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움 청하기
매일 아침마다 주차장에서 전진했다가 후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시동을 켜고 전진했다가, 후진하고 시동을 끄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니 남편이 차가 방전될 것 같다며 한번 시동을 켜면 10분 정도는 끄지 말고 시동 켠 상태를 유지하라고 했다. 10분 동안 전진, 후진을 반복하는 연습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처럼 전진, 후진을 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엑셀은 아직 밟아본 적이 없다. 10분을 채워야 하니까 몇 번 더 반복했다. 기어를 D에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서 전진, 기어를 R에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서 후진....?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는데도 후진이 되지 않았다. 아니, 왜?
이상했다. 왜 후진이 안 되지? 이기호 작가의 단편 소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에는 후진이 안 되는 프라이드가 등장한다. 소설의 화자는 삼촌이 집 앞에 놔두고 간 프라이드를 몰다가 후진이 안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것이 차가 워낙 오래되어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삼촌이 일부러 부품 하나를 뺏기 때문이라는. 그 이유를 화자가 찾아 나서는 재미있는 소설이 떠올랐다. 우리 차가 오래돼서 그런가? 15만 킬로를 넘게 탄, 7년? 8년? 정도 탄 차이긴 했지만 후진이 안 될 정도로 오래 탄 차는 아닌데? 아까는 됐는데, 지금은 안 되는 이유가 뭐지?
기어를 D에 뒀을 때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차가 앞으로 움직였지만 기어를 R에 두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차가 뒤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지? 주차장에서 빼꼼 차 앞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다른 차들의 통행을 방해할 것이 뻔했다. 폰이라도 들고 왔으면 남편에게 전화라도 해볼 텐데. 남편이 한심해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 텐데. 폰은 집에 있었다. 차를 잠시 이 모양으로 두고 집에 갔다 와야 하나, 어째야 하나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주차장으로 차가 들어왔다! 이를 어쩌나!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내가 길을 막고 있어! 어쩌지, 어쩌지, 하는데 차는 뒤로 후진하면서 내쪽으로 오기 전에 주차를 했다. 차에서 처음 보는 아저씨가 내렸고, 나는 "아저씨!"하고 외쳤다.(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라고 했으면 더 부드러운 호칭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저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기어를 P에 둔 것을 확인하고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리고 차에서 내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저씨는 차에 올라타서 쉽게 후진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안 내려서 그래요. 내리면 됩니다."
호탕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는 건 알지만 감사하다고 인사를 꾸벅했다. 아저씨는 하는 후진을 내가 못하는 건 차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저씨가 쿨하게 떠나고,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내가 운전연습한다는 걸 아는 아저씨가 차를 완전히 주차하진 않으셨다. 마무리는 나보고 해보라는 깊은 뜻이시겠지.
기어를 R에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는데 여전히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서 브레이크를 쳐다봤는데 옆에 조그만 액셀 페달이 보였다. 저것인가, 저것을 밟아봐야 하나. 이제껏 위험해 보여서 밟지 않은 페달이었다. 발을 엑셀 쪽으로 옮겨서 살짝 밟았더니 차는 뒤로 움직였다! 천천히 뒤로 차를 움직였다.
남편은 나를 못 미더워한다. 운전을 배우는 것도, 취직하지 못하고 쉬는 것도, 온전히 한 사람의 몫을 못 해내는 것 마냥 여긴다. 후진하지 못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면 그런 남편의 생각을 더 키울 것이 뻔했다. 지나가는 타인에게 도움을 적절히 청한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냐고 생각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주변인에게 도움을 청해야지. 세상 친한 남편에게 보다 처음 보는 타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의구심이 든다.
같이 살면 더 하찮아 보이는 법인가 보다. 그렇지 않아도 하찮아 보이는 나를 더 하찮게 보이지 않도록, 웬만하면 도움은 같이 살지 않는 타인에게 받는 것이 더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