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연수를 받으려면 1개월이나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간 운전을 배우고픈 마음이 사그라들 것 같았다. 이미 파사사삭 식은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불씨가 남아있을 때 조금이라도 배우고 싶었다. 남편에게 말해서 시동 거는 연습부터 차근차근해보고 싶다고 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고 기어를 파킹에 둔 상태에서 시동을 켜도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내가 시동을 거는 그 순간 차가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여기저기에 부딪치고 폭동을 일으킬 것 같다는 공포가 내 안에 있다.
어릴 때 어느 일요일, 엄마가 좀 쉬고 싶었는지 조기축구회 모임에 가는 아버지에게 나와 여동생을 돌보라고 맡겼다. 운동장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우리에게 내리라고 했지만, 거기는 아저씨들뿐이었고, 익숙지 않은 환경이라 차라리 차 안에서 계속 있고 싶었다. 아버지는 그럼 차 안에 있으라고 했고 축구를 하러 달려갔다. 둘이서 차 안에서 놀다가 심심해서 음악이 듣고 싶었던가, 더워서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했던가 여동생이 졸랐다. 나는 아버지가 차에 열쇠를 꽂아두고 갔기에 열쇠를 돌렸다. 열쇠를 돌리면 여동생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으니까. 적당히 돌리면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알았다. 그런데 과하게 돌렸는지 차가 움직였다. 당황하는 사이에 축구하던 아버지가 달려와서 시동을 껐다. 아버지도 별말하지 않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잘 넘어간 일이었지만 내가 여동생을 다치게 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실제로 여동생을 크게 다치게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무서웠던 것 같다)
사이드 브레이크와 기어를 운전 가능한 상태로 바꾸지 않는다면 시동을 거는 것만으로는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오늘 아침, 도전해 보기로 했다.
주차장에 가서 남편이 조수석에 앉았다. 나는 운전석에 앉았는데 남편의 다리길이에 맞춘 의자라 브레이크와 엑셀을 밟기에 다리가 불편했다. 그래도 우선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켜봤다. 우리 차는 버튼형이 아니고 열쇠로 돌리는 형식이라 찬찬히 돌렸다. 한 칸을 돌리니 제어판에 몇 개의 불이 들어왔고, 두 칸을 돌리니 꽤 많은 불이 들어왔다. 한 번 더 돌리니 우웅하면서 차가 떨렸다. 브레이크가 내가 밟고 있는 것보다 더 깊숙이 들어갔다.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브레이크를 밟고 있으니까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겁을 줄였다.
남편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차가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차는 가만히 있었다! 남편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려보라고 했다. 대부분에게 아주 쉬운 조작이겠지만 나는 그것마저 처음에 낑낑댔다. 버튼을 누르고 내리는데, 안 내려갔다. 몇 번 낑낑댄 후 내려갔고, 다시 올리고, 다시 내리고, 다시 올려봤다.
아주 훌륭한 첫 시도였다!
오늘은 여기까지의 도전이 적당하다며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내일은 복습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남편은 가볍게 웃으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