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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희 Feb 05. 2023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아직은 제자리

2.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다

오늘 아침도 출근하는 남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 나왔다. 남편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부동산이나 사업 아이템을 찾아서 투자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아직 돈이 모이진 않았지만"이라고 덧붙이면서. 하얀 롱패딩을 입은 백수 아내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당신의 목표에 동감하며 언제든 지지하고 있다는 표시를 보였다. 


나는 그 사이에 대학원 면접에서도 떨어지고, 직장 면접에서도 떨어졌다. 실패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파트 현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리 차가 서 있었다. 스마트키를 이용해서 차문을 열고 차를 탔다. 안전벨트를 매고 의자를 다리 길이에 맞게 조정하고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걸었다. RPM이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RPM이 낮아지면서 차의 '웅' 소리가 줄어들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고, 기어도 D로 바꿨다. 여기까진 복습. 오늘은 브레이크에서 발을 잠시 떼서 차를 움직여보기로 했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잠시 뗀다고 해서 자동차가 튀어나가 아파트 벽으로 처박히진 않겠지. 그러지 않아야 한다. 발을 잠시 뗐는데, 생각보다 차가 앞으로 빨리 나갔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살살 밟는다고 밟았는데 그것도 강도가 셌는지 몸이 앞으로 약간 휘청였다. 남편은 여기 경사에서는 기어를 중립으로 둬도 앞으로 갈 거라면서 중립으로 하고 발을 떼보라고 했다. 발을 떼니 기어를 D로 뒀을 때보다는 천천히 앞으로 갔다. 다시 약하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이번에는 앞으로 온 만큼 뒤로 가야 한다. 후진으로 기어를 놓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뗐다. 조금 갔다 싶을 때, 다시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파킹으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고, 시동을 껐다. 큰 도전을 했는데(나로서는 큰 도전이었다) 다행히 별 일이 없었다.  이번 주는 아침마다 이렇게 앞으로 갔다가 뒤로 돌아오는 것을 복습하기로 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출근했다. 


남편은 쏜살 같이 달려가고 싶어 하는데 내가 계속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조수석에 앉아서 아주 기본적인 조작조차 벌벌 떨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운전석에 앉은 나를 보면 걱정도 되고 답답하기도 할 텐데 부정적인 말들은 꺼내지 않아서 고맙다. 

언젠가는 운전할 수 있을까? 버스, 지하철을 타면 1시간 걸리는 거리를 자동차를 타고 20분 만에 가는 날이 올까? 


우선 하나, 하나 해보기로 했다. 지금은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왔다 갔다 할 시간이다. 


사진: UnsplashSimon Inf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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