 달에 200시간이 넘도록 근무했다. 덕분에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렇게 3개월 후 내 몸은 망가졌다. 급격한 체중 감량. 잠자고 일어나면 알바 갔다가 다시 잠깐 자고 알바 가는 일상 속에서 내 몸이 변화하는지도 몰랐더라. 3개월 만에 10kg 정도가 빠졌다. 머리가 많이 빠지고 안색이 안 좋아졌다. 갈비뼈가 완전히 드러났다.(내가 갈비뼈가 잘 보이는 몸이기도 하다.)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어떤 날은 일어날 때부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은 해야 했기에 집을 나섰다. 출근해서 본 팀원들이 나를 보고 놀라더라.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나빴나 보다.


주변에서 말리더라. 일을 줄이라고. 나 역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한 달에 150시간에서 180시간으로 줄여서 일을 했다. 한번 나빠진 몸을 되돌리기에는 이것도 힘들었나 보다. 그다음에는 150시간 정도로 줄이고 운동을 시작했다. 근육을 키워놓으면 체중 변화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점차 체중을 회복해갔다. 하지만 잠을 잃었다. 수면 장애로 인함이다. 잠을 못 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 수면을 위해 일하는 곳도 옮기고, 일하는 시간도 바꿨다. 지금은 낮에 주로 일하고 일하는 시간 역시 100시간 정도다. 가끔 대타로 일이 연속 5일을 넘어갈 때면 의식이 흐릿해진다. 내 의지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방향으로 일을 하더라. 그러면서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압박 속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부를 한다.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몸은 또 나빠진다.



그러던 중 하나 깨달은 점이 있다. 나는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먹는다. 초등학교 때 왕따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울하고 공허한 시간들을 먹는 시간으로 채웠다. 먹는 '시간'이 좋았다. 그 시간 동안은 무언갈 하지 않아도 되고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은 음식들을 먹었다. 그리고 체중이 늘었다. 체중이 늘면서 주변 어른들의 관심과 애정이 담겼다는 그 말들을 감당해야 했다.


신체적으로 힘들 때는 잔다. 신체적으로 힘들다는 것은 계속 일만 했을 거다. 그럴 땐 몸이 먼저 지친다. 정신이 지칠 틈이 없다. 아마, 몸이 너무 지쳐서 정신이 지쳤다고 인식할 감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먹는 시간마저 피곤하고 힘들다. 사치스럽다. 그래서 그냥 잔다. 최대한 몸의 휴식을 우선으로 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다가 일어나서 또다시 일 하고, 다시 자고 이 패턴을 반복하다 보면 체중이 급격히 감소한다. 그리고 의식이 흐릿해진다.


잠과 식사를 동시에 놓치면 감기에 걸린다.


면역력이 감소했음을 바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걸 수도 있다. 내 몸을 잘 챙겨야 한다. 이건 단순히 보여지는 체중을 넘어선다.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계속 먹으면 위와 장이 안 좋은 나에게는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신체적으로 힘들 때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역시나 잠을 잃는다. 잠은 생각보다 예민하더라. 자고 싶다고 잘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더라.


내가 이렇게 고통받는 밤과 낮이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 가장 먼저 눈치챘다. 처음에는 살이 쪘다고 은근히 체중관리에 압박을 주던 아버지도 어느 순간부터 내 체중 감소를 걱정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원래 새벽 1시나 2시는 되어야 잠을 자는데, 유독 일이 힘들어 피곤한 날에는 일찍 씻고 9시, 10시 정도에 이불을 덮는다. 그런 날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냉장고를 채워주신다. 피곤하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 나를 위해 고기 위주로 말이다. 그것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낮에 전화를 하신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너무 피곤한 날은 그마저도 먹지 않지만, 가끔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그걸 말씀드리면, 바로 사 오신다. 뭐라도 사 와서 입에 넣어주려고 하시더라. 비단, 아버지의 변화만이 아니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시다. 할머니도 아버지와 같이 체중 감량을 강조하시던 분이시다. 나를 볼 때마다 체중 감량해야 한다고 압박을 주시던 할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일을 줄이라고 강조하시더라. 그리고 음식을 엄청 해주신다. 친척 어른들도 비슷하다.


이젠 주변에서 체중 관리는 입에도 올리지 않더라.
다들 누군가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되는 말임을 깨달았나 보다.


우울한 시간이 먹는 것만으로 지나가지 않음을 깨달았다.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버틴다고 지나가지 않음을 깨달았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 성적의 압박 때문에 힘들다면, 공부를 하자. 일이 너무 힘들어서 몸이 지친다면 일을 줄이자.


어떤 순간에도 잘 먹을 수 있도록 식단 관리를 하고, 식사를 챙기자. 꾸준히 잠을 이룰 수 있도록 일정한 수면 패턴을 만들어보자. 급작스러운 변화를 막기 위한 근육을 키워보자. 오늘 못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 해낸 일을 칭찬해보자. '괜찮아, 오늘 공부 못했어도 괜찮아. 일이 힘들어서 피곤했잖아. 내일 하자.'  


이 와중에 된장찌개가 먹고 싶네요.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라도 내가 잘 살아야겠다.
걱정 끼치지 않도록 체중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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