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상희 Mar 14. 2023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4. 운전 연수 교육

 자동차 전문 운전학원에서 운전 연수 교육을 받았다. 1회에 2시간[(강의 시간 50분+쉬는 시간 10분)*2] 강의로 3회 30만 원이었다. 나에겐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는데, 친구는 "몸으로 익히는 건 그 정도 돈은 주고 배워야 안전하다"며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다. 나보다 현명한 친구이니 친구의 말을 듣고 결제했다. 


 대기실에서 강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둘러보니 젊은 청년들이 많았다. 그래도 간혹 나 같은 아주머니들이 나타났다. 강사님의 설명대로 하나하나 자동차 조작을 해보고 운전학원 경내를 몇 바퀴 돈 후에 바로 도로로 나섰다. 첫날은 직진을 주로 했고, 둘째 날은 끼어들기를 몇 번 했고, 셋째 날은 교통량이 꽤 많은 도로에서 운전했다. 속으로 '침착하게, 침착하게'를 되뇌면서 강사님의 지시에 따랐다. 


 "애들이 몇 살이에요?"

 직진만 하던 중에 강사님이 물었다. 

 "아, 저는 애는 없는데요."

 아마도 내 나잇대에 운전을 시작하는 건 육아 문제로 운전이 필요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물으셨던 것 같다. 강사님이 머쓱할까 봐 내 얘기를 했다. 

 "어머니를 교외 수목장에 모셨는데, 운전하지 않으면 가기가 힘들어서요. 남편한테 매번 데려다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남편 없이 혼자 가고 싶을 때도 있고."

 

 엄마는 꽤 오랫동안 아프셨다. 비교적 젊은 나이였기에(엄마는 55세 즈음에 돌아가셨다) 장례에 관해 다른 얘기는 한 게 없지만 언뜻, 지나가는 말로, "수목장이란 게 있다더라"라고 말했던 것 같았다. 그 말이 엄마가 돌아가신 날 새벽, 장례식장에서 장례지도사 맞은편에 앉아있을 때 떠올랐다. "수목장으로 하고 싶다"라고 장례지도사에게 말했다. 


 수목장 장소는 그리 멀진 않았지만 버스를 이용해서는 들어가기가 힘든 곳이었다. 남동생이 한번 택시를 타고 갔다가 나올 때 태워주려는 택시가 없어서(콜택시를 불러도 외진 곳까지 오려고 하지 않아서) 한참을 큰 도로 쪽으로 걸어 나온 후 겨우 택시를 잡았다고 했다. 


 사실 엄마는 내게 그리 따뜻한 엄마는 아니었다. 엄마는 힘든 삶을 살았고, 좋은 어른이 될 기회가 없었다. 엄마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내게는 부족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내가 과연 엄마를 보고 싶어 할까 의심했었다. 그런데 엄마를 찾아가고 싶을 때는 있었다. 서러울 때, 아무한테도 할 수 없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을 때,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말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어차피 엄마가 잔소리를 할 수도 없으니, 엄마 유골이 심긴 나무 앞에서 서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운전 연수 3회가 끝나고, 이 교육이 끝나면 운전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차 꽁무니에 '초보운전'이라고 크게 붙이고 도로로 주섬주섬 나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산 중턱은 올라온 줄 알았는데, 아직 초입이었다. 강사님은 "더 교육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라고 했고, "언제쯤 엄마한테 갈 수 있겠냐"며 절제된 안타까움을 보이셨다. 이 교육이 끝나면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네. 


 아직은 혼자서 차를 타기가 무섭다. 막 이사를 온 처지가 아니었다면, 친하게 지내는 지인에게 도움을 부탁드렸겠지만, 이곳에서는 부탁할 사람이 없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친절한 남편이 도와줄 것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사는 사람에게 못나고 부족한 모습을 계속 보여야 한다는 게 망설여진다. 그래도, 천천히 연습을 이어야겠다. 


사진: UnsplashTim Hüfner

작가의 이전글 왜 후진이 안 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